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웃는다

소에게나 바람

by 포포

#1

소는 어떻게 웃을까? → 우하하.

소가 한 마리면? → 소원.

소가 두 마리면? → 투우.

여러 마리면? → 소스.

소가 죽으면? → 다이소.

이런 식의 아재 개그가 연말연시에 유난히 많이 날아왔다. 웃겼소? 재밌소? 그렇소. 그만하소…


#2

2020년 기준 전 세계 소 사육두수는 10억 마리 정도다. 세계 인구 45억 명과 비교하면 그 수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다. 참고로 닭은 520억 마리(사람의 열 배 이상), 오리는 25억 마리(사람의 절반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소가 많은 나라 순위는 인도(3억 마리), 브라질(2.4억 마리)이 선두권이고 그 뒤를 미국, 중국, 아르헨티나가 잇는다. 대체로 인구 수와 비례하는 듯하면서 배경에는 문화적 변수들이 숨어 있다.


인도는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감히 소를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소 입장에서는 가장 조국을 잘 만나, 나라 복이 있는 셈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의 소들은 정반대다. 그곳 사람들이 워낙 소고기를 좋아해서 소를 많이 기르는 것이다. 조국을 잘못 만난 소들이다.


#3

소 입장에서 계속 이야기하면, 힘에서 코끼리에 뒤지지 않고 아이큐와 감정 지수에서도 고등 동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최선을 다하고(??) 가는 동물, 소.


실제로 나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과거의 방식으로) 도축되는 소를 본 적이 있다. 도축장은 (그때는 도살장이라 불렸다. 살벌한 이름이었다) 마을 외곽에 덜렁 떨어져 있었는데, 약 30미터 전방에서 기를 쓰고 버티던 소의 눈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소는 모든 것을 알고 있구나. 소에게도 눈물이 있구나. (그렇게 힘이 센 소는 왜 죽으러 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인간에게 대들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소라면, 어차피 죽음이 코앞이니 확 들이받고 자유를 찾아 줄행랑 쳤을 텐데).


#4

사람뿐이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서도 조국은 중요하다. 그들도 나라를 잘 만나야 (얼마를 살든) 삶이 구질구질하지 않을 수 있다. 터키에 사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그것을 절감한 적이 있다. 터키는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지중해 날씨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모든 고양이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다. 터키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평화로운 고양이들을 보면서 한국의 길냥이들이 떠올라 하마터면 울 뻔했다. 동물에게도 조국이 중요한데, 선택권이 없으니 어이할꼬.


#5

한국의 소에 대해서 정밀 탐구했다는 일본의 (일제강점기 시절에 분석해 놓은) 기록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의 것이라면 모든 것을 박하게 분석하던 그들도 소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이런 식의 내용을 남겨 놓았다.


‘머리가 좋고 성실하고 평생 주인을 위해 헌신한다. 나이 들어 일할 능력이 떨어지면 도축되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일본의 와규(화우)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한우를 능가할 수 없는 근거 중 하나다. 한우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머리 좋고 성실한 소의 입장에서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우란 이름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의미 있게 여겨지기를… 소띠 해라고 소에게 너무 무리한 걸 바라는 걸까. 사람에게 무망한 바람을 소에게나 얹는 건 아닐까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시름 많은 새해에 소에게나 기대 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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