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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Jul 20. 2023

서신 11. 나는 개의 솔직함이 무섭습니다

늘 개와 함께하는 11에게

11에게.

 

폭염이거나 폭우입니다. 요즘에는 도대체 중간이란 것이 없는 세상 같습니다. 11은 이 정신없는 세상에서 잘 살아가고 계신가요?

 

삼계탕 한 그릇 드실 여유가 있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삼계탕을 혼자 다 먹기에는 부담스러워 반계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반계탕의 짝은 누구였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습니다.



 

쫑이는 잘 헥헥대고 있나요? 나는 가끔 쫑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개라는 것이 인간보다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늘 쫑이의 소식을 물을 때마다 조금은 두렵습니다. 쫑이가 죽은 하루의 11을 나는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는 왜 인간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쫑이는 더 그랬지요. 처음 보자마자 와다다 달려와서 내 냄새를 맡았습니다. 크게 짖지도 않고 오래 내 발밑을 맴돌았어요. 별다른 반응을 해주지 못하자 실망하고 11에게 다시 돌아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나는 개가 무섭습니다. 짖는 것도 무는 것도 이유는 아니에요.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주 못된 생각이지요. 만약 쫑이가 내 동생이라면 엄숙한 얼굴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믿어서는 안 돼요.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비는 개가 무섭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한 줌의 망설임 없이 인간을 좋아할 수 있는 걸까요. 인간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은 전혀 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쫑이가 부럽습니다.

 

솔직한 것은 어렵습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스스로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란 것은 무게가 있어요. 멍청한 생각이라고 실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확연히 그렇습니다.



 

짝사랑이란 것이 대표적이겠네요.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에 대한 감정의 무게가 다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의 무거움을 완연한 가벼움으로 대하는 몇몇에게 더없이 실망한 적이 많습니다.

 

내 마음을 보여주고 내어주는 것은 어쩌면 관계의 끝을 결심하고서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리석게 살았어요.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싫어한다고도 외치지 못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삶을 보냈습니다.

 

가끔 혹자는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솔직해지고 싶다고.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마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삶을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쫑이는 상처받지 않는 걸까요? 나는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쫑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진지하게 물어봤는데 쫑이는 왕왕 짖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장난스럽게 내게 와서 '솔직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선택할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솔직하고 싶습니다.



 

11은 어떠신가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11은 가장 비밀스러운 사람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꽤 긴 대화를 한 적이 있었지요. 나는 그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110점 만점에 96점 정도로 놀랐습니다.

 

나는 11이 그렇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일 줄 몰랐거든요. 사실 기껏해야 그전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는 하릴없이 부질없는 것 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11과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비록 나는 아주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날은 푹 자서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짐작하다시피 나는 아주 경우 없이 독특한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나는 '너는 내 인생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확고한 1등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웃어넘겼지만 조금은 울적했어요. 다만 2등보다는 아무래도 나은 것 같습니다. 패배하는 것 보다야 낫겠습니다.

 

쫑이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간식 하나와 함께 쓰다듬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답장에는 쫑이의 사진을 함께 보내 주십시오. 당신의 사진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솔직하지 못했네요. 당신의 사진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또다시 솔직하지 못했네요. 당신의 사진도 꼭 동봉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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