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각과 가깝게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멀게

예술, 이해와 거리 사이의 균형점

by 발가락꽃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남과 함께 살아가고 죽을 때까지 남과 함께 생활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불행하게 하는 건 벗어날 수 없는 이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루에 수백 번도 타인이라는 같은 이름의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남이 해준 칭찬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남이 한 작은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타인과 언제나 떨어져 지낼 수 없기에 사람은 늘 타인을 궁금해한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제기한다.



궁금하긴 해도 가까이 가기엔 부담스러운 존재가 바로 타인이다. 예술은 이런 욕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예술가들은 자기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감정, 생각을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다.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덩어리의 감정 뭉치들은 아티스트는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요컨대 예술가들은 작은 감정 뭉치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관객은 자기 나름대로 이 공간을 경험하며 더 나아가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비록 아티스트가 창작 활동을 할 때 관객의 존재,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아니 그러한 이유 덕분에 관객은 솔직한 아티스트의 감정과 시선을 향유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배우의 시선은 카메라를, 즉 관객을 향하지 않는다. 만일 배우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한다면 그래서 관객이 배우의 시선이 자기를 향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순간 관객의 몰입은 깨진다.



물론 관객이 배우를 바라보게 연출하는 영화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몰입을 깨기 위한 장치, 혹은 관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극 중 상대를 보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경우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극작가는 연극 분야에서 이런 효과를 염두에 두고 ‘거리두기’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작품이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관객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때만 관객은 예술가의 내밀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질문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항상 정답을 찾지만 정해진 답이 없기에 관객의 상상력은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의 울림은 마음속에 퍼져나간다.



다시 말하면 예술 작품은 관객에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작품이 만들어내는 공간 안에서도 작품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사회에서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지나칠 때는 신경이 쓰이지만, 예술 작품은 그런 것이 없다. 빠른 걸음으로 예술 작품을 지나쳐도 나에게 뭐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고, 작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때로는 나를 끄는 작업 앞에서도 내가 던진 물음에 즉각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물음은 마음속 깊이 박혀 삶의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한참 지난 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요컨대 예술 작품은 아티스트의 세계로 관객을 이끌기도 하지만, 아티스트의 세계를 통해 관객이 자신의 세계를 뒤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예술 작품은 나를 향하는, 나를 이끄는 시선일 뿐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즉, 예술 작품은 ‘나’가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다.



자기와 자신의 이 ‘안전한 거리’는 관객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중요하다. 아티스트는 자기만의 사적인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만, 그것을 완전하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즉, 은유와 상징, 모호함이라는 필터를 씌워서 감정을 작품의 형태로 변환한다.



관객은 이런 필터를 통한 감정을 마주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고통이나 불편함보다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먼저 느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타인의 생각과 가까워지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멀어지는 독특한 경험이 발생한다. 예술 작품은 나를 의식하지 않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초대해 자신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술은 관계의 방식을 바꾼다.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대부분의 관계는 직선적이다. 마주 보고, 묻고, 답하고, 반응한다. 하지만 예술 안에서의 관계는 곡선에 가깝다. 멀리서 시작해 천천히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나를 스치고, 다시 멀어진다. 이 곡선적인 움직임 덕분에 우리는 ‘아티스트’라는 타자와의 거리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치유의 시작일 수도 있다. 바라보기 힘든 타인의 시선을 거리를 두고 안전선 안에서 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그것을 향해 온전히 개인의 감정을 쏟아 낼 수 있다는 점, 다시 말하면 자신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 이 두 지점 사이의 안전한 균형이 타인을 이해하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게 하고, 보기 힘들었던 것들을 마주 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예술 작품이라는 타자는 결국 타인의 양면성, 즉 지옥인 동시에 나를 밝히는 거울이라는 걸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지옥이라도 지옥에 몸 담그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그럼에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 또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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