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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Jan 19. 2021

'엄마'로부터 도망쳐도, 괜찮아요

엄마를 미워한다. 아니 미워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미운 건지, 어쨌든 이만큼 멀리 떨어져 나와 숨을 좀 쉬고 산다.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엄마가 미웠던 때가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내 힘든 마음을 좀 알아줄까 싶어서

그러면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줄까.

그 많은 말 가운데 한 마디쯤은 미안하다고 해줄까. 미련한 기대때문에


큰 수술 이후 몸이 망가지고 마음과 멘털마저 철저하게 무너졌을 때, 엄마로 인해 내가 몸보다 마음이 다 망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사랑받고 싶어서 미운 거예요


엄마가 미운 마음으로 가득 차서 힘들어 죽겠다며 울부짖는 나에게 차분히 건네던 의사의 말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년, 2년이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그때는 미워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었나 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미움을 크게 만들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나를 눈물짓게 하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됐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전에 비하면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이제 더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마저 내려놔버렸구나. 그래서 미운 마음마저도 날아가 버렸구나.


그 감정이 사라졌다는 건 더 이상 어떤 애정도 남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이런 생각이 나는 왜 안도가 될까.


엄마가 밉다고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엄마가 미우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 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엄마가 미우면 밉다고 얘기하세요.

사과하라고, 내 이야기도 좀 들어달라고 얘기하세요.

마음이 찢어지고,
몸이 망가지는 그 순간조차도

엄마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죽을힘을 다해 엄마로부터 도망치세요.

숨이 쉬어지는 곳까지 달려가세요.


아무도 내게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 힘든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엄마 또래의 간병인에게 울며 다 털어놓았을 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엄마인데.. 딸이 참아야지.. 세상에 딸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어..


세상에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늘 절벽에 떠밀리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딸, 자녀의 삶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으면서, 겪어본 적 없으면서 감히 '그래도'라는 말을 입에 담는 사람들의 말은 과감히 흘려보내길 바란다.


스스로 참을 수 없이 아프면서도 부끄러워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을 브런치에 토해내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약한 나의 글에도 눈물짓는 가여운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일단 벗어나라고, 도망치라고, 멀리 떨어져 나오라고.


모두에게 천륜을 끊으라는 모진 말이 아니다.
일단은 '우리가 좀 살자'는 얘기다.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나와 멀리 떨어져 '엄마'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니, 엄마 나름대로의 고단한 삶도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프게 자라 온 나도 보였다.


떨어져 나와 마음이 회복되고 나면, 그 이후의 선택은 자신의 몫이 아닐까.


나는 일단 용기 내 도망쳐 나왔고, 지금 이 상태에서 더 나아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갈피는 잡지 못했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 지금은.


그저 내가 이 글을 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누군가 나에게 꼭 해줬으면 좋았을 말.

나조차도 비겁하고, 모질다고 생각했기에 차마 몸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해볼 염두도 내지 못했던 말.


부모 때문에 당신이 힘들다면, 도망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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