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여백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할까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의 많은 도시들은 조용하면서도 거대한 전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생산의 공간’을 넘어서 서서히 ‘소비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었다.
첫 번째는 글로벌화였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기업들은 생산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제품은 도시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에서 그 제품을 소비했다. 도시는 생산이 빠져나간 자리에 거대한 시장을 품게 되었고, 생산 대신 서비스·관광·문화·금융이 도시의 중심 산업이 되었다.
두 번째는 환경 문제에 따른 규제 강화였다. 대기오염과 산업폐기물 문제는 제조업을 도시 밖으로 밀어냈고, ‘깨끗한 도시’를 지향하는 정책은 제조 시설의 도심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도시는 점점 생산의 기능을 잃었고, 대신 소비와 경험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 되었다.
최근 경험했던 도시의 변화에서 AI 시대의 인간상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 ‘도시가 생산에서 소비로 전환된 것처럼, 인간의 삶도 같은 흐름을 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AI가 우리의 일을 대신한다고 해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한때 도시가 그랬던 것처럼, ‘생산의 주체’에서 ‘소비와 의미의 주체’로 이동하는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AI가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더 많은 시간과 더 적은 ‘의무적 생산’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가?’
과거 우리는 어떤 성과를 냈는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등, 유용성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더 적은 노동과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시대가 오면 유용성만으로 나를 증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흔들리지 않는 코어이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질문, 존재 자체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가장 중요해진다.
우리는 인간의 생산성이 줄어드는 첫 번째 세대일지도 모른다. 줄어드는 노동 시간과 그로 인해 늘어나는 여가 시간이라는, AI가 만들어준 새로운 여백 속에서 방황하며 새로운 삶의 기준을 찾아야 하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유용하든 무용하든 상관없이, 존재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에게 나는 성취가 아니라 존재로 의미 있는 사람, 그래서 무언가를 ‘해줘서’가 아니라 ‘함께 있음’만으로 감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감각이 다시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산을 잃은 뒤에도 소멸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머물고, 걷고, 만나고, 경험하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성도 그렇게 효율과 성과가 아닌 관계와 감각, 공감과 존재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대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 공동체 안에서 좋은 이웃으로 존재하는 능력이 어쩌면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역량이 될지 모른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인간의 역할, 더불어 사는 감각,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관계. 이것이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근원적인 능력이자,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는 노동과 생산을 대신할 수 있지만, 소비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혹은 창조)은 대신할 수 없다. 도시산업이 서비스업·관광업으로 대체되었듯 어쩌면 인간의 소비가 생산보다 더 중요해지고, 이 덕분에 인간은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유용함이 중심 가치였던 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성은 유용성과 떨어져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인간의 생산성이 줄어든다면 인간의 사회성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인간의 상호 관계가 더 강조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가치를 생산성이 아니라 인간성에서 찾고, 더불어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 이것이 바로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의 새로운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