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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22. 2023

에필로그. 그리고 10년 후

소설 같은 이야기

          

“띠리띠리- 띠리띠리- 아침 6시입니다. 일어나세요. 잠을 깨우는 마사지 시작하겠습니다.”     


스마트 침대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알람과 동시에 마사지가 시작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었다. 말 한마디면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아날로그로도 살아갈 수 있다.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정하기 나름이니까.     


“마사지가 끝났습니다. 기상 보조 모드 작동할까요?”     


기상 보조 모드는 침대랑 한 몸이 된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아주 고마운 침대 기능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일어나기가 힘든데 자동으로 설 수 있게 해주니까. 나도 자주 이용하지만, 오늘은 왠지 아날로그로 살아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과 대면으로 만나는 날이니까.     


“엠제이. 오늘 아침은 한식으로 준비해줘.”     


최근에 구매한 스마트 AI 셰프 기능으로 건강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아이들도 말 한마디면 자기가 원하는 식단으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아침을 거르지 않는다. 심지어 자동 설정을 해두면 자기가 알아서 부족한 밀키트를 주문한다. 한식, 중식, 일식 등 메뉴가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저녁에는 다 같이 모여서 예전 방식 그대로 함께 요리해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집에 함께 사는 식구가 아닌 느낌이 드니까.     


그리고 오늘은 광명역까지는 가는 길 멀지 않으니 자율주행 기능을 끄고 직접 운전해서 갈 예정이다. 내가 차 근처에 오니까 자동으로 시동이 걸린다.      


“엠제이. 수동 주행 모드로 전환해줘.”

“수동 주행 모드로 전환합니다.”     


전기차라서 조용하지만, 수동 주행 모드로 바꾸면 인공 배기음 소리를 들려준다. 과거에 운전하던 느낌과 똑같지는 않지만, 나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엠제이.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 콘서트 버전 노래 틀어줘.”     


운전할 때 꼭 듣는 노래다. 10년 전 아이유 팬클럽 ‘유애나’ 8기에 가입해서 아이유 콘서트티켓팅에 성공해서 아내와 함께 갔을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다. 관객들의 함성이 크게 들리기에 콘서트 현장에서 느꼈던 전율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듣는다. 하루를 기분 좋게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노래가 좋아서 반복해서 3~4번 듣다 보니 어느새 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주차도 수동으로 해본다. 역시나 자주 하지 않으면 실력이 줄어든다. 10년 전이었으면 한 방에 성공했을 텐데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즐겁다. 너무 완벽하면 로봇 같으니까. 인간미가 느껴지니 좋다.      


7시 45분 부산행을 타기까지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강의가 있는 날이면, 이렇게 미리 역에 도착해서 글 쓰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1번 출구 앞에 있는 아날로그 카페를 애용한다. 사장님이 직접 카페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무인 카페에 가도 음료 맛은 같지만,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 짠맛이 나는 건 아니지만, 인사도 나누고 대화하며 느끼는 사람 냄새가 좋다.      


카페 창밖으로 전광판에 긴급 뉴스가 나온다. 정치인 한 명이 특허권 위배로 긴급 체포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름을 보는 데 뭔가 모를 익숙함이 있다. 자세히 보니 10년 전 내가 공들여 쓴 책을 말아먹은 출판사 대표와 이름이 같다. 얼굴을 보니 그 사람이 맞다. 그렇게 사람들 등쳐먹고 살더니만, 결국에 파국을 맞이했구나.      


10년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 소식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아무것도 한 건 없지만 통쾌한 복수를 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이 죄를 짓고 살면 벌을 받는구나 싶었다. 뉴스 속보가 끝나니까 광고판에 책 소개가 나온다. 내가 쓴 《83년생 이야기》 종이책이 100만 부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 판매 광고다.     


지난주에 내가 골랐던 표지 디자인이었다. 2030년대인 요즘은 종이책이 100만 부가 팔리면 과거에 1,000만 부 팔린 것과 같다. 디지털 세상이 되니 사람들이 다들 AI 이용해서 빠르고 쉽게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소설과 같은 문학 종류만 종이책으로 출간한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 수에 비해 100만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있다. 책값도 재료비, 인쇄비, 인건비 등 모두 올라 이제는 5만 원 정도 하기에. 쉽게 종이책을 사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게다가 마지막 검수는 사람이 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하고 정확한 AI 시대가 왔어도 여전히 사람 손길이 닿는 일이 있다. 비용은 비싸지만.     


출발 10분 전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2배는 빠른 자기 부상 열차도 있지만, 오늘은 추억이 깃든 KTX를 타기로 했다. 자기 부상 열차가 생기기 전에 KTX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했던 기억이 가득하니까. 돈이 없던 시절에는 좁은 일반석에서 몸을 구겨가며 노트북을 켜고 책을 쓴 추억이 있으니까.      


그나마 일찍 예약하면 조금 넓은 5호차 맨 앞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원래 특실이었다가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기에 구조가 비슷했다. 물론 맨 앞자리만 1인석이 있을 뿐이었지만. 강연이 2주 전에도 들어올 수 있으니 항상 5호차 맨 자리를 맡을 수는 없었다.      


작가로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특실을 애용했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는 것도 아닌데,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1~2만원도 아끼며 살아야 하는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특실은 사치였으니까. 그런데 그 사치를 부리니 얼마나 좋았을까. 확실히 공간이 넓고 여유가 있으니 피로감도 적었다.      


특실을 이용할 때도 일부러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았다. 전기세라도 아껴보자는 심정에서였다. 오래 기른 생활 습관은 쉽게 버릴 수가 없기에. 오늘은 특별히 앞 공간이 넉넉한 맨 앞자리로 잡았다. 급속 충전기가 있어서 콘센트 자리 따위는 필요 없었기에. 공간이 넓으니 비즈니스석이 따로 없다.      


여전히 특실 서비스로 간식과 물이 제공되었다. 간식에는 특별히 현대인을 위한 ‘세로토닌 껌’이 들어있었다. 자외선이 강해져서 사람들이 너무 오래 밖에 있으면 피부암이 걸리니까 건물 안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양산을 쓰거나 선글라스가 필수라서 눈으로 빛을 다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세로토닌 결핍으로 마음의 감기에 자주 걸린다.     


세로토닌 껌 레몬 맛이다. 새콤한 맛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다. 최근에는 아이셔 세로토닌 캔디도 나왔다. 사탕을 다 먹고 나면 안에 껌이 있어서 질겅질겅 씹을 때 우리 스스로 세로토닌을 만들 수 있다. 태양 빛 말고도 리듬감 있는 동작은 세로토닌을 만들어내니까. 껌으로 개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차 속도가 적당하니 창밖을 보는 재미도 있다. 자기 부상 열차를 타고 밖을 보면 어지럽다. 특수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 안경 대여비가 기차 승차권보다 비싸다. 역시 희소성이 있으면, 값이 올라간다. 그래서 내가 요즘 하는 대면으로 만나는 강의도 비싼 가격에 팔린다. 마치 가수들의 콘서트 티켓 값이 비싼 것처럼.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와 만나고픈 독자들은 기꺼이 카드를 긁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부산 사람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강연이 끝나면 나는 광안리 숙소에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에 광안리 해변을 산책할 것이다. 이른 아침 돼지국밥 한 그릇 비우고 걷는 광안리 해변은 LA의 롱비치를 연상케 하니까. 마치 외국에 온 느낌이다. 다행히도 숙소비는 들지 않는다. 법인으로 광안리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기에. 평소에는 관광객들에게 Airbnb로 빌려주었다가 내가 필요할 때는 예약을 막아 둔다. 부산에 올 때마다 항상 생각했다. 광안리 앞에 별장용 아파트를 꼭 구매할 거라고. 《83년생 이야기》 덕분에 그 계획도 이뤘다.      


그러고 보니 계획한 일들을 많이 이룬 것 같다.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은 오직 10%라고 하는데, 나머지 90%와의 차이점은 ‘실천’ 여부다. 나는 매일 3시간 이상 글을 쓰고,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비록 직장은 그만두었지만,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많이 일했다. 역시나 몇 년간은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야만 했지만, 안정권에 들어서니 2단계로 올라갈 수 있었고, 매출이 오르니 3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비록 1인 기업이라 대기업 회장님과는 다르지만, 아웃 소싱으로 직원을 두고 있기에 분명히 3단계 구조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돈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에도 주식에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내가 돈이 생기면 꼭 하고 싶은 일은 장학사업이었다. 꿈은 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랐기에.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만 전파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나도 힘들 때 나의 멘토들이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었기에.      


어찌 보면 건조하고 삭막한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이 가장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결국 내가 잘될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으니까. 오늘도 그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본다. 다 함께 손잡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세상을 바꾸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다. 여전히 힘든 일이 있지만, 또 무너지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넘어져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 이왕이면 내가 주도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엔딩곡)     


“느낌이 오잖아 떨리고 있잖아.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니. 네 맘을 말해봐 딴청 피우지 말란 말이야. 네 맘 가는 그대로 지금 내 손을 잡아. 어서 내 손을 잡아.”     


*내 손을 잡아

- 2011년 5월에 발매된 가수 아이유의 곡으로 드라마 ‘최고의 사랑 OST’ 4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83년생 이야기>의 저자 신영환 작가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반, 허구 반으로 이루어진 소설도 수필도 아닌 장르를 넘나드는 그냥 '이야기'입니다.


40대가 가장으로 살아가며 더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조금이나마 제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직시하고, 그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와 같은 또래라면 그래도 공감해주시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매일 3시간 씩 책을 쓰며 더 성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브런치 공모전 마지막 날 <83년생 이야기> 원고를 마감하며...


작가 신영환 올림.


덧, 부산행 기차는 아니지만, 대구행 기차안에서 쓰는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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