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야생으로 자랄 수 없는 이유
옥수수 시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택배가 왔다. 10년은 족히 넘는 기간 매년 이맘때 도착하는 옥수수다. 아내와 함께 껍질을 벗겨내는 한밤중 작업을 했다. 세상의 껍데기 중에 가장 벗기기 쉬운 게 옥수수다. 택배 박스 안에는 늘 손으로 쓴 편지가 들어 있고, 거기에는 옥수수와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편지 뒷면에는 옥수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작은 지침도 곁들여 있다. 한밤중 작업을 하는 이유는 이 지침 때문이다.
‘받자마자, 옥수수 껍질을 다 벗기지 마시고 한두 겹 남기고 옥수수 수염도 깨끗이 씻어 넣어서 함께 삶으세요.’
편지의 지침 대로 ‘받자마자’ 시작했고, 알갱이를 감싼 마지막 한두 겹(일종의 속옷)은 남기며 옥수수 수염을 씻어넣어 삶는 작업까지 마치니 자정이 넘었다. 집안에 옥수수 향기가 그윽하게 배어 어쩐지 꿈속에 옥수수
가 나올 것만 같았다. 자신을 옥수수로 믿는 남자 이야기도 떠올랐다. 자신이 옥수수이기 때문에 닭들에게 자꾸 쫓긴다는 남자 이야기는 김영하의 소설 <옥수수와 나>의 도입부에 나온다. 잠들기 전 옥수수 냄새를 음미하며 그 장면을 읽었다.
자신이 스스로 옥수수라고 철석같이 믿는 남자가 있었다.
“닭들이 자꾸 나를 쫓아 다닙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아시잖아요.”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이 그걸 모르잖아요.”
이렇게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완성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콩트로, 어떤 이들은 유머로, 어떤 이들은 장편소설로, 어떤 이들은 철학적 사유로 수용할 수도 있겠다. 종종 닭을 무서워하는 이들을 만나는데 (의외로 많다) 그들은 저 대화에 폭풍 공감할지도 모른다.
옥수수는 야생으로 자랄 수 없다는 내용이 손편지에 실려 있다. 오로지 사람이 수확해서 재배를 해야 하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번식하기 어려운 작물이라는 글귀를 아내에게 들려주니 대번에 이런 답이 나왔다.
“이것 좀 봐. 이렇게 겹겹이 씨알을 감싸고 있으니 어떻게 자체 번식할 수 있겠어.”
살면서 수많은 옥수수를 먹고, 수많은 옥수수밭을 봤지만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론(?)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적 곡물로 확장됐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지식백과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끝없는 개량’이 일어났다는 정보들이 쏟아졌다. 우리가 간식으로 먹는 옥수수도 그런 개량품종들 중 하나다.
마치 연애편지처럼 1년에 한 번, 사연과 함께 날아오는 옥수수는 괴산군 장연면에서 재배되는 ‘대학찰옥수수’다. 긴 키에 오로지 두 개만 달린다는...
***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기반이 된 옥수수는 유라시아의 밀과 쌀처럼 주식이자 농업의 근간이 되었다... 중앙 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신이 옥수수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위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