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모친과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다.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한강을 찾은 한 여자가 끼고 있던 반지를 뽑더니
잠시 망설이다 어금니를 응 등 물고는 휙-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를 보던 모친이 말했다,
“속이 다 시원하네. 그깟 반지가 뭐냐 이거야. 나 싫다고 떠난 놈이 준 징표 따위 지니고 있음 뭐하냐고.
꼭~ 보면 저런 거 못 버리고 끝까지 쟁여놓는 미련한 친구들이 있어요. 쯔쯔쯔"
기다 아니다 한마디 거들며 장단을 맞출 타이밍이었지만 오늘따라 웬일인지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속으로 나직이 읊조릴 뿐..
'..엄마 옆에.. 있.. 있는데'
그때였다,
속으로 한 말을 들은 것 마냥 모친은 고개를 휙-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뜨거운 시선을 살벌하게 느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만 있었다.
“가만 보자. 너 지금 딱 그런 애들 같은 표정이다잉?
헤어졌을 적마다, 나눠 낀 반지 안 버리고 갖고 있고 그러니 설마 너?"
가만히나 있었으면 중간이나 갔을 텐데.
엄마의 말에 뜨끔+발끈해서는 나도 모르게 빽. 받아치고야 말았다.
“헐! 미련 때문에 커플링 못 버리고 간직하고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난 말이지, 헤어지면 바로 종로 3가로 가는 고런 여자야 왜 이러셔~!"
이상하다.?
내 말을 들은 모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뭐랄까 일종의 착잡하고도 침통한 표정이랄까..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곧 입을 열었다.
“ ..잘 했다..그래. 응 그거 돈으로 바꿔서 부자 되거라.. “
하고 싶은 말을 해서 속은 시원한데
내방으로 냅다 뛰어 들어가 이불 덮고 하이킥 하고픈 마음이 드는 건 왜 인 걸까.
헤어진 직후엔. 커플링이고 뭐고 구남친과 관련된 건 죄다 갖다 버려야지!! 하며
화난 코뿔소처럼 씍- 씍- 대다가도
막상 버리려고 보면 아까운 맘이 슬그머니 차올라 반지만은 슬쩍 빼놓던,
그러면서 구남친이 헤어지자마자 종로 3가로 커플링 팔러 간다고 생각하면
그저 상상만으로도 혈압이 수직 상승하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내로남불 이중잣대 프로 모순러가 바로 나의 존재였음을 새삼 자각하며
기도 아닌 기도를 해보았다.
그러니까
모쪼록
종로 3가에서만은 마주치지 말자 우리.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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