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문학의 역설

쉼은 정체성이 다시 피어나는 장소

by 발가락꽃



우리는 왜 쉼을 이야기하면서 예술과 인문학을 함께 말할까? 그것은 쉼이 단지 육체의 정지가 아니라,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내면의 시간이며, 그 내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과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인문학은 인간의 탄생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본능적 언어다. 고대의 동굴 벽화, 토속인의 노래와 춤, 주술과 신화, 철학과 문학 —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 시도들은 언제나 '쓸모'나 '효율'이 아닌,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및 태생으로부터 오는 어떤 놀이의 일종이었다. 오늘날의 실용 중심 사회에서 ‘쓸모없음’으로 여겨지는 인문학과 예술은 어떻게 보면 태초부터 오히려 가장 근원적인 쓸모를 품고 있는 역설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걷기 시작하고 무리 지어 사냥을 할 때부터 사냥의 기원과 안전을 바라며 벽에 그림을 새겨 놓았고, 토속신앙에서 비롯한 춤과 노래를 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미 존재와 세계, 우주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신화에서 찾던 인류가 스스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면서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생겨났다. 신화의 신은 점차 유일신의 형태로 바뀌어가며 철학은 지금의 신을 고안해 내었고, 인류의 수많은 전투와 삶은 역사책이 되었고, 사람들이 꿈꾸던 공상들, 노래들은 문학이라는 형태로 세련되어갔다.




인문학과 예체능은 실용주의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아무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다. 취업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송하다’는 말이 있다. 인문학을 한다, 예술을 한다고 하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예술이야말로 그 역사가 가장 깊다.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청소년 시절부터 문학, 역사, 미술, 음악 등을 배운다. 왜 우린 청소년기에 이런 기초적인 학문들과 예술들을 접하게 하는 것일까? 전 세계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기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추천하는 책이라고 함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보통은 고전이다. 문학은 전지적 시점의 훈련을 제공한다.




실제 삶에서는 불가능한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동시에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사람을 단편적인 인상으로 판단하지 않고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습관과 힘을 기르게 된다.




철학은 답이 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습관을 만들어주며, 예술은 언어로는 부족한 감정을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우리 안의 잠자고 있던 감정을 바깥으로 끌어올린다. 요컨대 예술과 인문학은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돕고, 스스로의 감정을 언어화하며 삶을 조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실은 이보다 더 실질적인 공부도 드물다.




이런 경험들은 모두 ‘쉼’이라는 감정적 공간에서 더 잘 작동한다. 바쁘고 피로한 일상 속에서는 질문을 품고, 이야기를 곱씹고, 타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쉼의 시간 속에서는,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쳤던 감정의 파편들이 하나씩 말을 걸어온다. 그 대화를 가능하게 질문하며 소통하게 하는 언어가 바로 인문학이고, 그 감정을 번역해 주는 통로가 예술이다.




‘정체성’은 멈춰 서야만 비로소 보인다. 인문학, 예술과 함께 쉬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의 삶, 개인의 특성, 그리고 우리의 감정들을 더 잘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다양한 관점으로 비춰본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숨을 쉬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정체성을 가지고 더 단단해진다. 좋은 쉼을 가진 후 우리는 더 창조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정체성은 한 번 완성되어서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이 아닌 계속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으로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타인의 시선들의 집합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타인의 시선마저 자기가 소화해서 스스로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도 정체성의 일부이다.




다시 말하면 정체성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드는 행위 자체도 정체성의 일부를 이룬다.




엄밀히 말하면 인문학과 예술은 정체성의 재료인 동시에 정체성을 구성하게 만드는 힘이다. 여기서 재료는 내 안에도 있을 수 있는 타인의 모습이며, 힘이란 타인의 사유, 모습에 비추어 나를 스스로 되돌아보려는 의지이다.




타인을 거울삼아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려는 의지, 이게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들려는 의지,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정체성이란 쉼을 통한, 타인을 통한 자기 성찰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쉼은 단지 재충전이 아니라 정체성의 재구성이다. 예술과 인문학은 그 과정을 가장 인간적으로, 그리고 가장 자율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쓸모없음이 허용되는 공간, 실패와 멈춤이 부끄럽지 않은 장소, 거기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의 정체성은 자유롭게 만들어진다. 결국 우리는 ‘좋은 쉼’을 통해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쉼이 우리 안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는 순간, 우리는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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