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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Sep 05. 2023

평생 연기하는 법

무엇을 받기가 아닌 무엇을 하기



“평생 연기를 하는 방법은,

아니 그게 무엇이든 ‘평생’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에 대한 자기 목표를 밖에서,

외부에서, 타인이,

누군가가 해‘줘야‘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

내가 스스로 채워 나갈 수 있는

목표로 세우면 된다.


‘캐스팅되기’가 아니라

‘정확하게 연기하기’라는

목표를 추구하면 된다.


(2023.03.05 나의 메모장에서) “





그만두고 싶어서 평생 하기로


나는 최근 배우활동을 하면서 점점 더 눈에 띄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잘 보여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 애를 쓰며 지냈고, 그 결과는 나의 존재가 점점 더 쪼그라드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으며 점점 더 이 일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 그 자체‘의 느낌으로 변해갔다.


심지어는 활동을 하면서 성과 즉 작은 상을 받는다던가, 많은 사람들이 날 존경의 눈으로 바라봐주고 축하의 메시지를 쏟아부어주는 몇 안 되는 순간들에도, 기쁨, 보람, 감사를 느끼는 횟수나 그 강도가 희미해져 갔다.


‘그만두고 싶다’


나보다는 어쩌면 이 일에 대한 열정이 적은 사람, 아니면 이미 잘 되어서 과거를 회고하는 소위 스타선배님들이 한 번쯤 그런 적이 있었다며 언급할 때나 들을 법하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문장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목구멍까지 올라와있던 바로 그런 시점이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안 풀려서?

내가 생각한 만큼 빠르게 큰 배역을 못 맡아서?


그럼 거꾸로,


내가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면, 날 때부터 집안에 돈이 많아 생활비 걱정 없이 오디션만 볼 수 있었다면 난 지금 이 시점에서 정말로 기쁘고 보람차고 행복하고 감사했을까? 이 일은 정말 평생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을까?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얼마동안?


매일매일 혼자서 똑같은 글씨를 쳐다보면서 이 인물이 이 말을 왜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이 흘렀다면? 주연을 맡은 그 작품이 끝나고 나서는? 혹여 그 작품이 혹평을 받았다면? 내가 한국 드라마 주연을 맡으며 혹평을 듣는 동안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동료는 헐리우드 제작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이 정도만 상상해도 나는 폭죽이 터지고 핑크빛만 가득할 것 같았던 상상의 나래가 금세 막막해지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금세 막막해진 이 상상의 나래에 함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타인에 의한’ 무언가라는 것이 아닐까? 나의 목표는 물론 과정과 결과의 가치 유무까지도, ‘타인’을 통해 확인받는 것이다.


캐스팅이 ‘되어야’하고,

좋은 평을 ‘받아야’하고,

누군가 ‘보다’ 높이 올라야 하고…


이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작품을 하는가, 사람들이 인정해 줄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역에 캐스팅되는가, 한 회차당 얼마를 받는가, 나보다 잘난 놈이 있냐 없냐로서 내 삶, 내 일의 가치를 판단하게 될 테고, 그러다가는 끝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듯 점점 더 숨이 차오를 것이라는 결론. 그것이 내가 추론하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이건 평생 연기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런 길이라면 평생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고 또 원했던 것은,


가지고 태어난 것 ‘마음-몸’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분명히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뚜렷하게 만들어내는 그 ‘배우’라 불리는 인간들의 ‘경이로운‘ 능력과 그 능력의 함양에 필요한 것들을 체험하고, 나아가 그 능력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우라는 정체성을 선택할 때 의도했던 의미였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나에게 맞는 길을 다시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이제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것, 호감을 사는 것, 더 많은 돈과 관심을 얻는 것에 주의를 두는 걸 최소화하기로 했다(생각보다 잘 되지 않지만). 그것이 나쁘거나 틀려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그것에 주의를 쏟을 때, 그게 내 자아상*이 되고, 그런 자아상은 내 존재를 옥죄고 위축시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기로 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동경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기술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내/외면의 힘들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집중해야 할 대상이고 다름 아닌 그것들이 내 가치와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


인스타그램에 ‘이런 사진 이런 글을 올리면 남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고려할 순 있어도, 그것으로 인해 내 의도를 꺾어야 할 필요를 덜 느낄 것이고, 캐스팅 관계자들에게 영업상 꼬리를 치거나 자본주의 웃음을 팔 게 아니라 진짜 사람으로 존중하고 자유롭게 신뢰하는 관계를 맺어갈 수 있지 않을까?


왜? 이제는 누가 잘 ‘보아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의 선택, 나의 행동을 통해 나의 실력과 나의 정직성을 갈고닦고 키워가는 것이 목표이니까.


이제는

내가 원하는 역할을 ‘누군가가 주지 않는다’고 낙담할 일이 없고,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 혹은 미소 따위를 힘 있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며 세상의 가혹함에 대해 투덜거릴 일이 없고, 나 생긴 대로 살면 ‘누구도 써주지 않는다’며 나의 가장 자유롭고 빛나는 모습을 깎아버리거나 나를 배반해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이것은 내게 맞는 길이지만 각자에게는 또 각자들이 찾아낼 맞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숱한 고민과 경험과 도전을 하면서 때로는 무모하게 애쓰고 무식하게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물어내 얻은 배움이자

과속 방지턱만큼이나 자주 마주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도 굴하지 않고 뿔 달린 소마냥 앞으로 밀고 나와 지금 여기에 도착한 내가 산 정상의 약숫물 발견하듯, 선물을 발견하듯 깨닫게 된, 평생 연기하는 방법이다. 다시 한번, 쉽게, 단번에, 잘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때는 또 다른 약수터를 발견해 내야겠지.




*자아상 : 당신 + 신념들. [ 자아 발견을 위한 의식개발 지침서 : 다시 떠오르기 / 해리 팔머 / 의식문화사 ] 56pg 에서 발췌, 인용함.

(본 글의 저자 그레이존 또한 의식계발 프로그램인 아봐타코스(AvatarCourse)에 참여하며 배운 개념이며 실제 프로그램에서는 더욱 깊이 있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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