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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Aug 16. 2023

배우는 CEO (최고경영책임자)다

을이지만 갑이었네

“배우라는 직업이 ‘어려운 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는,


존재 자체가

주체이자 매개체가 되어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일이 되고

전략이 되고 간판이 되고 내용이 되며

심지어는 과정

그리고 여백도 늘 ‘나’라는 존재와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나’ 라는 존재가

‘A’ 라는 직업정체성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빠져나와 쉬고, 하기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내용을 가지고

나에 대한 간판을 만들고

‘나’를 데리고 발품을 팔며

비즈니스적인 만남을 할 때에도


내가 ‘A’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 어떤 장비도 없이

‘경영자이자 상품’으로써

상대방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아주 일차원적인 예로,

배우로 활동하는 한

그날의 자기 자신의 컨디션이

즉 그날의 자기 일의 컨디션인 것처럼 말이다.


(2023.01.16 나의 메모장에서)“






갑을병정 보다 더 중요한 것


배우들의 집단의식 속에 이런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을 중에서도 을, 거의 정이지 정!’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꽤나 여러 관점에서 보아도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다. 실제로 배우들이 작성하는 표준계약서만 봐도, 배우들은 ‘을’ 란에 서명을 하게 된다.


이때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부분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특히 수익 창출을 위해 서로 다른 객체가 만나서 일을 하기로 할 때는, ‘동업’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 당연지사이기에 꼭 ‘갑‘이라고 해서 좋다, ’을‘은 나쁘다, 라는 매우 편협한 관점으로만 그 이해관계를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기왕 함께하기로 한 사이에 누구 이득이 더 많은가 따지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갑이든 을이든 당신이 왜 이 계약에 서명을 하는가, 무엇이 개인의 목표이고 무엇이 공동의 목표인가, 갑의 몫은 무엇이고 당신의 몫은 무엇인가, 함께 추구하는 목표의 달성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배우는 경영자다


배우만큼 ‘적극적’인 직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을’에만 머물러있어서 내가 벗어나야 한다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개척해 내야 한다고만 느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렇지가 않았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어떤 서류에 서명을 한다는 행위만 보더라도, 그러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살펴보고 설정하고, 그에 맞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찾아 발 벗고 나서는 것 자체가 크게는 자기 자신의 삶을, 작게는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세계를, 아주 작게는 자신의 하루를 ‘경영’하는 일이 아닌가?


나의 배우 프로필을 만드는 것과 사업가가 나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다를 건 무엇인가?


물론 ‘결국에는 누군가가 선택을 해줘야만 일할 수 있다’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또다시 ‘을’ 혹은 ’정‘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갑’란에 서명을 하는 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구의 땅에서도 돈이나 고객, 독자, 관객이 저절로 솟아나는 건 아니니..


그런 생각을 거친 나는 나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배우는 경영자이며 자기 자신이 사업체고, 수많은 직종 속 수많은 경영자들 못지않은 적극적인 사업가라는 관점으로 나의 일을 이끌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 어떤 직업보다 ‘자기 자신’이 직업의 최전선에 드러나있고, 그 어떤 직업보다 자기 계발, 관리, 경영이 비즈니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직업.





진심이라는 최고의 전략


지금의 시대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한 사람의 ‘직업’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사람의 일부분, 한 사람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와닿을 정도로 ‘존재’와 ‘일’ 간의 관계가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배우라는 직업은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의 삶을 물론 그 사람 자체와도 깊게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와 ’ 직업‘이 하나도 아니지만 따로도 아닐 때, 나는 어떤 전략을 택해 그 영역을 경영해 나갈 것인가?


양으로 승부하는 공격적 마케팅부터 시작해서 일단 관심부터 끌고 보는 노이즈 마케팅까지 어찌 보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힘이 덜 들고 성과는 좋았던 것이 바로 ‘진심’이었다. 고리타분한 결론이긴 하지만, 이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실제 했기 때문에, 이것이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임을 나는 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를 고민하게 되지만, 그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를 위하면서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할까’를 고민하면 어떻게 잘 보일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진심으로 존중하면 존중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지치지 않아도 되고 진심으로 원한다는 걸 스스로 알면 간절함을 어필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의 색깔을 충분히 고민했다면 특별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이 생긴다. 프로필을 만들든, 연기를 하든, 옷을 고르든,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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