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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ug 28. 2022

나카타니 씨의 선물

바다 건너에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카타니 씨는 자신이 보낸 꽃바구니가 우리집에 도착했는지 거듭 물었다. 일본에 있는 그녀가 어떻게 나에게 꽃을 보냈다는 것인가. 한국으로 꽃을 보냈다고요?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응, 보냈어. 아직 못 받았으면 곧 도착할 거야. 유나 씨하고 어머니께 뭔가 힘이 될 만한 특별한 선물을 보내고 싶었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바다를 건너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포근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거짓말처럼 꽃바구니가 도착했다. 엄마와 내 취향을 진작부터 알고 있는 듯, 바구니에는 우리 모녀가 좋아하는 보라색 수국과 분홍색 장미가 한가득이었다. 보드라운 꽃잎에 내려앉은 초여름의 청량함이 눈부셨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의 연말, 도쿄의 시모키타자와(下北沢) 거리에서였다. 일본 특유의 좁고 복잡한 골목길에서는 벼룩시장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쓰던 것, 혹은 집에서 손으로 만든 것들을 들고 나와 흥정에 열심이었다. 거리에는 특별할 것도 없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그저 그런 물건들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그 옆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 한 무리도 있었다. 풍금 연주자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큰 수레 위에 앉아 풍금을 치고 있었고, 그 옆의 사람들은 기타로 리듬을 맞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국의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 이국적인 분위기에 우리 모녀는 신이 났다. 우리는 곳곳을 뒤지면서 물건 파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고, 캐럴 연주 무리를 쫓아다니며 시모키타자와 거리를 누볐다. 마치 우리 모녀를 위한 환영 축제인 것처럼 거리의 모든 것이 흥겨웠다.



그때 복잡한 거리를 지나고 있는 중년 여성이 보였다. 반백의 머리는 소녀처럼 곱게 땋아 내렸고, 여성의 옆에는 커다랗고 하얀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선한 눈빛으로 함께 걷고 있었다. 개의 부드러운 눈빛에 반한 우리는 이끌리듯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개가 참 예쁘네요. 좀 만져 봐도 되나요?”

여성은 선뜻 만져보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온순한 녀석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우리 옆에서 엄마와 내가 나누는 한국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한국분이시군요! 나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전에는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답니다. 한국에 있는 ‘나눔의 집’에 간 적도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우연처럼.



그녀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저 오가다 만난 외국인 유학생이었을 뿐인데, 그녀는 나를 친척 아주머니처럼 살뜰히 챙겼다. 엄마가 짧은 일본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후, 나는 도쿄에 아는 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있어 다행이었다. 나카타니 씨는 내 학업을 격려해줬고,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일본의 주부들을 연구하고 싶다는 나를 위해, 자신의 지인들을 끊임없이 소개해줬다. 그녀의 안내로, 나는 나쓰메 소세키를 다루는 문학 강좌에 나가 일본 중년 여성들과 자주 어울렸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은 친구를 사귈 때에 서로의 나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데, 우리가 바로 그런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나이와 국적은 그와 나 사이에서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일본에 또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일본에 오면, 이번엔 세 명이서 같이 식사도 하고 도쿄 곳곳을 구경 다니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시모키타자와 골목을 마치 아이처럼 뛰어다니던 엄마의 몸에 몹쓸 녀석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뇌에.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머리 수술부터 방사선, 항암치료까지, 일련의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모든 일은 순식간이었다. 환자 이(李) 아무개의 보호자. 그것은 내가 새롭게 얻은 정체성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내 공부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엄마를 살려놓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급하게 귀국을 결정했고, 애써 적응했던 일본 생활의 모든 것을 접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날, 마지막 인사차 나카타니 씨를 만났다. 우리가 만났던 곳은 평상시 문학강좌를 들었던 시모키타자와의 타운 홀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분명 그날의 내 모습은 그가 그동안 봤던 평상시의 나와는 달랐을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그 많은 일들을 처리해냈을지도 모르겠다.



나타카니 씨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뜬금없게도 원피스 한 벌이었다.

“이 치마는 내가 딱 유나 씨 나이였을 때 입었던 옷이야. 벌써 30년이 넘은 옷이구나. 디자인이 예뻐서 못 버리고 있었는데, 선물로 주고 싶어. 유나 씨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마음에 들면 받아줘.”



내 비록 몇 년 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선물은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건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자 삶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다. 내가 이 귀한 걸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에게 내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에겐 그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마저도 충분치 않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일 일본을 떠나기 위해서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한국에 잘 갖고 갈게요.”



우리는 언제, 그리고 서로가 어떤 상황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를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헤어졌다. 엄마와 함께 신났던 그 골목길을 뒤로하고 나는 일본 자취방에 도착했다. 이미 자취방은 내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을씨년스러운 이삿짐 박스만 가득했고, 나는 짐들을 적당히 한쪽으로 밀어둔 채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내가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엄마의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고달프고 외로웠던 몇 달을 보내고, 겨우 맞이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나카타니 씨의 꽃을 받은 것이다. 나카타니 씨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 부탁하여 나에게 꽃을 보냈다 했다. 나와 엄마를 위해 그의 지인들도 함께 마음을 써줬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바다 저 건너편에도 나의 안부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힘든 시간을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누가 이런 선물들을 받아볼 수나 있겠는가. 이건 분명 나에게만 허락된 축복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정말 오랜만에 나카타니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고, 그동안 하늘로 떠나보낸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약속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기를. 있는 곳은 다르지만, 일단 서로가 지금은 무사하다는 것.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시모키타자와의 벼룩시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나는 가끔 꺼내본다. 사진 안의 엄마는 화사한 웃음이 얼굴에 번져 있고, 나카타니 씨의 그 레트리버, 코 짱도 예쁜 눈빛을 빛내며 단정하게 서 있다. 그 점잖고 다정했던 레트리버 녀석을, 엄마는 하늘에서 다시 만났을까.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코 짱도 엄마를 알아보고 반갑게 꼬리 쳐줬길 바란다.



지난 연말에도 시모키타자와의 골목길에는 벼룩시장이 열렸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었던 엄마는 어쩌면 그 거리에 또 구경 갔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그랬듯, 캐럴을 연주하는 풍금을 쫓아다니며 신이 났을지도.



나타카니 씨가 있는 곳, 그리고 엄마와 내가 즐거웠던 곳. 그립다, 시모키타자와.

 

 


2015년 <그린에세이> 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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