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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20. 2023

19화. 소시오패스

소설 같은 이야기

이 이야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로 실존 인물 및 실제 사건과 무관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재미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우리가 살면서 소시오패스를 만날 확률은 얼마일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무려 40%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 10명 중 4명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들은 영리해서 티가 잘 안 난다고 한다. 하지만 특정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그들만의 특성이 있기에 잘 살펴보면 누가 그런 성향을 보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시오패스를 넘어선 사이코패스 심리테스트가 한때 유행했다. 혹시 모르니 여러분을 한번 평가해볼까 한다. 지금부터 잘 들어보고, 답해보시길.      


“한 사람이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칼을 든 남성이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 뒤에서 등을 찔러서 죽였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인 그 사람은 무섭게 째려보며 손가락으로 나를 오랫동안 가리키고 있다. 그는 왜 그러고 있을까?”     


잠시 답을 생각해 보고 말해보자. 일반적인 사람은 보통 “다음은 네 차례다.” 혹은 “널 죽여버리겠어.” 등으로 말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다르게 말한다. “1층, 2층, 3층...” 정확하게 몇 층인지 숫자를 세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 없다. 목격자니까 죽이는 건 당연하다. 죽이러 가기 위해서는 몇 층인지 알아야 하니 무감정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실제 사이코패스는 생명을 죽이는 행동에 죄책감을 못 느낀다고 한다. 무서운 존재다.     


소시오패스는 조금 다르다. 적어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까. 대신 그들은 이해관계를 분명히 한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면 완전 자기 사람처럼 대하지만, 가치가 없으면 대놓고 무시한다. 쓸모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니까. 하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잘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소시오패스 특성에 대해 별로 관심 가지지 않게 된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면,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이리 소시오패스의 특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까? 40년 만에 내 인생에 ‘인간관계’로 인한 심각한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살면서 단 한 번도 문제도 고민도 없었던 일이라 심각하게 고민해 볼 일이었다. 한 사람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까도 몇 번이고 계속 생각했으니까.          




원래 그 사람은 나에게 엄청나게 잘 대해줬다. 부서 특성상 업무로 계속 엮이는 관계였기에 그랬다. 내가 그 사람에 도움을 더 많이 주었지 해를 입힐 일은 없었으니까. 직급은 비슷하지만,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기에 내가 더 예의 바르게 한 것도 있다. 하지만 자꾸만 업무가 나에게 넘어온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서야 내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단지 단순하고 잡다한 업무가 하기 싫었을 뿐일 테니까.     


소시오패스는 보통 똑똑한 편이다. 일할 때 효율성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주 기막히게 일을 기획한다. 그러니 나와 같이 일을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했다. 도움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마치 자기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한 것처럼 생각하는지 으스대는 모습을 보인다. 매번 똑같은 멘트와 함께.     


“제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문서 정리 부탁할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말에 가시가 있다. 내가 더 많이 했으니 너는 단순한 일이라도 좀 하라는 의미니까. 처음에는 그게 진짜 부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되니까 매번 정리는 내 몫이었다. 어쨌든지 일을 함께하고 나눠서 한 건데, 결과가 좋으면 다 자기 성과라고 주변에 떠벌리고 다닌다. 모든 건 자기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덕분이라며 말이다.      


어리숙했던 나는 그럴 때마다 옆에서 대단하다고 맞장구를 쳤었다. 그러면 더 신나서 허세를 떨곤 했다. 자기를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말이다.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 보니 완전 꼴불견이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내가 계속 당했으니까.    


      



한 번은 여러 부서가 협업해서 큰 행사를 치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는 그날 출장이 잡혀서 참여가 어려웠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꾸만 나에게 핀잔을 줬다. 다른 사람들은 다 힘들게 일하는데 나는 왜 출장을 가야 하냐면서 비아냥거렸다.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 혼자만 행사에 참여 안 하잖아요.”      


 자기 딴에는 내가 편하니까 계속 장난처럼 말한 것 같았지만, 계속 그러니 점점 기분이 상했다. 누가 일부러 참여 안 하는 건가? 하필 내가 맡은 업무 때문에 출장 가는 건데 꼭 그렇게 해야 할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늦게까지 같이 남아서 행사 준비하고 있는데 그건 별로 상관이 없었나 보다. 자꾸만 꼽을 주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물쭈물하다가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 다 있는 데서 굳이 그렇게 계속 꼽을 줄 필요가 있나.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씻고 자려는데 자꾸만 ‘보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보상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 다 있는 데서 그렇게 말을 했으니 내가 보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괜히 빚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불면증으로 가끔 잠을 못 자는데 쓸데없는 고민으로 잠들기가 어려웠다.     


“캔커피나 내일 잔뜩 사 가지고 가야겠다.”     


다음 날 아침 행사 진행 전에 전체 인원이 모여서 회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편의점에서 캔커피 20개를 사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평소 회의 시간에는 없던 커피가 올려져 있으니 다들 누가 샀냐며 물었다. 일단 조용히 있었다. 나중에 회의 끝날 때 말해도 되니까. 회의가 끝나고 사회자는 공식적으로 물었다. 이때다 싶어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이 음료는 누가 주는 거죠?"

“제가 오늘 출장이라 행사 참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다들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맙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멈췄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다.     


“어떻게 보상할 거냐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나마 마음 표현해 봅니다. 다들 오늘 수고하십시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사람 표정이 싹 굳었다. 그리곤 나를 째려봤다. 마치 죽일 듯한 표정이었다. 죽인다는 말은 안 했지만, 살인이 날 것만 같은 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 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가 출장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황천길이 열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소시오패스였으니까.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는 가끔 구분이 안 되는 것 같다.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우위에 서 있으려는 특성이다. 남보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자기가 빛나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기가 막히게 태세 전환을 한다. 예를 들면, 갑자기 아픈 척을 하거나 불쌍한 척을 한다. 그래야 자기가 별로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숨길 수 있으니까.    

 

그 사건 이후로 그는 교묘하게 나를 괴롭혔다. 아무래도 영특하니까 괴롭히는 것도 고단수였다. 한 예로, 함께 프로젝트하면서 썼던 자료가 있었다. 나는 그 자료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뒤를 지나가다가 자료를 봤는지 딴지를 걸었다.     


“이건 제가 만들었던 파일이네요. 주인한테 허락 안 받고 그렇게 마음대로 쓰면 어떡해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함께 만들고 사용한 자료인데 자기가 주인이라고 말하다니. 심지어 그 자료에 들어간 내용은 내가 다 조사하고 정리했는데. 소재를 자기가 아이디어 낸 것이니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소재라는 건 세상 사람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주인을 논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나도 말대답을 했다.   

  

“이게 주인이 어디 있어요? 그냥 인터넷으로 조사하면 다 나오는 자료인걸요.”

“그래도 내가 낸 아이디어인데 그렇게 막 사용하면 안 되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심지어 이 자료는 제가 만들었잖아요.”

“만든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거지.”

“근데 그 소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내가 낸 아이디어니까 막 사용하면 안 되죠.”     


처음으로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티키타카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했다. 나도 그 사람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평화주의자인 나는 이러다 몸싸움이라도 날까 그만두기로 했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또라이니까 잘못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제가 이거 안 쓰면 되는 거죠?”

“당연히 쓰면 안 되죠.”     


나는 열심히 만들던 자료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삭제했다. 계속 노려보던 그는 그제야 자리를 떴다. 일촉즉발 상황이 그렇게 종료됐다. 잠시 후에 멀리서 지켜보던 동료가 내게 와서 말했다.   

  

“잘 참았어요.”

“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요. 저 사람은 무서워서 피해야 해요. 알잖아요. 사람 죽일 듯이 달려드는 거. 저는 저 사람 눈빛에서 살기를 느껴서 무서워서 피해요. 앞으로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요.”     


소시오패스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서운 존재라는 걸 분명히 알려줬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참길 잘했다 생각했다. 혼자도 아니고, 가족들이 있으니 괜한 봉변을 당해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혼자였으면, 나 죽고 너 죽자 했을 것 같다. 이런 말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했더니 가치도 없는 사람 때문에 소중한 목숨 왜 버리냐며 조언해 줬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 사람이 이상한 존재라는 걸 인정했던 것이었다.    


      


 

성과를 그렇게 챙기더니 그 사람은 승진했다. 이제 우리와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안 그래도 일을 잘 안 했는데,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니까 더 심해졌다. 사소한 일은 다 짬처리하고, 자기는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나이에 직장에서 만날 주식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업무태만이었다. 관리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일을 안 하니까 아랫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렸다.      


동료 중에 한 사람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혁명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자꾸 일이 여러 사람에게 몰리면서 버거워하니 다들 그 사람의 혁명에 동조했다. 서로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이사진에게 그 사람의 탄핵을 요청하자고 외쳤다. 피보다 진하지는 않지만, 술잔을 들고 강한 결의를 다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 중에 가장 경력이 오래된 동료 여럿이 임원에게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현재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임원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제 시작인데 서투를 수밖에 없으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유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추천해서 승진한 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결의와 탄핵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분위기만 냉랭하게 흘렀다. 하지만 그렇게 강하던 그도 자기가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듯했다.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며 조퇴하고, 다음 날에 결근하고, 그런 식으로 자꾸만 직장에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하루는 감정을 호소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소시오패스 아니면 나르시시스트일 것이라고. 그들은 불리할 때 불쌍한 척을 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니까.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테니까...


이제 나도 모든 걸 꿰뚫고 있었다. 진실된 감정인지 아닌지 말이다. 역시 옆에서 오래 지켜보면 열 길 물속을 알 수 있듯이 사람 속도 다 보이나 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씩 계속 떠나갔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켰다. 대신에 신입이 들어오면 남들보다 더 발 빠르게 다가가서 잘해줬다. 아주 전략적으로.     


그렇게 친해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알려줄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아직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은 임원의 지인이라고 했다. 역시 소시오패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얻고 나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사람이니까 챙겼던 것이었다. 역시 무서운 인간이다.         


 


 

하루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소시오패스로 고민을. 그는 나르시시스트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여자친구랑 싸우면 며칠 동안 잠수 타고 연락이 안 되어 고민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성격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가 일부러 연락하지 않아야 상대방이 안달이 나게 되니 자기가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혹시 나처럼 혹은 내 지인처럼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가 주변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시오패스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피를 빨리지 않고 싶다면. 나르시시스트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연락이 안 된다고 계속 먼저 연락하면, 이 관계는 상하가 분명한 관계로 정립되어 평생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치료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예방이다. 혹시라도 주변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봐라. 혹시 내가 한 이야기와 비슷한 경우라면, 빨리 눈치채고 올바르게 대응하길 바란다. 늪에 빠지면 많이 괴로울 것이다. 빠져나올 수가 없을 테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부서 이동을 요청했다. 다행히도 나를 원하는 관리자가 있어서 옮길 수 있었다. 지나가면서 얼굴은 봐야 하지만, 업무로 더는 엮이지 않으니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엔딩곡)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달리기

- 2002년 2월에 발매된 가수 S.E.S의 ‘Choose My Life-U’ 5집 앨범, 6번 트랙에 위치한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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