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조직에는 안 통할 수 있습니다.
* 제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가설입니다. 제가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여러분 조직에도 무조건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만 하시기 바라며, 효과성은 직접 해보시고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5년 간 너무나 잘 나갔던 회사였어요.
지난 3년 간 연 매출이 300%씩 껑충껑충 뛰었죠!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회사의 가치를 알아보고 엄청난 투자금이 몰렸죠!
반짝했던 상승세가 꺾이면서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외친다. 위기로 보이는 상황에 처한 기업이든 사람이든 이 위기라는 상황을 정의 내리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면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든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든 우리가(내가) 처한 상황을 위기로 정의하는 순간, 위기 모드로 삶이 재조정되고, 이렇게 재조정된 삶은 우리 삶에 장단기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현시대의 위기는 과거의 그것과 약간 다르다. 과거 사바나 초원에 살던 인류에겐 명확히 눈에 보이는 위기가 존재했다. 사자와 같은 맹수를 눈앞에서 만나는 상황은 그 자리를 피하거나 앞의 사자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러나 현시대의 회사가 처한 위기는 약간 다르다. 당장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 정주영 회장은 강연에서 전쟁 빼곤 실질적인 어려움(위기)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기업 상황이 정주영 회장의 시대와 또 달라 기업의 수명 주기가 예전보다 많이 빨라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상황에 대한 정의는 신중해야 한다.
'신중'하게 '위기'를 정의하는 방법
경영진이 회사 상황을 위기로 정의할 때는 반드시 '위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구성원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3년 간 연 매출 성장률이 300% 였다가 올해 예상 연 매출 성장률이 200%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 경영진의 가장 큰 책무 중 하나는 구성원과의 소통과 합의다. 이 상황을 위기라는 데 동의하고 이후 일어날 호들갑에 납득할 만한 구성원이 있겠는가? 가장 좋은 것은 평소 경영진이 구성원과 회사 상황을 알려 주는 재무 지표 등을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이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과정도 없이 경영진이 밀실(?)에서 논의하여 마음대로 '위기'라고 정의하는 것은 득 보다 실이 훨씬 많다. 특히 이러한 상황으로 인한 구성원과 경영진 간의 불신은 이후 진짜 '위기'가 될 수 있다. 아래는 경영진과의 워크숍에서 실시한 문제 해결 프로세스이다.
('객관적 현상 진단'을 위해 경영진들이 논의해야 할 질문 몇 가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현상의 탐구)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1-2년, 길게는 5-10년 동안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가? (현상의 해석)
이러한 영향은 우리가 기대했던 또는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필요하지 않은 영향인가? (현상의 해석)
이러한 영향은 얼마나 시급한가? 우리의 당면 목표(생존&성장)를 수행하는 데 있어 얼마나 치명적인가? (현상의 해석)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위의 논의를 할 때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편견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쉽게 예를 들어 보면, 돈을 100만 원 벌다가 90만 원 벌면 무조건 안 좋은 것이다, 살이 찌면 무조건 안 좋은 것이다 등등의 생각은 우리의 객관적인 상황 탐구를 방해할 수 있다. 기업 장면에서는 주로 과거의 성공을 미화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기업 장면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영광에 메여 있어 정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이러한 우리의 가정들을 열린 마음으로 내려놓고 탐구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토론은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위의 질문에 대해 경영진이 열린 자세로 충분히 논의를 거친 뒤에는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우리의 논의 상태를 점검해 보면 좋다.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사려 깊게 고민하고 논의하였는가?
혹시나 경솔하게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논의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납득하였는가?
구성원이 충분히 납득 가능하도록 소통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도 우리 상황을 '위기'라고 정의한다면, 다음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구성원과 경영진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사실 기술이 있다. 단순히 메신저나 이메일로 일방향식 전달이 아니라 아래의 구조에 따라 전략적, 체계적으로 다뤄지면 좋다.
(Communication Process)
1. 결론 - 경영진은 현재 상황을 '위기'라 정의하였다.
2. 왜 - 경영진이 생각하는 '위기'의 기준은 이러하다.
3. 무엇을 근거로 - '위기'의 기준을 충족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4. 어떻게 ① - 누가 언제 어디서 모여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세스에 의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5. 어떻게 ② -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슈가 있었고 이슈는 이러이러하게 정리되었다.
6. 그래서 어쩌라고 - 그래서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이런 걸 할 것이고(경영진 역할), 구성원들은 이런 것들을 해줬으면 한다(구성원 역할).
7. 앞으로 어떻게 - 위의 액션을 향후 OO개월 동안 실시할 것이고, 실행 관리는 이런 식으로 할 것이다.
8. 예상 가능한 문제 - 실행 간 예상 가능한 문제는 이러이러하다.
9. 문제 예방책 - 이 문제가 발생 시 이러이러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10. 피드백 요청 - 위 열거된 사안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달라.
11. 피드백 to 피드백 - 위 요청 사항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까지 어떻게 처리될 것이다.
여기까지 제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무얼 하든 구성원의 수용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물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해당 과정에서 경영진의 진정성이나 객관적 상황 인식에 대한 온도 차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체계적 프로세스를 거친다면 구성원의 수용도는 단순히 메시지를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위기'를 예로 들었으나, 사실 기업 장면에서 경영진의 소통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너무 절차가 많거나 복잡하다면 간략하게 진행해도 되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 구성원과의 신뢰를 쌓은 뒤에 하는 것이 좋다. 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하거나 문제해결 하는 방식이 아니다. 사실 이는 경영진이 구성원과 신뢰를 쌓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매우 섬세해야 한다. 외부 고객과 소통할 때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하나 더!
경영진이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땐, 그것이 우리 조직의 얼굴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영진이 아무렇게나 위기를 설정하고 구성원을 관리 감독하며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구성원 얼굴이 바로 우리 조직의 미래 얼굴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위기'라고 비용을 줄이고 구성원을 관리 감독하는 것은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일까? 그 방법이 유일한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혹시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조직을 더욱 강하게 재정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위기일수록 창의성이 필요한 때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