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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22. 2023

마지막화. 퇴사

소설 같은 이야기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남을 위한 삶이 괴롭다. 그렇다고 내 사업을 하자니 돈이 없고, 아이템도 마땅하지 않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 적성과 맞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매일 사표를 가슴에 넣고 다닌다. 언제든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세상 80%의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로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1단계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노동자란 누군가 밑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니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만족도가 높지 않다. 자기 주도적인 삶과 비교할 때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시스템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하니까.     


소위 명문대를 나오고 엘리트 집단이라고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노동자 계급이다. 연봉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 똑같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누군가 만든 세상에 부품으로 살아가니까. 내가 그만둬도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맡는다. 그러니 부품인 셈이다.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하지만 경제 불황이 오면, 오히려 칼바람이 분다.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그런 게 바로 노동자 계급이다.     


두 번째 계급은 나름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개인 사업자 정도로 보면 되겠다. 최소한 남 밑에서 일하는 건 아니다. 내가 사장이니까 얼마든지 1단계 노동자 계급인 직원을 둘 수도 있다. 그래서 2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점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위험한 점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단계든 불안정성이 있다. 그래서 진로를 선택할 때 어느 불안정성이 더 나에게 위험한지 살펴보고 정하면 유리할 것이다. 정규직으로 취직해서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을 할 것이지 혹은 정년은 보장되지 않지만 내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인지 정하란 말이다. 사람들이 공무원을 선호했던 이유는 모두 안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공무원도 안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치솟는 물가에 비해 월급이 형편없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까지 나왔고, 힘들게 공무원 시험도 붙었는데 고작 150만 원 받고 있으니 현타가 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나 돈이 만족의 잣대가 된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당연하다. 결국에 모든 건 돈 때문인가?           



     

주변에 퇴사를 실행한 친구가 하나 있다. 관리직급으로 승진하기 전까지는 만족하면서 다니던 친구였다. 왜냐면 야근 수당과 주말 수당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진급 후에는 관리직이라는 이유로 수당이 사라졌다. 일은 더 많이 하는데, 결국에 받는 돈은 적으니까 불만족을 느낀 것이다. 그 친구도 평일에는 매일 야근, 주말까지 나가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우리 나이대는 일이 몰린다. 능력치와 경험치가 올라왔고, 관리직 역할을 하는 시기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과로사도 많고 퇴사도 많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나는 휴직자. 친구는 퇴직자.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직장에 다니지 않는 상황만은 같았다. 둘이 만나서 대화 주제는 앞날에 대한 고민이었다. 복직과 이직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니까. 혹은 신분 상승의 꿈도 꿔본다. 1단계 노동자가 아니라 2단계 이상의 직업을 선택해 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자금이 없으니 만만하지 않다.     


친구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무자본 창업인 셈이다. 여행 유튜브가 되고 싶은데, 아직 돈벌이가 없으니 명상 채널을 시작했다. AI 기술이 좋아서 편집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구독자가 늘지 않아 고민이란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으니 마음도 불안한 상태라고. 로또라도 되면 좋겠다 싶어 매주 만 원씩 산다고 했다. 근데 5천 원도 당첨이 안 되니 맨날 돈만 까먹기만 한다고 투덜거린다.      


둘이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면, ‘백수끼리 만나서 잘 놀고 있네’라고 하며 농담을 하곤 한다. 어쨌든 회사에 나가지 않고, 돈을 벌지 않고 있으니 백수가 맞다. 마흔을 넘긴 가장 둘이 참으로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걸 잠시 쉬는 이유는 같았다. 둘 다 번 아웃이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니던 직장에 있어도 미래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평생 남 밑에서 일하다가 삶이 끝나는 거니까. 현대판 노예가 틀림없지 않은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힘든 것이다. 우리만 그렇겠는가. 다 그렇겠지. 하지만 실천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안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아파트 대출금, 관리비, 카드값 등 고정으로 나가는 돈을 어떻게 메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 노예라도 좋구나 하고 참고 살아야 할 수밖에.          



   

3단계는 기업가다. 쉽게 설명해보자면, 주식 상장한 회사라고 볼 수 있다. 1인 기업가도 포함되냐고 물으면 형태는 맞지만, 규모로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대기업으로 설명해보자면, 한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회사의 회장이 기업가라고 볼 수 있다. 가맹점주는 자기 사업을 하는 거니까 2단계, 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1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마흔에 퇴사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2단계뿐이다. 다른 회사의 노동자가 되어 1단계로 다시 돌아가거나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쳐서 창업하는 방법뿐일 테니까. 은행권에서는 명예퇴직 대상자 시기인데 나름 퇴직금을 두둑하게 챙겨준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에 인생 역전해서 3단계로 올라가기는 힘드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덧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진짜 80년대 생들이 늙어서 노인이 되면 100세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지금보다는 많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빠르면 50대 퇴직, 공무원 같은 사람들은 60대에 퇴직하니까. 여생을 고작 쥐꼬리만 한 연금에 의지하면서 살면 입에 겨우 풀칠만 하고 살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 걸 목격했기에.   

  

이제는 50~60대가 되어 퇴직하고 난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이왕이면, 20~30대부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을 찾지 못한다면, 벌 수 있을 때 저축이라도 많이 해서 나중에 쓸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 정도로만 생각하지 못하니까. 결국에 이런 고민은 스스로 하고 대책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20~30대라면 얼마든지 직장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 조금 불안하다. 50대가 되면 이미 늦었다. 그러니 20~30대부터 나의 진로와 인생 계획을 멀리 100세까지 봐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바쁜 일상에 그러기 쉽지 않다. 당장 오늘, 내일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허덕일 테니까. 아마도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면, 이미 50대, 60대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요새 유행이 있다. 바로 재테크다. 재테크 중에서도 주식과 부동산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방법이다. 젊을 때 바짝 벌어서 은퇴하는 파이어 족도 있다. 알고 보면 이들은 4단계에 해당하는 투자자다. 1~2단계에서 꼭 3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소액 투자를 계속 이어가면 나중에는 진짜 투자자가 될 테니 말이다.    

  

한 예로, 내가 5년 동안 작가로 책 쓰고, 강연해서 번 돈은 1억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매와 공매를 공부해서 5년간 200개 가까이 되는 건물이나 땅에 투자한 다른 사람은 100억 정도의 자산을 구축했다. 작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작 1단계에 머물지만,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은 4단계로 올라간다. 수익도 100배 차이가 난다. 이렇게 보면 4단계 투자자가 왜 가장 높은 포식자 자리에 위치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1단계 중에서 가장 많이 돈을 주는 것에만 매달려왔을까.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게 성공이라 믿었다. 물론 그것도 성공이 될 수 있다. 80% 사람 중에는 최상위에 해당하니까. SKY에 가려면 2% 안에 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1단계 노동자 중에 2%였던 것이었다. 전체로 놓고 보면, 투자자나 기업가가 만든 시스템에 노예로 들어가 일하는 셈이니까.      


책을 읽고 세상의 시스템을 이해한 이후로 내 생각이 달라졌다.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왕 한번 사는 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1~2단계에서 더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2단계를 하다가 3단계로 넘어가면 더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차라리 작은 규모라도 4단계로 넘어가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자금을 계속 모으려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투자할 자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쌓일 테니까. 20대에는 연애와 취업, 30대에는 결혼과 육아 이야기 주제로 꽃이 핀다. 하지만 40대가 되면 아이들 교육비와 재테크 같은 주제로 넘어온다. 그리고 건강과 직장생활에 대한 주제도 이어진다. 슬슬 건강이 안 좋아지고, 직장에서는 무한 업무로 삶이 지칠 대로 지치기 때문이다.       


   



휴직한 이후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매일 산에 오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맨발로 흙을 밟는 게 좋다고 해서 내려올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걸었다. 처음에는 느낌이 이상했지만, 일주일 정도 하니까 금방 적응됐다. 그렇게 석 달 정도를 꾸준히 했더니 5kg 정도 몸무게가 줄었다. 심장 근처 근육도 덜 땅겼다. 호흡도 많이 좋아졌다. 역시 꾸준한 운동을 우리에게 건강을 찾아준다.      


내가 직장생활로 힘들 때 잠시 연락이 닿았던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그때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아직 초반인 거 같길래 빨리 운동을 시작하라고 말해줬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좋으니까. 최근에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나서 연락했다.      


“요즘은 어때?”

“그때 너한테 말 듣고 바로 운동 시작했더니 이제는 괜찮아졌어.”     


다행이었다. 적어도 그 친구는 마음의 감기가 오기 전에 예방했으니. 40대 초반 아이가 둘인 가장이 느끼는 무게는 숨 쉴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이 말이 맞는 것 같아. 공부할 때가 가장 좋은 거라고 했던 말.”

“그치? 그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해서 이렇게 부모가 되는 게 힘든 줄 몰랐어.”

“맞아. 이제야 직접 경험하니까 알겠더라고.”

“그래. 어려워도 힘내보자. 건강부터 잘 챙기고. 가족을 위해서라도 아프면 안 되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 대화할 친구가 사라진다고 한다. 친구가 10명이라면, 50대 이후부터는 나이대가 곧 세상에서 사라진 친구의 비율이라고 했다. 만일 70대라면 10명 중 7명이 없다는 의미다. 그렇게 다들 서서히 세상을 떠나게 되니까. 40대인 나는 이제 주변에 40%의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 과로사든 자살이든 스트레스로 혹은 건강 이상으로 주변에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벌초에 갔다가 과로사로 죽은 친구도 알고 보니 정신과 진료를 받는 중이라 했다. 80년대생으로 태어나 40대 초반의 나이는 어느 때 보다 더 삶의 무게가 무거우니까. 그리고 우리보다 1살 많은 친구의 누나도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번개탄을 피우고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우리 뇌는 위험을 느낄 때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과거 맹수로부터 위협을 받은 역사로 인해 생긴 특성이다.      


피하는 방법으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어찌 보면 더 편한 길을 생각한 걸지도.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게 더 힘들 수 있으니까. 그러면 안 되니까 차라리 퇴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공무원인데,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다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 테니까. 아무리 62세까지 정년 보장이 된다고 해도 중간에 스트레스로 죽으면 안 되니까.     


정년 보장이 누군가에게는 안정감일 수 있지만, 반대로 숨 막히게 그곳에서 산다면 그건 안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퇴사한 내 친구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 있다가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퇴사를 선택한 것이다. 위기에서 탈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니었으면 나는 친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르니. 오히려 퇴사를 축하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나 또한 살기 위해서 휴직을 선택했다. 하지만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궁금했다. 정보를 찾다 보니 모든 건 세로토닌에 있었다. 하루 종일 건물에 갇혀서 쉬지 않고 했던 생활이 문제였다. 햇볕을 쐬지 않으면, 세로토닌이 생기지 않는다. 눈으로 빛을 받아야지만 세로토닌이 생기기에.      


그리고 리듬감 있는 동작이 있어야 세로토닌이 생긴다. 약간 빠른 걸음, 껌 씹기, 밥 꼭꼭 씹어 먹기 등의 행동이 도움이 된다. 만일 아침을 거르거나 선식과 같은 마셔버리는 음식을 선택하면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는다.      


우리가 잠을 자기 위해서는 멜라토닌이 필요하다. 참고로 멜라토닌은 낮 동안 우리가 만든 세로토닌이 어두워지면 멜라토닌으로 변한다. 그래서 낮에 야외 활동을 충분히 하면 더 잠이 잘 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건물에 갇혀서 해를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식사도 급하고 빠르게 간단한 음식으로 대체한다. 그러니 세로토닌이 부족할 수밖에.     


멜라토닌이 부족하면 불면증에 걸린다. 불면증에 걸리면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우울감이 생긴다. 이게 심해지면, 마음의 감기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로토닌 생성을 위해 꾸준하게 매일 노력해야 한다.      


3개월간 등산하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걸 느꼈다. 그런데 여름이 되니 너무 더워서 등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다시 지냈더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작은 것에도 금방 화가 나서 폭발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세로토닌 형성에 산책이 좋다고 하여 빠른 걸음으로 점심 먹고 1시간, 저녁 먹고 1시간 밖으로 나갔다. 다시 일주일 꾸준하게 하니까 건강이 좋아졌다. 하지만 또 멈추면, 또 문제가 생긴다. 무한 반복이다.     


만일 퇴사한다고 해도 건강 악화로 인한 불명예 퇴사를 바라진 않는다. 그래서 더 열심히 매일 운동한다. 그리고 퇴사 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공부한다. 책 읽고, 내용 정리하고, 내 삶에 적용해본다. 이왕이면 남은 인생에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한다. 지금으로선 작가의 길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동안 해온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휴직 후 가장 좋은 점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가족이 아침, 저녁으로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점이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삶과 반대다. 게다가 자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는 아내와 종종 평일인데도 데이트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평일 낮에 직장 안 다니고 우리처럼 노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매일 할 수 있는 점이다. 일에 치여서 피곤하고, 시간이 부족해서 글도 못 썼으니까.      


만일 지금 생활만으로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직장에 다시 돌아갈 이유는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거니까. 하지만 매달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쉽지 않다. 마치 프리랜서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다만 그나마 희망적인 건,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는 즐겁게 일한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더 오래 일할 때도 있는데도,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니까 동기 부여가 충만하다.      


다만 작가로서의 일은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규칙적으로 일이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고정 지출이 있으니 매달 부담이다. 예산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파산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또 가슴을 콕콕 찌른다. 스트레스 지수가 다시 높아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런 증상이 더 자주 올 것만 같다. 그래서 돌아가기가 두렵다. 고작 돈 몇백만 원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순간이 오면 안 되니까 돌아갈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 갈고 닦아서 내 경제 활동 1순위 비율로 만들기 위해. 언젠가는 나도 좋아하는 일만 하며 충분히 먹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내년에도 휴직을 연장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나의 선택은 지금 당장 퇴사가 아니라 휴직을 1년 더 연장하는 것이다. 1년 후 나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 매일 퇴사 마려운 걸 어떻게 참아야 할는지.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만이 알 수 있겠지?


가끔 삶이 힘들 때면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본다. 영화 속 주인공의 어떻게든 아들을 먹여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면 내가 생각난다. 끝까지 꿈을 지켜내는 주인공을 본받는다. ‘꿈이 있으면 지켜야 한다는’ 그의 말이 귓속에 맴돈다.      


혹은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더 이퀄라이저》라는 영화를 본다. 아내가 죽기 전에 읽던 100권의 독서 리스트를 자기가 죽기 전에 다 읽으려고 한다. 나도 나중에 생을 마감하기 전에 과거의 삶과는 다른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거기에 한 소녀가 ‘자기 세상에선 불가능하다’라는 말에 ‘그럼 세상을 바꿔’라는 말을 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치 소설 《데미안》에서 새가 태어나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그러니 나만의 세상을 바꾸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내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선조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인생이 바뀌려면 사람, 직장, 집 이렇게 3가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모두 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다. 집을 제외하고 나머지 2개는 직장을 바꾸는 순간 함께 바뀐다. 그런 면에서 퇴사는 우리 인생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엔딩곡)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바꿔 바꿔 사랑도 다 바꿔. 바꿔 바꿔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세상을 다 바꿔.”     


*바꿔

- 1999년 10월에 발매된 가수 이정현의 ‘Let's Go To My Star’ 1집 앨범, 4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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