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쉼이 주는 자존감과 회복탄력성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더 피곤할까?”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쉼의 방식’ 문제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쉼의 중요성과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다. 또한 앞서 좋은 쉼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좋은 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좋은 쉼’을 누리기 위한 전제 조건 하나를 분명히 하자. 그것은 지금 내가 ‘번아웃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번아웃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종이 한 장 들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독서나 산책 같은 회복적 쉼은 사치일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기초적인 회복,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눕는 것이다. 아사 직전의 사람에게 유기농 음식인지 아닌지는 관심밖이다. 그에게는 칼로리, 생존이 먼저다.
쉼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피로 상태에서는 빠르고 즉각적인 회복이 우선이다. 앞서 육체적 쉼과 정신적 쉼을 구분했지만, 결국 육체적 쉼은 정신적 쉼의 조건일 수 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는 말은 그만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는 힘들다는 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쉼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쉼이다. 앞서 언급했듯 AI가 많은 업무를 대체하며 시간이 많아진 이 시대, 어떤 쉼을 통해 인간으로서 자존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쉼이 주는 탄력성 덕분에 다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우리의 관심사이다.
다시 말하면 쉬는 법을 잃어버렸고 다시 배워야 하는 지금, 어떻게 마음을 배부르게 하며 회복 탄력성을 갖게 하는 ‘좋은 쉼’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정신의 패스트푸드로 쉼을 채우고 있는 지금 유기농 쉼을 가능하게 할 슬로프드는 책이다. 여전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인의 쉼은 책과 멀어졌다. 예전에는 책을 읽거나, 산책하거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비교적 단순하고 리듬감 있게 생활하면서 쉬었다면, 지금은 손바닥 안의 스크린으로 쉼의 시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15초 안에 터지는 재미는 우리의 뇌를 자극하며 ‘더 많은 도파민’을 갈망하게 만든다.
책과 유튜브 같은 매체의 차이는 무엇일까? 책은 종이로 되어 있기에 시각적 자극성이 동영상보다 약하다. 24개월 미만의 소아의 경우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 경우 시각 정보 처리 문제로 인한 ADHD가 될 경우가 많다고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프랑스 같은 경우는 비슷한 이유로 지난 7월 3일부터 만 3세 이하의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시설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걸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연속적으로 겹쳐지는 이미지들은 뇌에 피로감을 준다. 성인은 그 충격을 견딜 수 있지만 아직 뇌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미디어들은 ‘쉼’이 아닌 ‘소비’를 유도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영상은 감정을 깊이 있게 느낄 틈을 주지 않고, 이 틈이 만들어내는 여백의 미학을 무시한다. 마음의 울림은 물수제비처럼 퍼져나가야 한다.
그래서 여운에 한 번의 쉼표가 주어져야 오래간다. 하지만 쉼 없이 전환되는 화면과 정보 속에서는 그런 여운을 가질 수 없다.
또 다른 차이는 연속적인 매체의 이미지 수용에 있어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책을 읽을지 혹은 어떤 예술 작품을 볼 지 선택할 때는 많은 고민을 한다. 책을 읽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책이 알고 봤더니 별로이면 그만큼 다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중간까지 본 책을 중단하기도 아쉽다.
예술 작품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동 시간, 관람에도 시간과 돈이 든다. 오프라인에서 문화 활동을 즐기면서 쉼을 선택할 때는 이런저런 정보를 비교하며 선택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쉼은 다르다. 처음 미디어를 선택하는 건 나의 의지이겠지만 그 이후에는 소위 말하는 알고리즘이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알고리즘이 나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알고리즘이 보내온 영상이 마음에 안 들면, 손가락짓 한 번으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다른 영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 뿐이다. 전기세와 인터넷비를 제외하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거의 없다.
그래서 홍익대 건축과 교수 유현준 교수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온라인에 쓰는 시간이 많고, 부유한 사람일수록 오프라인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부유할수록 건강한 음식을 먹듯, 부유할수록 좋은 질의 쉼을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프라인의 휴식은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든다. 경제적 부유함/가난함은 정신적 부유함/가난함이 된다.
초고속으로 소비되는 쉼은, 정신의 패스트푸드에 다름 아니다. 빠르고 싸고 중독성 있지만, 결국엔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질문은 다시 반복된다. “쉼에도 유기농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유기농 쉼은 느리고 불편하며 종종 외롭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들이고, 선택하고, 감정의 잔향을 남기는 생산적인 쉼이다. 책 한 권을 읽고, 천천히 걸으며, 스스로 선택한 전시를 관람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일기장을 여는 것… 이런 쉼은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자기 존재를 다시 느끼게 해 준다. 그 어떤 스마트한 알고리즘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만의 회복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