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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온 이메일

[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D-3

by 이건

드디어 기다리던 이메일이 도착했다. 5일 개막식까지 불과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어제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메일에는 숙소와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통수단은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와 같은 필요한 정보들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두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까닭에 일부 어색한 표현도 적혀 있고 오탈자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고생하며 준비한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만여 명의 선수와 관계자가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는 대략 20여 명의 외국 도핑검사관들이 함께 참여해 업무를 지원할 예정이다.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서 대표로 선발된 검사관들이 이번 대회의 도핑관리 업무를 전방에서 지원하게 된다.


아마도 현지에 도착하면 하루 정도는 전체 회의가 있을 것이고 모두가 기다리던 근무지와 근무 스케줄이 배포될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서 치러지게 될 37개의 종목 중에서 어느 종목에 배정되느냐는 검사관에게는 업무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종목이 이 업계에서는 3D로 꼽히는데 일단 두 종목 모두 세부종목이 많고 걸려있는 메달의 숫자도 많다.


육상만 해도 남, 녀 100, 200, 400, 800, 1500, 5000, 10000미터가 있고, 400미터 계주, 허들, 높이뛰기, 멀리뛰기, 원반 던지기, 투포환, 창던지기, 남자 10종 경기, 여자 7종 경기, 경보 그리고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까지 메달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메달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핑검사 업무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 대회에서 나는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운 좋게도(^^) 육상 종목의 선임을 맡았었다. 아직 검사가 서투른 현지 검사관들과 함께 매일 20여 건의 검사를 수행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도핑검사라는 것이 그저 단순히 앉아서 도핑관리실에 오는 선수를 맞이하는 개념이 아니라 경기가 끝난 선수에게 도핑검사 대상자임을 통보하고 그 이후로는 줄곧 선수를 따라다니며 (이를 동반한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모를 돌발상황이나 도핑검사의 완전성(Integrity)을 방해하기 위한 규정위반 행위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므로 매번 긴장감과 엄격함이 요구된다.


대개는 검사대상 선수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 후에야 검사가 가능하므로 시상식과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에서 대기하다 보면 제법 긴 시간을 운동장에서 머물러야 할 수도 있으며, 혹시라도 검사대상 선수가 부상이라도 당해 병원에 후송이라도 되면 거기까지 따라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도핑검사 한 건을 온전히 마무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조직위로부터 메일을 받고 보니 이제 좀 실감이 난다. 이미 짐은 쌓아 두었고 몸과 마음도 출발에 맞춰 만들어 놓았지만 기다림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고민했었는데... 이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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