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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17. 2023

16화. 베스트셀러

소설 같은 이야기



어린 시절 TV에서는 ‘주택 복권’ 추첨 방송이 있었다. 1등 당첨금은 1억 원. 30년 전 물가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10억 정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 복권(로또나 연금복권)에 당첨되면 10~20억대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기억하는 건 두 가지 추첨 방식이 있었다. 통 안에 있는 공이 나와 뽑히는 방식과 더불어 다트를 쏴서 과녁에 맞추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방송하지 않으니 그 스릴감을 느낄 수 없는 게 아쉽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그 멘트가 그리운 건 나 뿐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혹시 1년에 몇 권이 책이 출간되는지 아는가? 매년 약 6만 5천 권의 책이 세상 빚을 본다. 하지만 이 중 오직 10%만이 1쇄를 찍을 뿐, 나머지 책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바로 서재로 들어가 먼지가 쌓인다. 더는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대로 삶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1쇄라고 해봤자 고작 출판사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2천 권 정도이니 작가로서는 책 한 권을 쓰고도 100~200만 원이라도 벌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럼 누가 책으로 돈을 많이 벌까?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다. 공식 검색 포털에서 1위에 오른 책의 주인공이란 말이다. 베스트셀러는 적게는 10만 부 많게는 100만 부가 팔린다. 대충 한 권에 천 원씩이라고 했을 때 1억에서 10억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100만 부가 팔렸을 때 로또에 당첨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베스트셀러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든 로또에 당첨된 게 맞다. 적어도 당분간 생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무리 좋은 글이 담긴 책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반면에 무언가 엄청난 내용이 책에 없더라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다. 마케팅이 승리한 일도 있으니까.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전자책 가격이 30만 원 가까이 했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고작 50페이지 분량이었는데도 많은 사람에게 팔려나갔다.   

   

나도 하마터면 마우스를 눌러서 결재할 뻔했다. 하지만 누군가 올린 후기로 인해 유혹을 참을 수 있었다. 그냥 유명한 책들에 나온 내용을 요약한 책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마케팅을 잘한 책이었기에 그 책은 계속 팔렸다. 부러웠다. 나도 나름 계속해서 책을 쓰는 작가니까.         


 



나는 2년 반 동안 책을 10권이나 썼다. 문제집 같은 교재가 아니라 오직 글만 적혀있는 단행본이다. 300페이지 내외 책을 한 권 쓰려면 한글 프로그램에서 A4 용지, 10포인트로 최소한 100페이지 분량을 작성해야 한다. 글자 수로는 10만이 넘는다. 처음에 책을 쓸 때는 일주일에 1~2개 글을 써서 4개월 정도 걸렸다. 이제는 단련되어 매일 글을 쓴다. 그러니 빠르면 한 달이면 책 한 권을 써낸다.      


그러니 어느새 10권이나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잘 팔린 책은 5천 부 정도였다. 정가가 2만 원이 안 되니 다 합쳐도 천만 원이 안 된다. 하지만 주업이 있고, 작가는 부업이니까 5천 부는 많이 괜찮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아무리 선전해도 고작 2천 부를 간신히 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는 계속된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분야별로 매일 팔린 권수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그러면 위에 ‘베스트셀러’라는 표시가 붙는다. 나름 명목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름 진짜 베스트셀러의 기준은 네이버에서 검색했을 때 도서 위에 ‘베스트셀러’라는 빨간색 딱지가 붙을 때다. 나도 일부만 빼고는 거의 다 그 단계까지 갔으니 베스트셀러 작가라 할 수 있으려나. 아쉽게도 명예만 있을 뿐, 실리는 없다.      


주변에 누군가는 돈을 주고 책을 냈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책이 계속 나오니까 이제는 말과 태도가 바뀌었다. 대부분 하는 말은 ‘인세가 짭짤하잖아?’였다. 베스트셀러라고 홍보하니까 엄청 많이 팔린 줄 안다. 착각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건 맞지만, 로또에 맞은 것처럼 대박은 아니니까. 뭐 가끔 들어오는 강의로 인세를 보충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계속 있는 게 아니니까.     


책 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책 파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영향력을 많이 따진다. 글 내용보다 더 인지도가 좋으면, 더 많이 팔리니까. 나 같은 뜨내기 작가와는 달리 유명인들은 1쇄 때부터 10배 정도 책을 찍어낸다고 한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유명세에 못 이겨 책을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양극화가 출판 시장에서도 벌어진다. 잘되는 책만 잘 팔리고, 아닌 책은 안 팔리니까.      


무명의 작가가 책을 내고, 1~2천 권의 책을 팔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 많은 사람이 책을 사서 읽은 걸 테니까. 물론 사놓고 냄비 받침대로 쓰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대한민국 성인 1인당 월평균 4.5권을 읽는 현실 속에서 팔리는 책으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지만, 나는 계속 책을 쓴다. 불혹의 나이에 찾은 새로운 진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 더할 나위 없다. 돈이 좀 안 되면 어떤가. 삶이 즐거운 것을.


          



어머니는 50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취미였다. 수술한 후에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찾고자 노력한 결과였다. 동네에서 수채화부터 그림을 배웠다. 그러다 우연히 유화를 배우게 되었고, 그림의 매력에 빠진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서양화 대가 스승을 만난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3~4시간씩 그림을 그린 어머니는 3년 만에 서양화 작가로 등단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우니 매일 꾸준히 했고, 실력 또한 꾸준히 상승한 것이다. 그 결과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냥 입상도 아닌 나름 꽤 높은 상을 연달아 받은 것이다. 그러자 한 협회에서는 협회 임원으로 초빙하여 심사자가 되어 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를 기회로 어머니는 실력을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다. 좋아하니까 매일 하게 된다. 매일 하니까 실력이 매일 는다. 어느 순간 남들이 인정하는 실력에 오른다. 곧 남들이 전문가라고 인정한다. 그러면 새로운 진로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90%는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 나머지 10%가 성공하는 이유는 오직 ‘실천 여부’일 뿐이다. 누구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노력하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구분은 해야 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머니도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고 했지만, 유명세를 탈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미술을 대학에서 전공한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활동하기엔 이미 나이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건, 평생 즐길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소소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수업도 하고, 전시회가 열리면 그림이 팔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예술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등은 좁혀지지 않는다. 예술성을 강조하면, 상업성이 후퇴한다. 반면에 상업성을 따르면, 예술인으로서 괴리를 느낀다. 이제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된 어머니는 아직도 종종 전시회에 참여한다. 그러면 비슷한 그림이 즐비해도, 누군가 어머니의 색감이 남달라 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서 갈등이 생긴다. 시골에서 조용히 작품 생활을 하는 작가로 알고 있기에.     


어머니는 이미 협회 임원, 공모전 심사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몸값이라는 게 생겼다. 그림도 작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캔버스 크기를 결정하는 ‘호’ 마다 매겨지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번은 누가 큰 그림을 의뢰했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어머니가 그동안 받았던 가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누가 보면, 그림 많이 팔면 좋지 않겠냐 싶다만. 예술성을 더 중시하는 어머니는 그렇게 자기가 공들여 그린 작품이 헐값에 매겨지는 게 싫다고 하셨다.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작가라 부르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라 부른다.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한다면, 작가는 특정 분야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 그렇다. 작사가, 작곡가도 결국 작가라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50세에 시작했지만, 나는 30대 막바지에 시작해서 40대에 들어서며 활발히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달리 나는 아직은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글을 쓴다. 문학보다는 비문학에 가까운 글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나도 문학적 요소가 담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에세이를 쓴 적이 있으니 산문 작가로서 자격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사실이 담긴 글도 좋지만, 허구가 있는 소설에 도전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사실과 허구 사이 어느 중간쯤의 글을 쓰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연옥에 마치 서 있는 것처럼. 융합이 중시되는 현실에 발맞추어 새로운 장르를 따르고 있다. 최근에 이런 비슷한 장르의 글이 인터넷에 떠돌더니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아마도 들어봤을 것이다. <김 부장 이야기>라고.     


내가 20대인 시절에는 <영어 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이 대박이 났었다. 소설도 정보서도 아닌 중간쯤의 장르의 책인데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까. <세이노의 가르침>도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와 과거에 쓴 칼럼을 묶어서 낸 장르가 특별히 없는 책인데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니 항상 정석과 주류가 최고가 되라는 법은 없다. 변칙도 비주류도 한 번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꿈꾼다. 언젠가 나도 로또에 당첨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10만 부 그리고 100만 부가 팔려 부자가 되는 날이 올 거라고. 허황된 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평생 죽을 때까지 100권의 책을 쓰면 한 권 정도는 얻어걸리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3대에 걸쳐서도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김이 팍 새기도 한다. 책을 1,000권을 써도 진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편으로는 누구나 올챙이였던 시절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을 준다. 유명인들도 무명 시절이 있었을 테니까. 배우 중에는 무명으로 수십 년을 지내다 말년에 터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그나마 다행인 거다. 평생 무명으로 살다가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인기도 돈도 모두 얻을 수 없을 테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글 쓰는 게 좋아서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렸다. 애가 둘이나 달린 가장이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다. 만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가끔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거꾸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더 노력하다 보니 작가라는 직업이 생겼다. 가족이 없었다면, 작가라는 길조차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란 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다. 여유로울 때는 간절함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힘들 때는 간절함으로 인해 여러 기회를 맞는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다시 또 여유가 생기면, 별생각이 없다. 만족하니까 더 노력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러다 또 위기가 찾아오면? 이런 식으로 무한 반복이다. 항상 오르고 내리는 주식 그래프처럼.     


우리는 살면서 총 3번의 큰 기회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연마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을 키워야 한다. 실력이라고 하는 건 사람마다 분야가 다를 수 있다. 하물며 인성적으로 우수한 경우에도 기회가 찾아오기에. 뭐든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더 가꿔야만 한다.      


만일 내가 매일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 하늘도 감동하는 날이 올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일도 쓸 것이다. 출장 가는 비좁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도 한 글자라도 적어본다. 빗물이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바다가 되는 경험을 매번 반복한다. 빗물이 바닷물이 되는 순간 또 세상에 나아가는 걸 테니까.      


꼭 책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까? 아니다. 베스트셀러라는 의미는 가장 잘 팔리는 것이라는 의미니까.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람 혹은 물건이 된다면 그게 바로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50년 동안 김밥 장사해서 모은 돈이 수십억에 달해서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나는 베스트셀러 할머니도 있는 법이니까.  

    

불혹에 제2의 인생 진로를 찾은 나는 글쟁이로서 그날을 꿈꾼다. 월간 윤종신, 월간 정여울, 일간 이슬아처럼 살고 있으니까. 누가 혹시 아나? 일간 브런치를 하는 나도 언젠가는 세상에 기여하는 베스트셀러 할아버지가 되어있을지.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면 살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시길.        


       

(엔딩곡)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넌 나의 사람이 된다는 걸. 처음 널 바라봤던 순간 찰나의 전율을 잊지못해 Oh-Oh-Oh.”     


*본능적으로

- 2010년 5월에 발매된 가수 윤종신의 ‘Monthly Project 2010 May’ 앨범, 1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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