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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14. 2023

14화. 졸업

소설 같은 이야기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졸업한다. 정규 교육과정인 12년 동안 세 번이나 졸업한다. 물론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요새는 대학에는 거의 다 가는 분위기라 네 번이 평균일지도 모르겠다. 학사편입, 석사, 박사 등 대학교 졸업 후에 또 학교 다닌다면 다섯 번 넘게도 졸업하겠지만. 나도 다섯 번이나 졸업한 나름 가방끈이 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졸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친구의 아내 중에는 출산하다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친구는 바로 졸업했다. 행여나 다음 출산 때 아내가 죽기라도 하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아 바로 졸업했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졸업은 정관수술을 의미한다. 그동안 잘 몰랐는데, 은근히 졸업한 남자들이 주변에 있었다.      


50~60년대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로 인해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계획을 권고했다. 나도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그 내용을 배운 적이 있어서 부모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전혀 몰라 순박했던 나는 ‘가족 계획’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잠시 당황하셨지만, 티를 내지 않고 답해주셨다. 우리 집은 가족 계획을 했고, 더는 동생이 생길 일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때는 넘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도 졸업하셨겠구나 싶었다.     


과거에는 의료 기술이 별로 좋지 않아서 다시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확률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이없게 가족 계획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나름 수술이라 통증도 있고, 회복하려면 며칠 걸렸다고 한다. 역시 무엇이든 졸업을 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주변 선배들을 보면, 종종 졸업자가 있었다. 최소한 둘째를 낳고 나서 졸업했다. 한 명은 절대 졸업식을 치르고 싶지 않았는데, 셋째가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졸업식을 거행했단다. 자기는 왠지 남성성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절대로 졸업만은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기분상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하나, 둘 키우기도 경제적으로 빠듯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든데 세 명이나 되면 얼마나 힘들까.     


일찍 결혼한 친한 친구 중에도 아이가 둘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늦둥이가 생기면서 바로 졸업했다. 처음엔 막내가 생겨서 여러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태어나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감을 넘기는 못 한다고 했다. 나를 꾀어 셋째를 가지게 하려는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계속 셋째를 찬양했다. 진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라고. 아내가 반대하지만 않았으면 자기는 넷째도 다섯째도 좋았을 거라 했다. 참으로 대단한 친구다.

     

 첫째만으로도 출산도 육아도 처음이라 서툴고 힘들었던 우리 부부는 한동안 둘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친한 친구 집에 다녀와서는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우리 둘째 가질까?”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준다. 아내는 분명히 너무 힘들어서 둘째 생각은 없다고 항상 말해왔었다. 하지만 친구네 아이 둘이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흔들렸나 보다. 우리 첫째에게도 동생이 생기면 더 잘 놀고 행복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알고 보니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벽에 걸린 친구네 가족사진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앞에 한 명씩 서 있는 아이 두 명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매우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다고.      


나도 형제가 있어서 좋은 경험이 있기에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는 둘은 꼭 나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의 말에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시기의 문제일 뿐 아내만 좋다면 언제든 그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임신 경험이 있으면 삼신 할매가 더 점지를 잘 지어준다는 말이 있기에 노력만 하면 금방 생길 것만 같았다.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내는 이왕이면 둘째를 낳는다면, 돼지띠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4개월 안에 성공해야 했다. 나름 그래도 안심인 건 첫째 때는 두 달 만에 성공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바로 둘째가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 편히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 우리에게 둘째를 갖도록 불을 붙인 친한 친구네 부부와 함께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갔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어른들끼리 대화 타임할 때, 혹시 몰라 아내는 술 대신 콜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여행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내가 별것도 아닌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여행으로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그 이유를 알았다.      


아내는 가끔 불규칙한 매직으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가끔 혹시 임신한 건 아닐까 우리는 종종 간편 키트로 임신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생겨도 좋을 일이지만, 이왕이면 계획대로 생기면 더 좋았으니까. 그리고 의도하지 않아도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가끔 확인하곤 했다.      


여행 후 첫 주말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식탁 위에 하얀 플라스틱 물체가 올려져 있었다. 장난감 체온계처럼 생긴 물체는 익숙한 것이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았다. 빨간색 두 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아래 쪽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에게 기다리던 토실이가 왔어요.’     





첫째 태명은 ‘삐약이’였다. 그 이유는 닭띠라서 귀엽게 지은 태명이었다. 그러니 둘째는 돼지띠의 상징 ‘토실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름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름 따라서 사람의 인생이 영향을 받는 것 같기에.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돈이 정말 문으로 한없이 들어온다. 타이거 우즈는 산속에서 진행되는 골프 경기에서 왕이 아닌가. 한자만 영향을 주는 줄 알았는데, 영어도 의미가 있으니 이름의 영향력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태명일 뿐이었지만, 첫째는 태어날 때 울음소리부터 우렁찼다. 그리고 밤마다 삐약삐약 거리며 자주 울었다. 삐약이라고 지어서 만날 우는 건 아닌가 싶었다. 둘째는 ‘토실이’니까 토실토실 살이 쪘을까? 제 때에 우량아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그렇겠구나 싶지만, 둘째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는지 아슬아슬하게 하루 차이로 미숙아는 아니지만, 예정일보다 3주나 빨리 태어났다.      


원래 둘째는 뱃속에서 토실이 태명에 맞게 토실토실 잘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연주의 출산을 시도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기가 너무 크면 엄마 몸으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첫째 때 제왕절개를 한 게 아니라서 자연주의 출산이 아니더라도 자연분만 가능성은 있었다.      


만일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으면, 둘째도 무조건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몸이 출산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둘째가 나오다가 큰일 날 수 있다고. 아무튼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찍 나오는 바람에 3kg이 넘지 않았던 첫째보다도 더 적은 몸무게로 태어났다.      


첫째 때 아기가 거의 다 나올 때까지 끝까지 참고 병원에 도착한 아내였기에 둘째 때는 미리 움직이기로 했다. 게다가 둘째 때는 첫째 때보다 더 빨리 출산한다고 했기에 진통이 오면 바로 연락해주기로 했다. 예정일이 아직 한참 남았었기에 별생각 없이 출근했는데, 회의로 받지 못한 전화기에 부재중 통화가 3개나 와 있었다. 그리고 문자도 와 있었다.


‘여보. 나 진통이 와서 지금 택시타고 병원에 가는 중이에요. 첫째는 내가 등원시켰으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병원으로 바로 와줘요.’     


둘째는 원래 조금 일찍 나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나올 줄은 몰랐다. 직장에 말하고, 급히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병원에 가보니 아주 익숙한 방에서 아내가 있었다. 바로 첫째를 출산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진찰하니 진통이 시작한 게 맞고, 아이가 아직 작아서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하다고 했단다. 그렇게 우리는 또 자연주의 출산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있었기에 첫 경험만큼 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출산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일이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출산하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첫째 때와 달리 진통이 느껴지자마자 병원에 온지라 생각보다 출산 시간은 오래 걸렸다. 그때는 2시간 만에 아기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반나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보통은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했다. 혹은 하루 넘게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서 무통 주사를 맞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 둘째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시간 정도 자다가 낮잠에서 깨어난 아내는 잠시 짐볼에서 운동을 하다가 아기가 내려온 것 같다고 했다.          




    

자연주의 출산이라 우리를 담당했던 듈라를 불렀다. (듈라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1화. 자연주의 출산>을 꼭 읽어보시길. 첫째 출산 당시 상황을 묘사한 더 자세한 내용이 있음.) 아기가 다 내려와서 이제 출산 모드로 간다고 했다. 아직 최종 단계는 아니라서 손도 잡아주고, 쥐가 날 것 같다는 다리를 두드려주며 마사지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진통이 왔다며 내 티셔츠를 당기며 진통을 견뎠다. 그리곤 아내는 말했다.     


“여보! 혹시 그대로 있어 줄 수 있어요? 옷을 당기니까 너무 편해요.”     


TV에서 과거 출산 장면을 보여줄 때 보면, 아기를 낳고 있는 산모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천을 잡아당기며 힘쓰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우리 선조들은 과학적 원리를 잘 알기에 그랬을 것이다. 내가 아내보다 위에 있으니 내 옷을 잡아당길 때 그 느낌이었나 보다. 나는 엎드린 말 자세로 20~30분을 유지했다. 내 옷은 늘어나는 성질이라 이미 한 바퀴를 돌아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첫째를 직접 받아본 경험이 있으니 굳이 둘째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출산을 돕는다는 게 꼭 아이를 직접 받는 것보다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옷이 다 늘어나 한 바퀴 반 정도로 돌아가 있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아내도 땀 범벅, 나도 땀 범벅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진정으로 출산을 함께한 것이 아닐까.     


둘째의 탯줄도 사각사각 가위 소리를 내며 잘 잘라냈다. 역시 나는 탯줄 자르기에 소질이 있었다. 그리고 캥거루 케어 시간도 가졌다. 첫째는 배고파서 눈을 떴지만, 둘째는 배고프지는 않았나 보다. 눈을 그대로 감고 편히 잠들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갑자기 내 몸 아래쪽이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이게 뭔가 하고 살펴봤더니 내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아기가 시원하게 오줌을 싼 거였다. 양수만 먹었으니 냄새는 안 날 테지만, 그 바지를 입고 밖에 나가기가 부끄러웠다. 차에 짐이 있어서 당장 갈아입을 수 없었다. 수건을 빌려서 가리고 나서야 문밖을 나설 수 있었다.      


토실이는 미숙아에 가깝게 태어나 인큐베이터로 옮겼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데, 심장 쪽이 열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의 특징이라고 했다. 토실이는 하루 차이로 미숙아는 아니지만, 비슷한 증상일 거라고 했다. 대부분 아기가 크면서 괜찮아지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눈물이 왈칵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내는 역시나 자연주의 출산이라서 딱 하루만 입원하고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아기가 황달이 와서 나만 조리원에 남고, 아내는 다시 입원실로 가서 밤새 아기와 함께 보냈다. 아내가 아기 사진을 보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다가 눈물이 펑펑 흘렀다. 마치 홍수가 난 것처럼. 사진 속 둘째는 얼굴이 파랗게 되어 있었다. 눈에는 어떤 장치가 올려져 있어서 매우 아픈 아기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황달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바르고 적외선을 쐬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 사진을 보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둘째 때는 준비가 부족한 채로 아기를 가져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첫째 때는 6개월 정도 꾸준하게 운동도 했고, 엽산도 미리 잘 먹었고, 몸 따뜻하게 만든다고 아내는 한약도 먹었다. 하지만 둘째는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생긴 거라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아내도 아기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여보. 내가 너무 콜라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     


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콜라 때문에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강하게 말했지만, 한약보다는 도움이 되진 않았을 거라 속으로 생각했다. 아기가 아프니 우리 부부는 자기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 아기가 그냥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일 수도 있는데도 부모는 내 잘못 같으니 말이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진단받았던 심장이 열린 것과 관련하여 사실은 너무 걱정되어 주변에 이런 경우가 있는지 묻고 다녔다. 그랬더니 누군가 자기 아이도 그랬는데, 지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는 건강하게 너무나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 둘째도 그렇게 계속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다. 다행히 토실이라는 태명에 맞게 검사할 때마다 몸무게로는 상위권을 자랑했다. 다만 면역력이 약한지 첫째와는 달리 비염을 달고 산다. 아주 불편하게 말이다.          





만일 우연히 셋째가 태어난다면 둘째보다 건강할 수 있을까? 나도 아내도 점점 나이를 먹고, 아이 둘 키우느라 운동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아이가 더 많으면 힘든 만큼 더 행복하겠지만, 건강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멈춰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졸업을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다양한 정보가 넘쳤다. 무엇보다 기술이 발달해서 10분이면 끝난다고 했다. 게다가 수술 후에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역시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상담만 받으려고 병원을 예약했다. 결정은 상담 후에 진행해도 괜찮을 테니까.     


“아이는 둘이죠?”

“네.”

“그럼 오늘 바로 진행하시죠. 대부분 상담만 받고 가셨다가, 셋째 가지고 나서 후회하며 오시거든요.”     


영업 상술인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 끔찍했다. 어디에 홀렸는지 나도 모르게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고 있었다. 병원마다 가격은 다르겠지만, 여기는 30만 원이었다. 비용은 조금 들었지만, 100만 원이 넘는 것도 아니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게다가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남자가 들어올 거라는 말에 용기가 생겼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제모하는 시간이 15분 정도 걸렸고, 정관을 잘라내고 레이저로 지지는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설명 듣고 밴드 붙이는 시간까지 5분. 총 30분으로 졸업식이 끝났다. 절개를 매우 조금만 하기 때문에 바로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진짜로 조금 뻐근할 뿐 통증은 거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한테 졸업하고 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아내한테는 놀라며 못 믿는 눈치였다. 분명 가볍게 상담만 받고 온다고 했는데, 일을 다 처리하고 왔으니 놀랄 수밖에. 약 봉투를 보여주니 그제야 믿었다. 계속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몇 시간 만에 졸업자가 되었으니까.     


졸업 이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졸업 여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만나면 살짝 물어보곤 했다. 그랬더니 어떤 집은 아내가 남편이 졸업하는 걸 반대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유를 듣자 하니... 남편이 어디 가서 자유롭게 싸지르고 다닐까 두려워서라고 했다. 얼마나 평소 행실이 불량했으면 그런 말을 들을까. 아무튼 아이가 둘인 집은 대체로 졸업자가 많았다. 다들 역시나 셋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니.     


여러 이유로 그걸 만도 하다. 우리 집에도 위기가 왔다. 첫 번째는 경제적 위기, 두 번째는 산후 우울증. 나는 그 두 가지를 경험했다. 아내가 일을 계속 쉬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는 남은 돈이 없었다. 그런데 둘째를 돌봐야 하니 맞벌이는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게다가 첫째가 있으니 돌아가면서 밤에 잠 못 자고 둘째를 돌봤다.      


새벽 3시 거실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베란다 밖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창밖으로 아기를 안고 나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23층인 집에서 보는 창밖의 도로가 마치 1층인 것처럼 느껴졌기에. 곧바로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큰일도 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새근새근 잠든 둘째 얼굴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는 아기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니까.          




    

둘째가 생겼을 때 우리 부부는 과연 아들일까 딸일까 궁금했다. 어떤 성별이든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으니 여러 근거를 찾아봤다. 장모님은 우리가 첫째를 낳았을 때 꼭 태반에 붙어있는 탯줄의 위치를 확인하라고 하셨다. 의학적, 과학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지만, 정가운데 있으면 첫째와 같은 성별이, 구석에 따로 떨어져 있으면 다른 성별일 거라고 했다. 탯줄은 약간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그래서 만일 둘째를 낳는다면, 아들이겠구나 싶었다.     


첫째를 낳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터넷에 ‘중국 황실 달력’을 검색해보면 산모가 언제 임신하느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나와 있다. 산모의 만 나이와 임신한 달에 남자와 여자 성별이 적혀있다. 100% 확률은 아니지만, 실제 주변 사람들 상황을 물어보니 100% 맞았다. 첫째가 임신 된 시기를 살펴보니 딸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아들이었다. 점점 아들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형제 관계가 어떻냐에 따라 유전적으로 자식들도 비슷하게 성별이 결정된다고 했다. 부모의 형제가 한 성별인 형제나 자매의 경우에는 첫째 성별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했다. 반면에 남매인 경우는 자식들도 남매가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것 또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확인했다. 이것도 대부분 맞았다. 우리 집은 나도 남매, 아내도 남매라서 둘째는 아들일 확률이 높을 거라 믿었다.     


혹은 태몽에 의해서 성별이 결정되기도 한다. 시중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니 찾아보면 될 듯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조금 특이한 상황이 있었다. 장모님이 우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바로 장인어른한테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아들이잖아~.”

“무슨 소리예요. 이제 임신한 걸 알았다고요.”

“그래? 그럼 내가 꿈을 꿨나 보오. 허허허.”     


장인어른은 우리가 임신하기 전에 꿈을 꿨는데,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는 꿈을 꿨다고 했다. 태몽이라기보다는 예지몽과 같았다. 장모님만 예지몽을 꾸는 줄 알았는데, 장인어른도 그러시다니 참 대단하시다. 하지만 처남네 아기는 장모님이 복숭아 꿈을 꿨는데 역시나 딸이었다. 태몽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확률적으로 성별을 정해주는 것 같다.      


첫째를 가졌을 때 아내가 고기가 많이 당겨서 아들인지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먹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첫째 때는 피부 트러블이 전혀 없었는데, 둘째를 가졌을 때는 얼굴에 자꾸 뭐가 나서 고생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들은 엄마와 성별이 다르니 호르몬이 달라서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섯 가지 근거를 통해 우리는 둘째가 아들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가장 빨리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16주 차에 초음파를 하면서 살짝 기대했다. 하지만 둘째는 부끄러운지 자신의 물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확신이 들지 않으니 다음에 오셨을 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주 차가 되어 병원에 찾았을 때는 당당하게 자신의 성별을 드러냈다. 그동안 아들이라는 근거를 찾은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딸보다 아들을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확실히 여자아이보다 에너지도 넘치고, 뇌 구조상 주변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아 힘겨운 육아가 시작되었다. 아기 보험료가 여자보다 남자가 더 비싼 이유도 그래서였다. 더 다칠 위험이 크니까 말이다.     


2023년부터 둘째가 있어도 다둥이 카드를 신청하고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이 다자녀라니 말도 안 된다. 이게 얼마나 출산율이 낮으면 그런 걸까. 요즘은 결혼율도 낮고, 출산율도 낮다. 결혼해도 아기 한 명만 낳는 경우가 많으니 둘째가 있으면 진짜 다둥이네가 맞는 것 같다. 혹시라도 혜택이 부럽다면 둘째 꼭 낳아보시길.      


속닥속닥...     


‘나만 당할 수 없지...’          



(엔딩곡)     


“끝인가요. 후회만 남은 사랑.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나요. 뒤돌아봐요. 휘청거리는 내 인생을.”     


*긴 하루

- 2004년 7월에 발매된 이승철의 3집 앨범 ‘긴하루’, 3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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