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힐링
엄마는 조금 들떠있고,
나는 차멀미로 지친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파주 집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차는 서울을 벗어나서야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었다. 금세 어둑해진 창밖으로 가게 간판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정규직 전환 공지가 뜨고 나서야 엄마에게 소식을 알렸다. 그전에 확정이 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로 알릴 수가 없었다. 말하면 틀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새 아빠와 동생에게 소식을 전하고, 옆집 언니한테도 한바탕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정규직 기념으로 집에서 맛있는 걸 해 먹자느니. 어떻게 그렇게 일이 잘 풀렸냐느니, 운전대를 잡은 채로 대답과 질문을 동시에 했다.
열심히 다녀서 시켜줬나 봐
개근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렇게 말해봤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거의 1년 가까이 이곳에서 인턴으로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곱씹어봤다.
그래서 기분이 어때? 이제 취업 준비 안 해도 되니까 좋지?라고 묻는 엄마에게 좋지.라고 짧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아직까지 달라진 건 직함뿐이었다. 내 일상은 신기할 정도로 똑같았다. 하던 일도, 점심 메뉴도. 이게 뭐라고 아등바등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파주로 들어서니 번쩍거리던 가게 간판들이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이 복사기에 찍어낸 듯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 잔잔한 기분은 뭘까.
확실히 들뜨거나 신 나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엄마처럼 파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쳐지는 것도 아닌, 묘하게 좋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강가에 비치는 달빛처럼.
집에 다 와갈 무렵, 조급해진 나는 그 기분을 ‘안전한 기분’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이 반짝하고 떠졌다.
거실로 나오니 커튼을 다 친 탓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파주 집의 아침은 유난히 더 밝은 느낌이다.
창문을 내다보니 고양이 세 마리가 묘한 삼각형을 이루며 포장도로 중앙에 떡하니 누워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자기 집 안방처럼 있었다!)
어쩜 저렇게 가만히 누워만 있을까. 심심하지도 않나 싶었지만 그러기엔 고양이들이 너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각자의 자세를 잡은 모습을 보니 카페에서 본 여자들이 생각났다.
그날은 외근을 갔다가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 생각지도 못하게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강가 뷰가 좋았지만 그런 걸 볼 여유는 없었다.
테라스에는 세 명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할머니치곤 젊어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케이크와 커피잔이 어지럽게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와 한몸이라도 된 듯 푹 눌러앉아 강을 보고 있었다.
빈 의자를 끌고 와 스툴처럼 쓰기도 하고, 이따금 고개를 돌려 한두 마디씩 하기도 하며.
모니터에 눈을 두면서도 마음은 창문 너머로 가 있었다. 인생 중 가장 바쁜 날들을 끝마치고 친구와 카페에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얇은 통창문 너머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주중의 오후 세시, 저들은 케이크 칼로리를 계산하지도, 빨리 들어가 봐야 한다고 친구를 보채지도 않으리라. 그 모습은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저 팔자 좋은 고양이들이 언제까지 저렇고 있나 지켜보았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게으른 고양이들이었다. 결국 지루해져서 아침밥을 먹기로 했다.
소파에 벌렁 누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TV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려 봤다. 딱히 보고 싶은 건 없었다.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간, 집밥을 너무 잘 먹은 탓인지 나긋한 기분에 잠이 왔다.
고양이들은 어떻게 누워있더라. 머리를 소파 밑으로 떨어뜨리고, 다리를 꼬아 소파 위로 비스듬히 얹어봤다. TV가 거꾸로 보여 불편했지만, 또 묘하게 편했다. 잠이 올 것 같아서 깨기 위해서라도 이 자세로 있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삐리릭-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가 다시 들어왔다. 잠이 딱 들던 차였는데. 깨기 싫은 마음에 실눈을 뜨고 엄마를 보니 밖에서 텃밭을 만지다가 왔는지 호미 같은 거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왜 그러고 누워있어?
그냥. 이게 편해서.
하여간 너는 애가 좀 이상해 라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곤 부엌으로 가는 엄마였다.
엄마는 요즘 텃밭을 가꾸는 데 재미를 붙였다. 매일 같이 상추며 고추며 하는 것들을 뜯는다고 한다. 그게 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몇 달 전에는 옆집 텃밭까지 모조리 뜯었버렸지만.
엄마는 우리 텃밭인 줄 알았다며 억울해했고 아빠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며 툴툴댔다. 아빠의 표현을 빌리면, ‘온 동네 상추를 너네 엄마가 다 뜯어버렸다’고 했다. 그 생각을 끝으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일어난 건 저녁이 되기 직전이었다. 어스름한 시각, 자글자글하는 소리에 깼다. 눅진하게 간장을 졸이는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마트에서 사 온 연어로 초밥을 만들기 위해 밥을 버무리고 있었고, 그 뒤로는 큰 냄비에 뭔가가 부글부글 끓여지고 있었다.
도마에 가지런히 썰려 있는 연어를 하나 입에 넣곤, 다시 고양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창가 쪽으로 갔다. 하지만 집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귀뚜라미 소리만 리잇리잇- 울릴 뿐이었다. 도로 등이 켜지지 않은 시간, 창 밖의 모든 것이 푸른빛이었다. 난간에 걸친 내 팔까지 물들여 버릴 것만 같이.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쭈그려 앉아 창가에 죽 열을 맞춰 붙어있는 화분들을 구경했다. 이건 뭐야. 이거는.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소리쳐 물어보기도 하며. 창가로 온 엄마는 비닐장갑을 쓴 손으로 화분을 짚어가며 열심히 설명을 보태주었다.
그건 장미허브라는 거야. 그거 한번 만져봐. 만지면 손에서 장미 냄새가 남아. 잎인데 신기하지?
엄마는 아직까지도 유치원생한테 말하듯 나한테 말을 할 때가 있다. 또박또박 말을 끊어가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내가 못 알아듣기라도 할 것처럼. 그래도 풀떼기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었다. (장미 허브라는 이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고 느낀 건 더 들여다보고 나서였다. 애지중지 키우는 화분에 잡초가 많았다. 뽑으려고 드니 엄마가 부엌에서 뽑지 말라며 소리쳤다.
걔네도 살아야지. 그래도 생명이라고 자랐는데, 어떻게 그냥 뽑아버리니. 팍팍하게.
별안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근 몇 주간 팍팍하게 살아온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시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 여유는 대체 뭘까.
내 여유는 한 움큼조차 안 돼서 손가락 사이로 새 버리진 않을까 불안하기만 한데. 엄마는 여유를 일상 곳곳에 뿌려놓은 사람 같다. 그 여유가 이 화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분이 씁쓰름했다.
간장을 머금은 새콤한 냄새가 거실에 떠다니고 있었다. 곧 있으면 엄마가 ‘정규직 기념’ 연어 초밥과 밑반찬을 들고 여기 거실로 올 것이다.
나는 특집 영화를 보며 짓궂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 질투를 담아 뽑은 잡초를 한 움큼 올려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