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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영화 <세렌디피티>

by 유마치 Dec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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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년 12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  '크리스마스의 기적'.

'크리스마스'와 '기적'의 조합이라니. 이보다 낭만적일 수가 없고 또한 이보다 더 비현실적일 수가 없다. 거리의 반짝이는 불빛들과 때마침 내리는 눈,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 마치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듯이, 여전히 산타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길 바라듯이 행복한 미소와 발갛게 상기된 볼.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저마다의 입에서는 뽀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기적'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행운이란 매일 찾아오는 것은 아니어서, 제발 크리스마스만큼이라도 기적같이 기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행운이 필요한 곳은 저마다 다르다. 당장 먹고살 돈이 없으니 복권 한 장만 당첨되길 바랄 수도, 몸이 아프면 부디 건강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런 기적들 사이,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종류의 기적은 어쩌면 사람과의 인연 문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영화들이 '크리스마스'와 '사랑'을 엮은 이야기를 매년 겨울 쏟아내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닿아야만 하는 일이야 말로 기적 같은 일이니까. 책 <어린 왕자>에도  유명한 구절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은 기적이야.' ('어린 왕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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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렌디피티>는 대놓고 온갖 기적과 우연, 운명을 죄다 모아놓은 로맨스물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보기 좋게끔 이야기의 시작과 끝엔 흰 눈이 정답게도 날린다.  사라(케이트 베킨세일)와 조나단(존 쿠삭)은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러 들른 백화점, 딱 하나 남은 장갑을 한 짝씩 낚아챈다. 너는 오른손, 나는 왼손. 서로에게 양보를 거듭하다 헤어진 두 사람은 각자 시간 차를 두고 우연히 같은 카페로 향한다. 우연히 목도리를 두고 나오고, 또 우연히 마주친다.


그런 우연을 따라 낯설지만 설레는 대화가 오가며 '혹시 인연일까' 하는 마음이 샘솟지만 이미 두 사람에겐 각자의 연인이 있다. 그럼에도 조나단은 사라에게 이름을 알려달라 말하고, '무모한' 운명론자 사라는 둘의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책 한 권을 사서 첫 장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책방에 되팔고, 조나단에게 지폐에 연락처를 적으라고 한 뒤 그 지폐로 사탕을 사 먹는다. 둘의 손을 떠난 책과 지폐가 세상을 떠돌다 각자의 손에 들어오면 그땐 진짜 인연임을 인정하자며 쿨하게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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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행동에 조나단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계속 서로를 찾는다. 그렇게 몇 년을 서로의 곁에서 맴돌고 기어코 기적 같은 마주침을 맞이한다. 비로소 마주 보고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의 엔딩이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하지만 해피엔딩 보다 더 중요한 건 몇 년 동안이나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게 아닐까. 누구 한 명이라도 그때의 일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너 누군데?"라는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조나단이 사라를 기억하며 '아, 그 정신 나간 여자?'라고 기억에서 지우는 결말이 훨씬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니까. 그런 결말이었다면 온통 그 사람을 찾아 헤맨 시간이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할지. 상대는 나를 잊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끌린 마음에 계속 찾아다닌 사라와 조나단의 행동이야 말로 기적이다.


그렇게 서로를 찾아 온 도시를 다 뒤지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온 것도 맞다. 하지만 어디 사랑이 노력만으로 되는 일인가. 우리는 늘 사랑을 얘기할 때 '타이밍'과 '마음의 온도' 같은 얘기들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니까. 두 사람이 아무리 서로를 찾기 위해 발로 뛰는 노력 했다고 한들, 서로를 계속 기억하고 있다는 오랜 기적이 없었다면 그런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운명'이란 말에 또 설득되고 말았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사랑을 원하면 노력을 해' '적극적으로 인연을 만들어야 돼!' 이런 말들을 듣고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게 다 허무해진다. 아무리 내가 노력한다고 한들 우리가 인연이 아니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물론 그 이름의 뜻부터 ' 우연히 찾아온 뜻밖의 발견'인 <세렌디피티>, 게다가 허구의 이야기인 '영화'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엔 이런 기적 하나쯤은 바라봐도 괜찮잖아. 모두의 크리스마스에 우연한 행복이 하나씩 찾아오는 기적이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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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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