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미국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 대선 후보 당시 내걸었던 대선 문구다. 이 문구 하나로 클린턴이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이겼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문구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될 정도로 임팩트를 남겼다.
문장 하나에 빌 클린턴의 차별점을 잘 드러낸 카피 라이팅의 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경제 상황(전임 H. W. 부시 대통령이 당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과도한 긴축 정책을 펼치다 불경기를 야기한)과 이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면 공허한 울림에 그쳤을 것이다. 에센스를 한 문장으로 너무나도 잘 표현한 것이다.
이 문구는 조직문화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조직문화라는 망망대해에도 이렇게 에센스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문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 HR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시니어분들에게 물어봐도 답은 비슷하다. "그런 걸 내가 알았다면 여기에 없지!"
내가 하는 일, 나의 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미션이니 비전이니 핵심가치이니 리더십이니 채용 브랜딩이니 인터널 브랜딩이니 인재 육성이니 제도 기획이니 등 많은 일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에센스(본질)를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방향성과 의미를 모른 채 일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의 본질,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 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번 글에서 나는 조직문화를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조직 구성원이 조직의 단기적 생존과 장기적 가치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정립된 말, 행동, 그로부터 도출된 결과물의 총체적 합이다.
여기서 내 일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위에 열거한 내가 하는 여러 일들(미션이니 비전이니 핵심가치이니 리더십이니 채용 브랜딩이니 인터널 브랜딩이니 인재 육성이니 제도 기획 등)은 결국 '조직의 단기적 생존과 장기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조직문화(생존과 번영 위해 오랜 기간 정립된 말과 행동, 그리고 도출된 결과물)라고 대변되는 모든 것의 종착지는 조직의 생존과 번영을 위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일, 나의 업은 모두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럼 조직의 생존과 번영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이를 이룩하기 위한 구성 요소(핵심 레버리지)는 무엇일까? 이를 알 수 있다면 내 업의 본질 또한 알 수 있지 않을까?
조직의 생존과 번영의 구체적 의미
쉽고 동시에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 당신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얼 해야 하고,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합니까(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왜 존재해야 하나요?)라는 질문과 같다. 얼마든지 쉽게 답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생존이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삽니다!' 이렇게 살아도 문제는 없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 살고 있다. 삶은 쉬워진다. 무엇을 해야 하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도 매우 단순해진다.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당장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비슷하나, 질문을 하나 더 보태는 순간 매우 복잡해진다. '당연히 돈 벌어야지, 그런데 돈을 버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야? 돈 벌어서 So what?' 돈을 버는 이유와 돈과 나의 존재를 연결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도 이와 비슷하다.
"매출! 매출! 매출!"은 첫 번째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가치! 가치! 가치!"는 두 번째 번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 당장 매출을 올려야 하고(돈을 벌어야 하고), 미래를 위해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내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이를 확장하는 등). 이 둘은 모두 필요하기에 둘 간의 중요성을 논할 필요는 없다. 많은 기업(사람)이 둘 사이를 오고 가며 무엇이 옳은지, 좋은지 등을 따지는 경우가 있는 데 이는 의미가 없다. 상황에 따라 비중의 차이는 둘 수 있지만, 양자택일의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한다. 생존을 위한 활동에는 가치가 깃들어 있어야 하고, 가치는 생존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것 같다. 내 일은 오랜 기간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우리의 말과 행동, 결과물을 최적화시키는 것이다. 즉, 단기적으로는 생존하기 위해 '성과'를 촉진하고, 장기적으로는 번영하기 위해 '성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내 업의 본질을 '비즈니스의 성공과 성장을 촉진하는 정신적, 물리적 시스템을 개선하고 창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조직의 생존과 번영의 핵심 레버리지
그러면 구체적으로 '비즈니스의 성공과 성장을 촉진하는 정신적, 물리적 시스템을 개선하고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첫 번째는, 우리가 일상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 나가는 방식(업무에 초점, Work-Oriented)에 초점을 맞춘다.
즉,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일상에서 목표를 달성해 가는(일하는 방식) 방식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OKR이니 MBO니 하는 것들은 목표 달성 방식의 효과적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수단은 우리의 비즈니스 성공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도구여야 한다. 혹 'OKR만 도입하면 된다'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첫 째도 비즈니스, 둘 째도 비즈니스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직문화를 다루는 사람은 CEO여야 하거나, CEO로라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상세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emethlee/137
글 요약
1) 우리의 비즈니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 (고객 특징, 우리 제품/서비스 차별성, 비즈니스 모델 등)
2) 우리가 비즈니스의 목표 달성 방식을 최적화하는 것 (문제 정의, 목표 설정, 목표 침투, 목표 달성 위한 조직 최적화(팀 빌딩), 실행, 점검, 데이터 수집, 수정 및 재실행 등)
두 번째는 우리의 성장을 강화해 나가는 방식(사람 자체 & 사람의 성장에 초점, People-Oriented)에 초점을 맞춘다.
조직에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의 공백 상태가 있다. 조직은 일을 하기 위해, 즉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일 외적인 요소들이 일과 사람을 떠 받치고 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그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 간 암묵적인 약속 등 보이지 않지만 공기와 같이 조직에 살아 숨 쉬는 정령(공유하고 있는 믿음이나 행동 규범과 같은)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령, 아래는 우리 딸도 알법한 우아한 형제들의 규칙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예일뿐이다. 위와 같은 행동 규칙은 우리 조직의 지속적이며 장기적 관점의 성장을 촉진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장기적 관점의 번영(성장)이라고 하여, 단기적인 성공(목표 달성)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위험할 수 있는 오해이다. 성장은 생존하려는 발버둥에서 싹 트고 시간은 반복된 생존 노력을 성장이라는 열매로 바꿔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의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면 다른 것이 보일 것이다.
내 업의 본질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가 정의해 준 대로만 내 일을 정의하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가 해야한다고 하는 일만 하거나 중요하다고 일러준 대로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직문화 담당자가 아니어도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정의해 보자. 본인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제야 당신의 일이 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OOO이야!!
당신에겐 ‘한 줄’이 있나요?
그 ‘한 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