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속도 사이에서 지쳐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으로 정신을 채웠나?
짧은 영상, 빠른 댓글, 반복되는 멀티태스킹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덜 느끼고, 더 많이 반응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마무리된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한다. 이처럼 모순된 감정은 우리가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침묵하면서, 낯선 이에게는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이 기묘한 풍경 속에서, '관계'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러한 관계의 역설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제는 SNS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조차 어렵다. 2023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KISDI)에 따르면, 한국인 만 13세 이상 인구의 89.6%가 SNS를 이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18~34세의 78%는 "SNS 없이 살기 어렵다"라고 응답했다.
흥미로운 점은, SNS 사용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정보와 사생활 노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 뉴스는 끊임없이 보도되고, 법적 규제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SNS에 자발적으로 공유한다. 타인의 시선은 부담스럽지만, 그 시선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이 모순된 태도는 현대인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양가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의 전시했다면 지금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는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삶을 공개하면서 현대인의 ‘관계’의 역설을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SNS은 낯선 사람의 삶을 볼 수 있고 자기 삶을 전시하는 무대이다.
실제 공간에서 타인과의 접촉면이 줄어드는 만큼 가상공간에서의 접촉면은 늘어드는 느낌이다. 가상 접촉면에서 우리는 크리에이터인 동시에 팔로워이다. 자발적으로 나를 드러내며 집요하게 남의 삶을 관찰한다. 왜 현대인은 SNS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가? 그 답은 ‘이웃’의 형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 농촌 공동체에서는 이웃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일반적이었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마치 한 가족인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자라났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무한한 사랑과 견제, 훈육을 동시에 받았다.
이러한 공동체 형태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일자리로 찾아 모여들기 시작한 산업화 초기 시대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에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았고 대문이 있더라도 대부분 열려있었으며 이웃 간에는 음식도 나누고 아이도 함께 돌보았다. 비록 풍경은 농업사회와 달라졌지만 사람들 간의 간계는 여전히 긴밀했다.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아파트의 등장 이후이다.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제한된 공간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도입되었다. ‘아파트’는 고대 로마의 다세대 주거 공간인 ‘인술라(insula)’를 모티브로 하여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현대적으로 제해석한 개념이다. 단독주택을 가지기 힘든 환경을 고려해 고안된 만큼, 유럽에서는 여전히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아파트는 이웃 간의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지만 정작 정신적 거리는 멀어졌다. 예전엔 마당과 골목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알았지만 이제는 벽 하나를 두고 사는 이웃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웃은 ‘벽 너머의 익명’이 되었고, 이 ‘익명’을 궁금해하는 것조차 때로는 금기처럼 여겨진다.
물리적 거리의 단축이 정신적 거리를 넓혀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일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내 사생활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면,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문두에서 언급했듯 타인의 시선이 지옥이라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건물의 벽을 사이에 두고 타인과 살아가면서 타인의 삶을 ‘층간소음’이라는 형태로 듣고 산다.
자칫하면 내 삶이 드러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렸다. 마치 물리적 거리라는 절충안을 잃어버린 현대인이 정신적 거리로 무장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에게 익명이 되는 현상은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의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이웃은 우리 집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때로는 조언이라는 핑계로 잔소리를 하곤 했다. 현대의 인간관계에서는 과거의 이웃이 주었던 불편함을 사라지고 새로운 관계가 등장했다. SNS를 통한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SNS에 사생활을 자발적으로 올리고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이웃과의 관계는 벽너머 ‘익명’이 되었고 이제 그보다는 SNS에서 만날 수 있는 익명인 동시에 구체적 존재인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인간관계는 디지털화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 하나는 랜선 ㅇㅇ이다. 랜선 이모, 랜선 삼촌, 랜선 아빠… 물리적으로 벽을 마주한 이웃이 아닌 손에 쥔 스마트폰 속의 누군가, 자신이 팔로우하는 누군가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그런 사람들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우리는 팔로우하는 사람의 가족 구성원, 방 구조, 취향까지 알게 된다. ‘랜선’ 관계는 이제 대면 공동체를 대체하고 있다.
‘각자’가 구성한 ‘대면 공동체’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서 타인의 일상을 지켜본다. SNS에 전시된 타인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이며 진실한 것이라고 믿고 무한 신뢰를 내비친다. 내가 랜선 이웃에게 남기는 댓글은 옛 이웃이 했던 조언을 대신하며 랜선 이웃은 영상으로 자신이 쓰는 제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 가까운 타인은 좀처럼 그런 무한한 신뢰를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SNS 중독은 사실상 관계와 소통에 대한 욕망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예전엔 선택권 없이 형성된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팔로우할 사람을 선택하며, 소비하면서 만드는 관계가 있다. 그렇기에 푸시 알림에 민감하며, ‘좋아요’ 수에 안도하고, 댓글하나에 감정을 소모한다. 인간은 여전히 타인을 거울삼아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다만 거울은 더 이상 마당 건너에 있지 않고 디지털 공간에 있다. 외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은 여전히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확신을 얻고자 한다.
문제는 디지털화된 인간관계가 타인이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디지털 이웃이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 만들어낸 이미지를 실제의 이미지라고 믿기도 한다는 점이다. 과거 현실의 이웃은 웃음, 갈등, 위로, 불편함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입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SNS에서의 이웃은 성공, 즐거움 등 멋진 모습만 보여준다. 현실에서 슬프거나 괴로운 순간도 SNS에서는 이상화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타인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던 SNS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의 부족함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만다.
디지털 소통은 겉으로는 쌍방향 소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차가 있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게시물은 며칠 혹은 몇 달 전의 장면일 수 있고 대부분은 연출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반응하며 친밀감을 느끼면서 ‘랜선 가족’을 만들고 현실에서 느끼는 관계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형성이 되었던, 못난 부분과 잘난 부분을 고루 가진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졌던 과거의 이웃관계를 생각해 보면 디지털 이웃관계는 즉흥적이고 단순하다.
이러한 디지털 이웃은 얼핏 보면 쌍방향 소통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차가 있는 일방 향 소통에 가깝다. 게시물은 며칠, 혹은 몇 달 전의 장면일 수 있으며, 대부분은 연출된 ‘좋은 모습’들이다. 우리는 그 이미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친밀감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랜선 가족'을 만들고 현실세계에서 부족한 관계의 허기를 채우려 한다.
이러한 관계의 문제는 너무 단순하고 표면적이라는 것이다. SNS에서는 어떤 사람의 좋은 면만 볼 수 있으며 다른 면을 보고 싶어도 카메라 밖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이 사람 이런 점은 싫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는 없어’라는 말을 SNS 이웃에게는 할 수 없다. 디지털 이웃은 좋은 점만 가진 평면적인 사람이다. 수고 없이 맺어진 유대는 얕고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수많은 연결 속에서도 다시 외로움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아하는 점과 싫은 점이 공존하는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타인과의 관계,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관계가 우리 마음을 더 깊이 채워준다. 과거의 관계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했지만 그만큼 든든하고 더 지속됐다. 반면 SNS를 통한 관계는 빠르고 넓게 맺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허기지게,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평면적이며 노력 없이 만들어지는 이 인스턴트 한 관계는 관계 중독을 만들어내며 그 때문에 우리는 SNS에 더 자주 접속하게 된다. 결국 ‘소통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우리는 관계에 허기져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25년 7월 4일 브런치에 먼저 공개된 글입니다, 연재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