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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ug 26. 2022

뇌신경계 중환자실 풍경

   뇌신경계 중환자실 앞에는 오전과 저녁에 한 번씩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환자의 보호자들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 무표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 만약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보호자 생활을 막 시작한 '초보 보호자'일 것이다.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면 그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게 변했다. 이왕이면 환자에게 좋은 표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기계와 똑같은 링거병을 달고 있는 환자들이지만 보호자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가족을 찾아낸다. 그리고 중환자실 특유의 오싹한 공기를 느끼며, '내 사랑하는 이가 춥지는 않았을까, 외롭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그다지 외로워하지도 추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감정을 또렷이 느끼는 이들은 벌써 일반병실로 보내져 중환자실에는 없다.



    보호자들은 몇 시간 만에 보는 환자에게 웃는 얼굴로 묻는다. 날 알아보겠냐. 정신은 드냐. 그 이상의 깊은 이야기는 불가능하다. 환자들은 대부분 혼수상태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보호자의 말에 대꾸를 한다고 해도, 환자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훗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환자의 손발을 주무르고 얼굴을 쓰다듬고 보면 30분의 면회시간은 금방 끝나고 만다. 간호사의 재촉에 병실을 빠져나오다가 무심코 돌아본 그 곳에는 눈부신 생명의 꽃들이 피어있었다. 온몸에 호스가 주렁주렁 달린,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환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건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013년 <수필과 비평>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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