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다 마주친, 파리 미슐랭 런치 코스

비일상 '여행'에서 꿈꾸는 작은 일탈

by 오늘

나는 가성비 여행자다.

가난한 직장인이 1년 1유럽을 하려면

더 싸게, 더 일찍이 필수적이다.


비행기 티켓이 가장 쌀 때는
바로 지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만큼 빨리 준비하는 사람이

더 저렴하게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는 셈이니까.


코로나 전에는 4인 가족이 250만원으로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글이 블로그에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던 나지만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여행의 이유

일상과 일탈 사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비일상이 주는 해방감도 있지만,

요즘은 여행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서른을 기점으로 어느 순간 더이상

크게 설레고 죽도록 슬프지 않게 되었다.

아마 직장생활 10년차 이상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일희일비 하는 게 여행이다.


길을 한번에 찾으면 뭐라도 된 마냥 기분이 좋고

레스토랑에서 주문 실수를 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별거 아닌 일에도

감정을 소모하는 여행이 주는 비일상을 사랑하는 이유다.


여행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가는 모든 곳을 갈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간혹 안하면 후회로 남는 일들이 있긴 하다.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는 그 중 하나로

미슐랭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단, 런치 코스로.


오늘은 파리에서 어쩌다 미주친 작은 일탈,

미슐랭 런치 코스로 초대한다.

45유로의 행복

일본인 쉐프의 미슐랭 런치 3코스


-파리 미슐랭 키가와 KIGAWA-


'미슐랭'이라고 하면 덜컥 돈걱정부터 한다.

2시간이 넘는 식사시간 동안

아무즈부쉬부터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최소 3코스가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그만큼 얼마나 비쌀까.

그래도 궁금은 했다. 공들인 공간에서

자부심 넘치는 요리로 대접받는 기분.


미슐랭 가이드는 이런 나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파리에서 가장 저렴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이라는 타이틀로 미슐랭 런치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이른바 가성비 미슐랭 런치 코스 공략법이다.


미슐랭 런치 코스는 저렴하게는 39유로부터

수백유로에 이르기까지 가격대가 폭넓다.


처음 미슐랭에 입문하는 우리에게

런치 가격과 코스 구성만큼 중요한 게 맛이었다.

그래서 우리 입맛에 무난한 일본인 셰프의

프렌치 레스토랑 '키가와'를 예약했다.


위치 파리 14구에 위치한 키가와는

파리 중심가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다.

메트로보다는 버스를 추천하지만

요즘처럼 파업이 빈번한 시기엔

좀 걷더라도 메트로를 추천한다.


가격 키가와 런치 메뉴는 45유로다(1인).

와인 페어링은 2잔은 18유로,

3잔은 27유로 중 선택 가능하다.


구성 런치 코스는 크게 3코스로 구성된다.

두 가지 앙트레와

메인 메뉴 그리고 디저트.

앙트레 전에 아무즈부쉬가 제공된다.


미슐랭 런치 코스는 시기에 따라

메뉴가 끊임없이 바뀌니

여러 번 방문해도 늘 새롭다.



메트로 Pernéty역에서 10분 정도 걷다가

오른편으로 온통 하얀 식당을 발견했다.

12시 15분 예약시간에 맞춰

문을 여니 아이보리색 커튼이 시야를 가린다.

내부가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아

프라이빗한 느낌이었다.


크지 않은 내부에는 6-7테이블 남짓

세팅되어 있었고 모두 예약 테이블이었는데

인원에 따라 하얀 식탁보를 씌운

원형과 네모테이블이 조화롭게 레스토랑을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런치 메뉴를 주문한다.

단일 메뉴라 메인 요리만 선택하면 되어 편하다.


주문 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아무즈부쉬가 서빙된다.

이날의 아무즈부쉬는 해산물 튀김을 곁들인

감자 스프였다.

이제 본격 코스가 시작된다.

키가와는 2가지 앙트레가 나오는데

첫 번째는 참치 타르타르다.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상큼한 소스와

곁들여 참치 타르타르와 먹으면

느끼함을 잡아주며 밸런스가 환상적이다.


두 번째는 문어 가리비 구이다.

가리비를 그릇 삼아 문어를 얹고

상큼한 소스 폼을 끼얹은 앙트레로

맛도 맛이지만 데코에 시선을 뺏긴다.

이날의 메인 코스는

피쉬와 비프 스테이크 2종류가 있어

추가금을 내고 하나씩 주문했다.


단호박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인데

비프는 예상 가능한 맛이었으나

피쉬 스테이크가 일품이었다.


디저트는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얹은

타르트 느낌의 디저트였는데

옆에 된장 스틱이 포인트다.


달달한 디저트는 커피를 부른다.

카푸치노 2잔을 주문하니

두 번째 디저트와 함께 세팅된다.


한입 크기의 3종류 디저트가

커피와 잘 어우러졌다.

45유로, 정확히는 카푸치노 한잔까지
50유로의 행복이다.

에펠 뷰가 끝내주는 미슐랭도 좋지만

한끼에 200-300유로는 부담스러운

나에게 런치 코스는 만족스러웠다.

파리지앵의 2시간 식사 코스를

체험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파리의 많은 미슐랭 레스토랑은

이처럼 가성비 넘치는 런치 코스로

파리 여행자들의 눈과 입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진심이다.

물가 비싼 파리에서라면

그저 그런 관광객 대상 음식점 대신

가성비 미슐랭 런치 코스에 도전해 볼 것.



미슐랭 런치 코스 골라볼까


가성비 여행자에게는 미슐랭 1스타면 충분하다.

2,3스타일수록 가격도 가격이지만

셰프의 예술 세계에 자칫 당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가격은 1인당 50유로 내외가 부담 없다.

괜찮은 런치 코스는 65유로 정도로도 찾을 수 있다.


파리는 전세계 미식가 천국! 꼭 프랑스식이 아니어도 좋다.

프랑스 맛집은 의외로 프렌치 레스토랑보다

이탈리아식, 일식 등 퓨전이 많다.

다인종 국가인 만큼 다양한 미식 셰프들이

활동중이니 열어두고 찾아보자.


올해 가보려고 만들어둔

미슐랭 런치 코스 리스트


오베르캄프 Oberkampf - paris XI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상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으로,

런치 5코스가 39유로, 디너 5코스는 44유로로

저렴한 탓에 예약이 어렵다.


런치는 주말에만 가능하며

11구 parmentier역 근처에 있다.


레종브레 Les Ombres

에펠뷰로 유명한 미슐랭 레스토랑.

런치가 58유로로 예산보다 살짝 비싸고

가격 대비 음식 퀄리티도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후기가 많지만 이 모든 걸 상쇄하는 에펠뷰가 있다.


일찍 예약할수록 에펠뷰가 멋진

테라스 자리를 선점할 수 있으니 서두르자.


르 크리스틴 LE CHRISTINE

30유로대에 맛보는 가성비 최고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런치 코스 35유로로 구성도 우리 입맛에 잘 맞고

가격도 가성비 넘친다.

노트르담역 근처 생제르맹에 위치해

관광지 접근성도 좋은 편.


저렴한 만큼 고급진 미슐랭 느낌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written by 오늘

12년 차 직장인이자 팀장(잠시 내려놓았다).

에디터 시절 버킷리스트였던 2주간의 유럽여행을 기점으로

'1년 1유럽'을 꾸준히 실천 중이다.

최근 스타트업을 굵고 짧게 겪으며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여행과 직장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틈새여행을 통해

'오늘'부터 여행과 일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