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D-1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난해 채용한 직장 후배에게 소방서 업무도 맡겨 두었고 혹시 몰라 몇 가지 주의사항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2주 동안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내 본업인 화재예방 업무의 연속성이나 업무의 질적인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뽑아 놓은 후배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참고로 그는 매우 심각한 모범생 증후군을 앓고 있다.
비행기로 5시간 5분의 거리. 그곳에 이번 여정의 목적지인 캄보디아가 있다. 2023년 기준으로 1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수도 프놈펜에는 프랑스, 미국 그리고 인도,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다양하게 담겨있다.
언제나 그렇듯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달리고 인근 마트에 가서 생수, 맥주, 라면 등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도 구입했다.
불교의 나라답게 이른 아침부터 사원 주변을 청소하느라 분주하다. 누구는 향을 피우고, 다른 사람은 명상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새장 안에 있는 새를 하늘로 풀어주는 의식도 한다.
이색적인 모습들을 뒤로하고 오전 10시에 있을 도핑검사관 전체 회의를 위해 숙소로 걸음을 옮긴다. 회의장에는 평창올림픽에서 만났던 일본 친구도 있고, 도쿄올림픽에서 함께 일했던 싱가포르 검사관의 얼굴도 보인다.
지난해 베트남에서는 제일 힘들다는 육상 종목의 선임을 맡아 정신없이 일했었는데 이번 대회 근무표를 보고 "아니? 이게 웬 꿀…"하며 티 나지 않게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맡은 스포츠는 무술종목이다. 베트남의 전통무술인 보비남(Vovinam), 인도네시아 전통무술인 펜칵실랏(Pencak Silat), 그리고 중국무술인 우슈(Wushu)다.
보비남은 주로 두 발로 공격하거나 상대의 목에 다리를 걸어서 제압하는 등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펜칵실랏은 인도네시아어로 "예술적으로 방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영적 수련, 자기 방어 등의 성격이 결합되어 있다. 우슈는 중국권법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으로 유도나 태권도처럼 현대 무술의 형태를 띤 스포츠 무술에 가깝다.
근무지 배정이 끝나고 오후에는 경기장을 방문해 도핑관리실이 잘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미흡한 것들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는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고 흘린 땀은 절대적으로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내 멋대로 만든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프놈펜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에서 일본 검사관들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내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3일간의 뜨거운 열정의 축제가 이어진다. 부디 아무런 사고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즐길 수 있는 안전한 대회가 되길 바라며 Let’s ge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