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가속된 디지털 사회, 인간다움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이 빠르게 AI로 대체되고 있다. 하나의 명령어로 포토샵이 완성되고, 긴 문서의 중요 요약이나, PPT 보고서도 명령어 몇 번으로 끝난다. 외국어는 이제 어플로 번역하고 일상의 많은 부분이 이미 자동화되고 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을까?’. 유일한 승리를 가져온 이세돌의 수는 '엉뚱한 수'였다. AI가 계산하지 못한, 인간적인 직관이 만들어낸 의외성이었다. 인간적인 엉뚱함이, 1초에 수백만 가지 수를 계산하는 AI를 흔들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 AI는 더 많이 발전했고, 인간의 삶과 사회 곳곳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AI의 보급을 가속화한 건 인간 간 접촉을 제한했던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을 각자의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인간사이의 모든 접촉이 제한되었고,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디지털 사회에 편입됐다. 강의실은 줌으로 옮겨졌고, 미술관은 온라인으로 개방되었으며, 회사 업무는 원격 근무 체제로 전환됐다.
디지털 소외계층조차도 온라인 회의, 원격수업, 화상진료에 적응해야 했다. 그 결과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학생들은 태블릿으로 수업을 듣고, 회사원들은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며, 다른 사람들은 사이버 전시관을 방문하거나 NFT 작품을 구매한다. 이제 디지털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삶의 중심에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AI를 잘 다루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이는 AI를 이렇게 비유했다. “손으로 농사를 짓던 농부가, 트랙터를 만난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많은 일꾼이 필요했겠지만 이제는 트랙터 한대로 충분하다. 필요한 인력은 트랙터를 모는 한 사람뿐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일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넘어오면서 인류는 일자리를 잃고, 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살아왔다. 트랙터 때문에 밀려난 인력들은 공장으로 갔고,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사라지는 인력들을 서비스업, 유통업, 관광업 등이 빠르게 흡수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
예전의 생산 수단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산업군이 만들어졌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국 변화 없이 AI가 기존 직업들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 통역사, 디자이너, 상담사까지…AI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인간을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잠시 급성장한 업종이 있었다. 바로 배달업이다. 당시 사람들은 외출과 대면 접촉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달 서비스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게 배달업은 많은 실직자들을 흡수하며 일종의 ‘임시 안전망’ 역할을 했다. 이런 변화는 당시 삶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나고 일상이 회복되자 배달업은 더 이상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삶의 방식에 변화 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 학자는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자리를 잡는데 9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낀 세대가 될 수도 있다. 직업의 개수는 줄어들고 사람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1964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산업사회의 소비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인간은 노동하고 소비하면서 체제의 일부가 되었고, 삶의 깊이는 점차 얕아졌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여전히 한 달 동안 번 돈을 소비하고, 다시 그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현대인의 삶을 나타내는 프랑스어의 표현 ‘메트로(Metro)-불로(Boulot)-도도(Dodo)’(지하철 타고 일하고 자는 반복적인 삶을 지칭)는 여전히 유효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간의 사고는 평면화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지쳐간다. 풍요 속에서 인간의 사고는 점점 얕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4차 산업 시대의 현대사회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즘은 4.5일제, 나아가 주 4일제까지 논의되고 있다. 초기의 산업현장에서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로로 쓰러졌고,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다루어졌다. 아이들의 노동조차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에 인간에게 ‘쉼’은 사치였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쉼’은 인간에게는 ‘비타민’과 같은 것이다.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해서 인간다운 삶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법으로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이다. 일을 많이 하면 부유하게 살 수도 있을 테지만, 일을 줄이더라도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하지만 ‘워라밸’이 무너진다면? 예전에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쉴 수 없는” 상태가 워라밸이 무너진 상태였다면, 이제는 “일이 없어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로 무너질 수도 있다.
앞으로의 워라밸은 노동‘과잉’의 문제가 아니라 일의 ‘결핍’의 문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의 시간, 그 텅 빈 시간을 인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기계가 모든 효율을 담당할 때,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는 첫걸음은 쉼이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로 돌아가는 ‘정신의 유산’, 쉼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