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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Aug 20. 2023

열심히는 하지만 힘이 나진 않아

수식어가 없는 ‘나’를 사랑하는 능력

“내가 경단(경력단절)을 감수하면서까지 워홀에 도전하려고 했던 이유?

나는 내가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길 바랐다.

내가 ‘배우’라는 수식어 없이도 행복하길 바란다. “


(2023.06.07 나의 메모장에서)





열심히는 하지만 힘이 나진 않아


때로는 의아해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듯 한 내가,

그 열심으로 과정과 결과를 쌓아 차곡차곡 우상향(으로 보이는)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내가,


왜 그 유명한 K 드라마들을 정주행 하는 것이 숙제 같고,


작품이 정말 좋다며 공연에 초대해 주는 연락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걸까?


오디션 대본을 보며 설레지가 않고,


대단한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도 챙겨보기 위해 메모를 할 뿐이지 당장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내일 촬영이라는 생각에 힘이 나고 감사하기보다는

얼른 끝 마치고 해방되어야 하는 일을 앞둔 사람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걸까?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그저 지친 것이겠거니,

누구나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것이겠거니,

내가 지금 일이 바쁜 게 사실이니 당연한 것이겠거니…


지금까지는 그렇게 지나쳐왔다.





수식어 없이 행복할 능력


그러다 문득,

지하철에서 내 앞자리에 앉은 한 커플을 보았다.


주변을 온통 ‘연예인’으로 둘러싸고 지내는 것과 다름없는 나의 어쩌면 왜곡되고 편협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외모는 말 그대로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참 좋아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는데 아련하고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대중 앞에 드러나서

나 잘났어요 혹은 나 예뻐요, 혹은 나 잘해요 ..

이런 것들을 하지 않아도

오늘 함께 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하루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이 당신들을 티비에서 보았다며 자랑스러워하지 않아도,

세계적인 무대에 한 번쯤 서서 박수갈채를 받지 않아도,

그런 것쯤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 그 커플의 삶이 어떻든,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떤 연유로 이 판타지를 쫓고 있는 것일까?


예술을 하고자 하고 배우를 꿈꾸는 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그 동기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경험은 180도 다를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어쩌면 나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 꽤나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 않은 - 그냥 ‘나’로 살아갈 만큼

내가 나 자신을 안아 줄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부족하다고,

더 해야 한다고,

그냥 너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도, 세상도, 떠나버린 애인도, 어떤 감독, 어떤 관객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나를 증명해 보이고자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어째서 충분한지, 어째서 사랑받아 마땅한지, 어떻게 스스로와 친구가 되는지 미처 배울 용기가 없어


보다 뚜렷하고, 명확한 명분이 있는 수식어를

‘나‘ 앞에 어떻게든 가져다 붙여놓고 빨리 ’안심‘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일의 본질


“성인은 일을 통해 성장한다“고 했다.

그래 나는, 성인이고 싶다.

불안한 나를 밀쳐버리고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는 일련의 행위들을 ‘일’이라고 부르는 사람말고.


일(직업)은,

이 세상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귀한 통로이지

내 존재를 부정하면서 그 빈 공간을 대신 채워줘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성장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기면 이직, 퇴직을 결정하는 기준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싶다.


연기를 하는 것, 배우로 어떤 성공을 만들고자 애쓰는 것에서 - 나는 어떤 성장을 하고 있는가?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성장을 하고 싶은가?


나는 지금 여기에서 솔직한 생각을, 느낌을, 의견과 감상과 경험을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또 나는 나의 몸의 한계를 넘어서 내 몸과 더 조화를 이루고 즐겁게 움직이고 그 가능성을 펼치는 도전을 하는 성장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연기를 하면서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꽤나 연관이 깊어 보인다. 몸과 조화를 이루고 그 잠재력을 펼치는 것 또한.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도 하고 힘도 나는 내가 되기 위해 할 일은,


가만히 그런 성장을 목 빼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지금 여기서 되기로 결정하고 배우는 것.

그런 성장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들을 행동으로 찾아 나서고 씨앗을 뿌리고 알리고 문을 두드리는 것.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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