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면접
너보다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회사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뽑을 수도 있는 거야.
점심을 먹으면서 주 이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아침에 뜬 채용 메일에는 홍보팀의 정규직 포지션이 추가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바라던 그 자리였다.
주 이사가 만들고 내가 지원할 암묵적인 자리였지만, 나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내부든 외부든 누구든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앞에 놓인 돈가스가 갑자기 광활해 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처럼. 돈가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늘 안에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면접 준비 열심히 해.
먹지도 않을 돈가스만 괜히 조각내고 있었다. 주 이사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회사의 입장에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겁을 줘서 투기를 끌어올리려는 것도.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라며 샴차장이 말렸지만 계속해서 더 작게 조각을 냈다. 또다시 경쟁이었다. 앞으로 나는 몇 번의 허들을 더 넘어야만 하는 걸까.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공기가 눅눅하게 느껴지는 아침,
면접은 오전 10시였다.
인턴 업무는 해야 했기에 9시 정각에 출근했다. 지금은 이곳의 인턴이지만 1시간 뒤면 이곳의 지원자가 된다. 그 사실이 내 속을 비틀어놓았다.
채용공고가 열리고 모든 게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면접 일정이 잡히고, 프레젠테이션 주제와 함께 2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같은 주제가 주어질 테지.
회사를 잘 알고 있는 건 내 강점이었다. 하지만 약점이기도 했다. 그만큼 주 이사의 기대치도 높을뿐더러 자칫하면 ‘너 회사 그렇게 다녔으면서 아직도 몰라?’라고 면박을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면접관인 주 이사. 거의 1년을 매일같이 본 주 이사지만 별안간 멀게 느껴졌다. 무슨 질문을 할까. 주 이사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매일 나와 부대끼며 지낸 그녀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분명 그에 대한 질문을 하리라.
9시 30분.
누군가 시곗바늘을 잡고 늘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10시였으면 하다가도, 면접날이라는 생각에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기어이 내 모든 것을 의심했다.
면접 준비는 퇴근 후에 할 수밖에 없었지만 2주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공들여 준비했다. 그 시간이 내 앞에 놓인 음식이라면 나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그릇까지 깨끗하게 핥아낸 참이었다.
가리키는 모든 방향에 납득할만한 근거자료를 준비했다. 누군가 이유나 근거를 물을 때 확실한 자료를 밀어주기 위해. 실제로 접목할 수 있는 사례부터 수치적인 부분도 아낌없이 집어넣었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내용에는 디테일을 넣었고, 샴 차장의 조언도 약간 얻었다. 고작 5분짜리 프레젠테이션 면접이었지만, 결국 10장 이상의 PPT 슬라이드가 만들어졌다.
면접 스크립트도 달달 외웠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툭 쳐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질문.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훑다가도 번뜩 주 이사가 할법한 질문이 생각나면 워드 파일에 적어두고 답변을 만들었다. 설마 이것까지 물어볼까 싶은 것들도 닥치는 대로 적고 읽었다.
그렇게 2주를 눈에 불을 켜고 준비를 했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게 이 자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자리였다.
9시 50분. PTSD가 올 지경이다. 결국, 에라 모르겠단 식으로 스크립트를 열어 읽었다. 그리고 9시 55분.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는 샴 차장과 감 대리의 질문 공세였다.
발표를 진행하는 중간 중간마다 질문이 쏟아졌다. 말을 끝나기도 전에 질문하기도, 슬라이드를 넘기자마자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설명 중인데 왜 말을 끊는 건지. 짜증을 눌러가며 착실하게 답변을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만큼 막히는 질문은 없었다.
발표가 무사히 끝나고 Q&A 시간이었지만 질문은 없었다. 이미 물어볼 건 다 물어봤으니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피드백과 소감의 시간이었다.
샴 차장은 칭찬요정답게 알뜰살뜰 나를 칭찬해 주었다. 약간의 조언을 주긴 했으나 이 정도의 내용이 나올 줄 몰랐다고, 고민하고 깊이 분석한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해주었다. 그에 이어 주 이사도 비슷한 피드백을 주었다. 다음은 감 대리의 차례였다.
다들, 좋은 얘기만 해주시네요?
역시 X맨.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감 대리는 앉아서 발표를 진행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왜 영어로 한 건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물론 발표 내용도 너무 좋고, 다 좋았다며 뒤늦게 두루뭉술한 사족을 달긴 했지만.
그럼 그렇지. 맥이 풀려버렸다. 내가 아는 주 이사는 그런 일로 지적한 적이 없었다. 꼬투리를 잡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찾아낸 흠이 고작 그거였다는 생각에 조금 싱거워졌다. 조금 더 그럴듯했어야지. 오히려 발표를 지적할 게 없었다는 이야기로 들려, 나는 입천장을 혀로 긁어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막아야만 했다.
원래 저러잖아. 네가 이해해. 자기가 주목받지 못해서 그래.
되려 샴 차장이 나를 달래줄 뿐이었다.
감 대리가 주 이사의 사무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주 이사와 면담을 하기로 했지만 감 대리가 한참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뻔하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어떻게든 풀어내고야 만다. 그게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짜증 날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감 대리가 나오고 주 이사가 나를 불렀다.
감 대리와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면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들 프랜이만 챙긴다느니. 어떻게 앉아서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느냐느니 같은 말들. 주 이사는 감 대리가 말한 부분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던 차에 주 이사가 말했다.
프랜아, 정규직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