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에 대하여
AI는 우리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복잡한 계산을 대신하고, 필요한 정보를 즉각 정리해 제공하기에 우리는 손끝 몇 번의 움직임으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AI는 어디까지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 인간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편리한 삶을 돕는 것과 인간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AI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삶은 결국 몸을 가진 인간이 직접 해야 하는 경험의 연속이다. 단순한 예를 들면 사람은 여전히 밥을 먹어야 하고, 산책을 해야 하며, 친구도 만나야 한다. 디지털화된 데이터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이 단순한 사실들이 모여 인간이라는 자리를 유지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AI는 수익을 창출할 수는 있어도 지출할 수는 없다. 누군가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몸을 움직여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여전히 소비의 주체는 인간이다. 사람이 무너지면 경제도, 사회도, 더 나아가 국가마저 무너진다. 그렇기에 결국 인간만이 공동체를 지킬 수 있으며, 이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AI가 모든 질문에 신속하게 답을 내놓는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박탈감과 허무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내가 수십 년간 고민해도 풀지 못한 문제를 기계가 몇 초 만에 해결한다면, 인간의 사유와 감정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예술과 인문학이 인간을 위한 자리가 될 수 있다.
예술과 인문학은 인간에게 실용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즉, 이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라고 묻지 대신 당신이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묻는다. 이 학문들은 수천 년간 인간이 살아오며 축적한 사고와 감정의 보고서이며, 인간의 영혼을 지탱해 온 기억의 총체이다.
우리가 문학을 읽고 철학을 하며, 그림 앞에 서서 오래 머무는 이유는 당장의 효율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내면을 정돈하고,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기 위함이다. 길고 복잡한 문장, 때로는 지루할 만큼 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뿌리를 찾는다. AI가 제공하는 요약본은 빠르지만, 깊이를 대신해주지 못한다.
또한 예술과 인문학은 우리를 타자와 연결시킨다. 우리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수백 년 전의 시인과 대화하고, 한 점의 그림을 통해 다른 시대의 감각을 공유한다. 음악을 통해 국경을 넘어선 감정을 나누고, 철학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의 사고와 만난다. 이 모든 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 교감이다.
예컨대 AI가 인간의 대화를 모방할 수는 있지만, 공감의 깊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은 상대의 눈빛, 침묵, 떨림 같은 미세한 신호에서 감정을 읽는다. 때로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여백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이때 느껴지는 감각은 연산이나 데이터의 매칭으로는 재현될 수 없다. 공감은 기계의 ‘정답’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온기를 느낀다. 이 온기라고 하는 기억은 생각보다 무섭다. 아이 양육에 관한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장 좋은 양육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은 아이들이 요구하는 사랑의 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린 미성년자 때 받은 이 사랑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 살 내음을 찾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살결을 맞닿으며 살아간다. 현실의 사람은 AI처럼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투닥거리고 짜증도 내고, 감정이 상해 울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것은 AI가 구현해 낼 수 없는 숨결, 살결, 인간의 온도다.
우리는 AI와 더불어 살아가되,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 마지막 보루는 언제나 인간의 감각이며, 그것을 회복시키는 통로가 예술과 인문학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정신의 힘을 기르고, 존재의 뿌리를 단단히 한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인간은 효율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감각을 끝까지 붙들고, 그 감각을 가꾸어가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