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굽혀펴기로 가슴 운동하면서
대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저는 대학 테니스 동아리에서 운영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2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살짝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학과 동기들은 대부분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거든요. 그 당시 군 복무를 빠르게 마치고, 복학하자마자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었습니다. 동아리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군 복무를 늦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아리 운영진 활동은 시작되었고, 나름 열심히 재밌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동기가 ROTC 학군단에 지원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교내에서 깔끔한 단복을 입고, 각 잡은 베레모를 쓰고, 시커먼 007 가방을 들고 다니며, 멀쩡하게 걸어가다 “충성!”을 외치던 사람들. 제가 아는 ROTC 모습이란 그것이 전부였는데, 동기가 그것을 하겠다고 말한 겁니다.
“그거 하면 군대 언제 가는데?”
“4학년 마치고 졸업하고 가야지.”
“뭐? 졸업하고 군대 간다고? 그럼 너무 늦게 가는 거 아냐?”
“그래도 간부로 가는 거잖아.”
“간부?”
“소대장으로 간다고. 아니면 병사로 가야 하잖아.”
“아~ 병사로 안 간다고. 좋네.”
소대장으로 군 입대하면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병사로 안 갈 수 있다고 하니,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한다고 하니 마냥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저도 덜컥 지원을 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지원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체력측정 평가가 있다는 사실을. ROTC 학군단 체력측정으로는 1.5km 달리기, 2분 팔굽혀펴기, 2분 윗몸일으키기가 있습니다. 나름 테니스 치며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자신감에 1.5km 달리기는 어떻게든 이 악물고 뛰면 될 것 같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뱃살이 없는 배 덕분인지 윗몸일으키기도 어느 정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팔굽혀펴기를 해보니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그동안 20여 년 인생을 살면서 제대로 팔굽혀펴기를 해본 적이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어떠한 운동기구 없이 맨몸 운동으로 가슴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운동은 팔굽혀펴기입니다. 하지만 정작 헬스장에 가보면 팔굽혀펴기를 하는 분들은 흔치 않습니다. 팔굽혀펴기 동작은 체중의 60% 정도만 실리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제대로 키우려면 부하를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극할 가슴 부위에 따라 동작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벤치 프레스, 인클라인 벤치 프레스, 덤벨 체스트 프레스, 덤벨 플라이, 케이블 크로스 오버 플라이, 덤벨 풀오버, 딥 등 운동기구를 활용한 다양한 가슴 운동이 존재합니다. 대체로 가슴 운동은 고중량을 다루는 것이 효과적이며, 동작을 천천히 하여 가슴의 이완과 수축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체력측정을 위한 팔굽혀펴기는 조금 다릅니다. 체력측정은 속도 싸움이죠.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한 동작으로 팔굽혀펴기를 몇 개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지원자가 가슴 근육이 얼마나 크고 예쁜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지원자가 가슴의 이완과 수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날개 뼈 움직임이 어떠한지 등을 보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빨리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팔굽혀펴기 봉 정중앙에 빵빵이라고 불리는 자전거 벨이 달려있습니다. 고무로 되어서 누르면 “빵!” 하고 소리 나는 거 아시죠? 훈육관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팔굽혀펴기를 시작하고, 가슴으로 빵빵이를 눌러 소리가 “빵!” 하고 울리면 유효 개수로 카운트됩니다.
체력측정을 준비하면서 따로 헬스장까지 잘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씻기 전에 화장실에 있는 욕조 가장자리에 손을 올리고 팔굽혀펴기를 연습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실제 팔굽혀펴기 봉 높이와 비교하면 훨씬 높은 위치지만, 그렇게라도 매일매일 연습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흔하면서도 뻔한 그러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교훈을 그때 몸소 깨달았습니다. 특히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에서만큼은 확실히 통하는 교훈입니다. 화장실에서 부단히 연습했던 시간 덕분에 무사히 ROTC 학군단에 합격할 수 있었고, 훗날 임관 후 야전에 가서도 체력측정 ‘특급’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여행 한번 해봤습니다. 그 시절에 팔굽혀펴기 좀 했다는 거지 가슴이 막 빵빵하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아니고요.
팔굽혀펴기를 하며
오늘도 딴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