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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검사하러 캄보디아에 갑니다.

[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D-5

by 이건

2016년 우연한 계기로 도핑검사관이 되었다. 도핑검사관은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소속으로 국가대표를 비롯해 프로 등 정식 선수로 등록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핑검사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90여 명 정도가 프리랜서 형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다른 본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포츠에 애정이 깊은 사람들로 깨끗하고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은 도핑 스캔들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핑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와 메달의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해프닝도 종종 뉴스에 등장한다. '스포츠 경찰'이라고 불리는 도핑검사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검사관이 되고 지난 7년 동안 크고 작은 경기에서 임무를 수행했지만 그중에서도 도쿄 하계올림픽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경험은 매우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난해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31회 동남아시아 경기대회'에 참가해 베트남 도핑검사관들과 함께 협업을 했던 영예도 누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28년 차 주한 미 공군 소속의 소방관이자 도핑검사관이라고 말하곤 한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아,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도 확장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인데, 자원봉사를 하면서 접하게 되었던 도핑검사라는 분야가 지금은 내 역할과 삶의 영역을 상당 부분 넓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참가했던 하노이 대회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캄보디아에서 활약할 도핑검사관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서를 내밀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서투르지만 헤어질 때의 아쉬움은 눈물로 바뀌고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틈만 나면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특별한 경험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해외 파견 검사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만 보면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손가락은 이미 컴퓨터 자판에서 지원서의 빈칸들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경기대회(Southeast Asian Games).'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 대회는 11개국의 동남아시아 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고 또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든 대회다. 1959년 방콕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후로 벌써 64년이라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대회는 5월 5일부터 17일까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라오스, 미얀마, 브루나이, 동티모르 등 모두 11개국에서 37개 종목에 참여하며 선수와 관계자들의 숫자만 해도 만여 명에 이르는 큰 대회다. 동남아 인구만 해도 6억 8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전 세계 인구의 10퍼센트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스포츠 축제이기도 하다.


선수와 관계자가 엄격하게 구분되고 지나치리만큼 진지한 올림픽과는 달리 동남아시아 경기대회는 마치 회사 체육대회와 같이 정감 있고 화목한 점이 특징이다. 모두 친구 같은 분위기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니 절망이나 좌절보다는 함께 웃고 떠드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당보다는 도전과 열정, 환호라는 긍정의 세례를 받는 경험은 마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때의 감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나 보게 될 캄보디아.

일로 파견되는 출장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속 두 갈래 길 안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출장이 도핑검사관으로서의 또 다른 도약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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