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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존 Aug 03. 2023

용역과 프로의 한 끗 차이

돈을 쫓지 말라는 말의 의미

“용역이 될 것이냐

연기자가 될 것이냐

배우가 될 것이냐

 

연기는 삶과 너무 닮아있어서

자칫 훈련의 부재에 대해 무심하게 되기가 쉬우나,

연기가 ‘삶’이라는 원석을 갈고닦았을 때만

빛이 나는 보석과도 같은 예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배우의 길을 갈 것이다.

(2020.11.26 나의 메모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깊게 집중하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낸 메일만 남게 될 거라는 말처럼,

배우로 지내면서 기저에 늘 두려웠던 것-

그래서 늘 나도 모르게 경계했었던 것은 바로..

불러주는 대로 쓰이기만 하다가

정작 내가 ‘나의 이야기’는 쓰지 못하고

삶이 흘러가버리는 것이었다.

(2022.06.24 나의 메모장에서)“





돈을 ’쫓았을 때‘ 겪은 일


물론, 내가 정한 우선순위가 ‘돈’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애초에 내가 정한 가치 혹은 우선순위가 없거나, 있는데도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 때 -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타협하고, 돈을 ‘쫓게’ 되었었다.


참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래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꼭 겪곤 했다.

 

• 함께 일 하는 사람에게 부당한 취급을 (혹은 괜히 그러한 취급을 받았다는 느낌- 자격지심 같은-을) 받는다.


• 더 좋은 기회 ( 되려 받는 돈이 더 크든, 내가 꿈꿨던 가치 실현이 가능한 일이든 )가 왔지만 타이밍이 절묘하게 겹쳐 날리게 된다.


• 무탈히 일을 진행하고 돈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굉장히 소진된 느낌을 받고, 실제로 스트레스나 피로감이 남는다.


어떤 가치나 우선순위도 옳고 그른 것이 없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배신한 것 자체가 맹점이었다.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은근슬쩍 합리화를 하고 말 그대로 먹이를 ‘덥썩’ 문 꼴이었다.


왠지 내 가치를 쫓는 것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은밀한 도둑심보, 그런 심보는 꼭 우주가 마땅한 댓가를 치르게 하더라. 채워야 할걸 채우게 하는 우주의 신비랄까? 허허. 그러니 그냥 조금 더 용기를 내고 나를 조금만 더 믿어줘야지. 기왕에 노력할 거 내 힘과 에너지를 정말 원하는 것에 투자해야지.




갈고닦거나, 소모되거나


어떤 분야에서든 통하는 개념일 수 있을 것 같다.


제자리에 머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주는 대로 받는다면’ 용역,


자체적인 동기로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거듭하고 성장하여 어떤 일의 일부가 되어달라 ‘제안을 받는다면’ 프로,


이렇게 하면 나 스스로도 보다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한 차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스스로 도달하고 싶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고, 스스로 창조해 내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스스로 갈고닦아 덤으로 남들이 돈을 주고 사게 되느냐,


혹은

돈을 받기 위해서 요구받는 대로, 요구된 것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주어지는 대로 하거나,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느냐.






천천히(slowly)가 가장 빠른 속도(the fastest)다.


하다못해 청소를 할 때도, 조급한 마음에 후딱 해치우려고 서두르다 보면 꼭 무언가를 떨어뜨리거나 놓치거나 쏟거나 해서 그곳을 다시 치워야 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하나씩 했으면 딱 ’1‘ 정도의 분량이었을 일이, 단지 서둘렀다는 이유만으로 분량이 두배로 뛴 것이다.


동료 배우가 공유해 주었던

‘성급함은 낭비를 낳는다’

말이 참 와닿는 순간들이었다.


‘천천히가 가장 빠른 속도다’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의 지혜를 공유하는 것 같다.


’기초탄탄‘도 마찬가지.


배우로서도 그렇다. 배우든 배우지망생이라면 정말 많이 들어봤을 ‘이미지 소모‘라는 개념 또한 바로 이러한 ’성급함‘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에 겁을 먹으면 대체로 ‘쫓기 쉬운 것’을 쫓게 된다.


이를테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흔해빠진, 그렇지만 단순 명료한 답을 듣는 것은 흔치 않은 냉정한 질문들을,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피하고 도망가다 보면, 그냥 작품을 많이 하고, 페이를 많이 받는 게 ‘최고의 미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자기 기준이 없이 다작을 추구하고 돈에 집착하는 배우.


관객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전하게 될까?

관계자들에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자기 기준도 알고, 돈을 담는 그릇도 큰, 그런 배우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게 욕심이라면 나는 힘닿는데 까지 욕심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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