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에 쉼표를 찍는 법

좋은 쉼은 우리를 다시 걷게 한다

by 발가락꽃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매일 넘어지듯 다 큰 어른도 정신적으로 매 넘어진다. 어쩌면 어른의 정신적 걸음마는 완성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실패의 경험에서, 아니면 삶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위기에서 자존감이 깎이면서, 소위 말하는 멘털도 크고 작게 무너진다.



그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바로 ‘잘 쉰 경험’이다. ‘쉼’이 회복 탄련성을 가져다준다는 건 쉼이라는 여백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견디는 동시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종의 충격완화제인 셈이다.



여백, 쉼… 마치 걷다가 넘어진 어린아이 옆에서 괜찮다고 손 내밀어주는 엄마처럼, 여백을 주는 쉼은 이처럼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한다. 괜찮다는 엄마의 미소처럼 우리 스스로 마음에 믿을만한 쉼표하나쯤은 두어야 한다.




반복하지만 이런 쉼은 소위 말하는 단순한 휴식이나 충전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짐의 무게를 어루만지는 정서적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왜 지쳤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지금껏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달려왔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보는 성찰의 공간이다.



‘좋은 쉼’이란 나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기계가 고장 나지 않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기계 작동을 멈추고 부품 상태를 찾아봐야 하듯이, 쉬는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시간이다.


이런 쉼은 단순한 ‘휴식’이나 ‘충전’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무게를 어루만지는 정서적 시간이다. 내가 왜 지쳤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그간 무엇을 붙잡고 달려왔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보는 성찰의 공간이다.



‘좋은 쉼’이란, 말하자면 나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시간에 가깝다. 마치 고장 난 기계를 잠시 멈추고 부품을 점검하듯이. 이런 시간은 버린 시간이 아니고 우리가 지켜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는 우리가 고장 나 있어도 계속 작동하길 강요한다. 생산성, 성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쉼은 종종 ‘게으름’이나 ‘나약함’으로 치부된다. 한국의 문화는 남을 배려하는 문화이다.



항상 부지런해야 하며, 조직 내에서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일을 다른 동료가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이다.



이런 문화 안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은 회복의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인데 어느 순간 일과 자신의 우선순위가 뒤바뀐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안으로서의 쉼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자기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수용이다. 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진짜 느끼는 것과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의 누군가 나에게 부당한 지시, 수치스럽게 만드는 언행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순전히 내 잘못 때문에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안에 대해 거리를 두고 문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더 나아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몰아붙이는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되새김질의 의미로써의 반성을 하면 할수록, 비로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의 피로, 상처로부터의 회복은 여기서 가능하다. 물론 이 회복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내 일생을 재구성하고, 내 존재를 스스로 규정하는 그래서 내 존재의 재정립인 의미에서의 회복이다.





쉼표는 문장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문장을 더 읽기 쉽게 만들어주는 작은 여백이다. 삶도 그렇다. 쉼표 없는 삶은 버겁고 난해하다. 쉼을 잘 찍는다는 건, 삶의 리듬을 아는 것이고 감정의 파고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다. 이렇게 우리는 더 단단 해지고, 쇄빙선이 얼음을 부수면서 길을 내는 것처럼 내 마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도 한다.




좋은 쉼은 우리를 가만히 눕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걷게 하는 힘이다. 인간의 마음에 쉼표를 찍는다는 것은 곧 ‘살아갈 힘을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우리는 결국, 회복의 힘으로 걸어 나가는 존재다. 이때 ‘쉼’은 단지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을 준비하는 무대이자 예고편이다.




이 장에서는 일상의 작은 쉼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쉼표가 가치 있게 작용하려면 내면의 ‘코어’가 필요하다. 무작정 쉰다고 내면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즉 잠을 자거나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회복탄력성이 생기지 않는다. 삶 속의 작은 쉼도 중요하지만, 이 작은 쉼표가 큰 의미가 되려면 평소에 더 ‘잘’ 쉬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인문학과 예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 두 가지는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양하게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며, 마음의 구조를 탐색하게 하는 게 바로 인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평소에 인문학과 예술로 내면을 단련한 사람은, 작은 쉼표 속에서도 빠르게 자신을 돌아보고 상황을 넓게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런 능력을 길러 준다면 삶 속에서 작은 쉼표로도 문장을 전환하는 능력을 만들 수 있고, 본인의 주체가 되는 인간성을 빠르게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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