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나를 낳은 건 흙이나 학교가 아니었다
떠나가라 떠나가라 소리치며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달,
그녀의 깊은 주름살을 오늘은 어머니라 부른다
맨드라미 같은 붉은 벼슬의꿈과
날마다 알을 낳는 힘과
밤마다 사랑을 만드는 눈물을
그녀가 아니면 어디에서 배웠으랴
모든 생명을 온기로 품어
살아있는 대지의 체온
모든 상처를 맑게 씻어
결국은 빛나는 생명의 눈부심을
나를 낳은 달, 그녀가 아니면
어디서 보았으랴
지난 여름 매미채 하나씩 들고
도회로 떠난 아이들은
고향에 쉬이 돌아올 수 없는
거인이 되었다지만
그래서 기쁘고 쓸쓸한
나를 낳은 달
가을 창가에 홀로 핀 꽃처럼
환환 웃음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정희(1947-) 는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다산의 처녀' 등이 있다.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 시극집 '도미', 미국 뉴욕에서 영역 시집 'Wind flower', 'Woman on the terrace' 가 출판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올해의 시인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상 등을 수상했다.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