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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가 된 서점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vs. 베네치아 <아쿠아 알타>

by 오늘

파리 여행 기념품으로 꼭 사오는 에코백이 있다.

'Merci'가 심플하게 적힌 메르시 에코백,

이제는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는 ofr 에코백

그리고 서점 전경을 스케치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에코백이다.

나 파리 다녀왔어

은근하게 말하고 싶을 때 손이 가는 아이템이랄까.


누군가에게 그 나라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키워드가

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새삼 신기해

이탈리아에도 그런 서점이 없을까 찾다

베네치아에서도 한 군데 발견.


물에 잠기는 서점이라니,

키워드만으로도 구글맵에 저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내 구글맵 '랜드마크' 폴더를 털어본다.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가장 유명한 서점과 가장 이색적인 서점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in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Shakespeare & Company


파리 메트로 4호선 생 미셸 노트르담역을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도로 맞은편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그보다 앞에는 짙은 녹색 간판의 고서점이 있다.


1919년 문을 열었으니 100년도 더 된 2층짜리 서점

옆으로는 얼마 전 같은 이름의 작은 카페도 하나 생겼다.


작가와 영화감독이 사랑한 그 곳

헤밍웨이, 비포선셋, 노트르담 그리고 에코백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수식어는 이렇게 다양하다. 무명의 헤밍웨이에게 읽을 책과 글을 쓸 작업실을 무료로 공유해주었던 곳,

영화 <비포선셋>에서 두 주인공이 9년만에 재회한 장소,

어쩌면 재건중이라 내부 관람이 어려워진

노트르담 성당보다 유명한 스폿.


이 서점의 특별한 브랜딩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예술가의 공간'에서 나온다.

책내음 가득한 서점 2층 한구석에는 서점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다.

1대 사장 실비아 비치가 고수해온 예술가, 방문객과의 소통방식은 3대 사장 실비아 비치 휘트먼으로 이어져 지금도

'무료 숙박(Tumbleweeds)'이 가능한 것.


단, 몇 가지 미션이 있다.

약간의 노동, 매일 책을 읽겠다는 약속, 한 페이지의 글.

서점 2층 한구석에서 이들을 위한 공간과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점 내부와 이어지는 무드의 야외 활용도도

매력적인 요소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책장으로

가득찬 내부도 고풍스럽지만 자그마한 앞마당에

꽃나무 몇 그루와 공간을 채우는 야외 가판대와 책장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때로는 야외 독서 테라스였다가

작가의 낭독회 자리가 되기도 한다.

서점 내부 촬영이 불가한 요즘 여기서 한 컷은 필수.


책을 구매해야만 읽을 수 있는 여느 서점과 달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도서관처럼 책을 읽어도

혼나지(!) 않는다. 영문학 서점이라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지만서도 빠르게 훑고 넘어가는 관광지가 아닌

발걸음을 느긋하게 내딛어도 되는 랜드마크는

파리에서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음표를 부르는 스토리만큼 확실한 브랜딩은 없다.

영국이 아닌 파리에서 영국의 극작가 이름을 단

영문학 전문 서점이라니,

어떤 시크릿한 이유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서점과 인연이 있는 헤밍웨이와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

피츠제럴드 등 미국의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들면서

문학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지금의 파리를 이뤄낸 셈이다.


사랑받는 브랜드와 시그니처 굿즈는 떼려야 뗄 순 없는 법.

북 갤러리 같은 서점 투어의 마지막은 역시

에코백 쇼핑이 아닐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에코백은

서점 전경을 담은 펜화가 시그니처다.


메인 컬러인 블루 스케치와 버건디 스케치 두 가지 중

고를 수 있다. 가격은 16유로.

오직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은

다소 비싼 가격도 눈감게 한다.


서점 옆 카페에 잠시 쉬어가도 좋다.

여기서 보는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노트르담 성당 내부 관람이 재개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게 될 듯하다.


홍수가 만들어낸 이색서점

in 베네치아

-리브레리아 아쿠아 알타-

Libreria Acqua Alta


베네치아 골목은 마치 코엑스 같다.

도무지 길을 찾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점에서 말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베네치아는 지하가 아니라 구글맵을

요리조리 따라가다 보면 골목 사이에 숨은 맛집과

서점과 광장과 젤라또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가장 베네치아스러운 서점

곤돌라, 운하, 골목, 고양이 그리고 책


쌓아올린 책으로 가득한 곤돌라를 지나면

물에 젖어버린 책계단이 보인다.

이게 서점의 풍경이라니 꼭 한번 와봐야 할 것만 같다.

두 번째 베네치아 여행에서 1순위로

산마르코 광장도 리알토 다리도 아닌,

'리브레리아 아쿠아 알타'를 점찍은 이유다.


Top 10, Best 3 등 우리를 혹하게 하는

큐레이션의 힘은 세다.

아쿠아 알타 서점은 BBC 선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 중에 하나다.

이탈리아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10위 안에 들다니

실망할 확률이 50% 아래로 떨어질 법 한데

이탈리아 교과서에도 실렸다면 말 다했다.


누군가의 인정을 앞서 받는 것이야말로

다수의 선택을 수월하게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특히 공신력 있는 곳이나 셀럽, 인플루언서 등

친근한 인물의 큐레이션은 더욱 힘이 세다.


로컬+브랜딩을 잘 활용한 예다.

서점 이름인 '아쿠아 알타'는 무슨 뜻일까?

아쿠아 알타는 베네치아에서 겨울이 되면 물이 역류하는

만조 현상이다. 겨울에 종종 일어나는데

이때가 되면 산마르코 광장도 물에 잠긴다고.

서점도 무사할 리 만무하다.

침수가 된 서점은 젖은 책들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눌러붙은 책들을 계단처럼 쌓았다. 이것이 바로

아쿠아 알타의 시그니처 공간, 책계단이다.


좁은 서점 한가운데, 큼지막한 곤돌라 위로

책들이 이리저리 쌓여있다.

홍수와 곤돌라, 골목 사이 좁은 공간까지,

베네치아 골목 사이를 힘들게 배회해야만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베네치아의 모든 것을 녹여낸

이색 서점이 되었다.



좁은 공간을 야외 포토존으로 확장한

공간 활용도 주목할 만하다.

아쿠아 알타는 작은 서점이지만 한바퀴 돌아보면

작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서점에 들어서면 책장을 자처하는 곤돌라와 욕조가

책을 한움쿰 머금고 반긴다.

서점 안도 베네치아 골목처럼 좁다란 길이라

관광객이 많은 날에는 일렬로 줄을 서서

오른쪽으로 들어갔다가 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오른쪽 줄 끝 문에 다다르면 젖은 책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책계단이 보인다. 문밖 야외지만 또 다른 책방으로

확장해 나가는 기분이 묘하다.


베네치아 하면 세레나데를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곤돌리에가 운행하는 곤돌라가 떠오른다.

하지만 막상 곤돌라를 타자니

싸지 않은 가격에 고민이 커진다.

아쿠아 알타는 이런 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야외에 책으로 장식한 곤돌라를 정박해두었다.

멋진 포토존을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사진을 찍는 줄이 길고 험난해도 찾는 발길이 많아진다.


귀여운 건 참을 수 없다.

성공하는 마케팅 3요소 미인, 아기, 동물이다.

아쿠아 알타 서점은 이중 동물을 기가 막히게 활용중이다.

바로 알쿠아 알타의 터줏대감 고양이들이 그 주인공.


이 서점은 고양이 서점으로도 이미 유명할 정도로

다양한 고양이 서적과 굿즈들을 보유하고 있다.

네 마리의 고양이가 책 위를 제집처럼 유영하는 모습이

아쿠아 알타에서는 일상이다. 살짝 무심한 주인 주위로

시크한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니 이 아이들을 닮은

엽서 한장을 자연스럽게 집어들게 된다.


아쿠아 알타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서점이다.

주인장의 시크한 표정은 구매하지 않아서가 아니니

겁먹지 말자. 하지만 계산대 앞엔

지갑을 열게 하는 굿즈가 줄지어 발길을 붙잡으니

그냥 나오기가 쉽진 않을 거다.


바야흐로 2019년, 눈여겨보고 있던 ofr 서점의

한국 론칭 소식을 듣고는

내가 먼저 시도해볼 걸

하며 처음으로 사업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하면서 높아진 안목은 안 보이던 걸 캐치하기

쉽게 하는데 정작 시도하기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사업 대신 인사이트를 나누는 일부터

차근차근 발을 내딛으면 어떨까 한 생각이

이 브런치 시리즈가 되었다.


머지않은 언젠가 인사이트가 모여

시도하는 용기가 될 수 있도록.



written by 오늘

12년 차 직장인이자 팀장(잠시 내려놓았다).

에디터 시절 버킷리스트였던 2주간의 유럽여행을 기점으로

'1년 1유럽'을 꾸준히 실천 중이다.

최근 스타트업을 굵고 짧게 겪으며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여행과 직장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틈새여행을 통해

'오늘'부터 여행과 일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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