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지호 Jul 13. 2023

서신 07.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07에게

07에게.

 

비가 쏟아지는 밤입니다. 요즘은 하늘이 변덕을 자주 부립니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다가도 조금 있으면 말라비틀어집니다. 늘 그렇듯이 나는 예측되지 못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특히 내 마음은 요즘 날씨와 비슷합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릅니다. 그 정도면 양반이겠지요. 한 시간 한 시간이, 일 분 일 분이 다른 것 같습니다.



 

07은 어떠하신가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내 하나의 취미입니다. 관찰하여 특징을 찾고 어떤 라벨을 붙여 카테고리화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문득 발음해 보니 카테고리화라는 말은 상당히 재미있지 않습니까?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범주화라고 쓰네요. 뭔가 카테고리화한다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07은 내가 카테고리화하기 가장 어려워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시제가 조금은 잘못되었을까요. 아직까지도 어렵습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면 현재 완료나 미래 완료 시제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문장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옮기자니 조금은 어렵습니다. 아마도 꽤 먼 미래까지 07은 내가 카테고리화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일 것입니다. 가끔 07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먼 시간 동안 친구로 지내왔음이 분명한데도 나는 당신의 행동이 예측되지 않습니다. 고백하건대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배낚시는 처음이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낚싯대를 잡아 본 것은 두 번째입니다. 채비하는 방법조차 잘 모르니 완연한 초보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다섯 시간 동안 낚싯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럭 한 마리와 양태 두 마리를 잡았는데요.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일이었습니다. 다만 아이스박스를 가져오지 않아 다시 방생해 버린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과정에서 07에게 함께 오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마도 낚싯줄과 함께 올라오는 우럭과는 달랐을 겁니다. 영 무기력하게 따라왔겠지요. 조금 바닷바람을 즐기다가 선실로 들어가 핸드폰을 할 것만 같습니다. 사실 07은 내 예측과는 늘 맞지 않는 사람이라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번 낚시는 다른 친구와 다녀왔습니다. 생선 대신 삼겹살을 먹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전에 그런 일이 있던 것은 아십니까. 꼬치구이를 먹던 날에 07에게 크게 화가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07은 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삽니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가 봅니다. 간헐적으로 진동하는 핸드폰 화면을 보는 07이 짜증 났습니다. 메시지를 쓱 읽고는 치워두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내 메시지도 저런 식으로 읽고 취사선택하여 답변했겠다는 생각에 빠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날 이후 나는 07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보름달에 선언했습니다만 그 맹세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온갖 귀찮음을 온몸에 걸치면서도 부르면 나와 자리를 차지하는 07을 보며 눈을 깜박였습니다. 그때쯤 나는 07을 카테고리화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07의 이름을 붙인 박스 하나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귀찮은 일입니다.



 

행복하십니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행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위로부터 하려는 세상이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그냥 평균 언저리에 있습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이 기분이 좋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사우나 이벤트탕 같은 온도일까요. 미지근합니다.

 

나는 07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끔 나의 위로가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내가 과연 이 말을 직접 당신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편지로 당신에게 보냅니다. 아마도 07은 희멀건한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만 같습니다.


사실 나도 왜 07이 내게 위로가 되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을 대체 어떤 기분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굳이 예시를 들면 그런 것입니다. 오래된 사찰의 돌로 된 탑, 사람 하나 없는 호수의 한 가운데, 비가 많이 오고 난 다음 날의 마르지 않은 우산. 나는 그런것에 은은한 위로를 받습니다.

 

우표를 사 왔습니다. 편지는 메시지와 다르게 미리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런 형태의 활자를, 당신이 읽을지 읽는 것을 포기할지 나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은 재밌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이전 06화 서신 06. 생애 마지막 헌혈을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