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를 만족시키려다 보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참 신기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탈하게 지내는 것을 굉장히 선호했다. 특별히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생활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아무리 성격 좋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려 해도 상대방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때로는 상대방이 다가오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어 편히 대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노력도 해봤다. 학교라는 아주 작은 소규모 집단의 사회에서나, 직장이라는 조금 더 커진 사회생활에서 평소 얼굴은 알고 지내며 가볍게 목례 인사를 하고 지내는 동료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다가가서 관계를 형성하려 시도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올때면 나도 모르게 '벽'을 쳐버리고 말았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너그럽지 못했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조금은 소심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평소 시원시원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남을 속이는 행위였을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사소한 트러블도 싫어서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을 하면 모든 이가 내 편이 되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유년 시절, 나는 참 밝은 아이였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어린 마음에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함께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무 팽이를 들고 친구들과 팽이치기를 하며 지냈고, 두꺼운 하드보드지로 고이 접어 딱딱하게 접은 뒤 물을 발라 말린 물딱지로 딱지 치기를 하면서 우정도 쌓았다. 때로는 컴퓨터 게임도 하며 서로 더 잘한다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어느 날, 평소와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 무리에 함께 어울려 지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만나지 않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의 행동이 묘하게 거슬렸던 날이 있었다. 그 친구가 나와 친했던 한 명의 친구와 유달리 더 잘 지내려는 모습이 보이자 그 친구와 어울리는 게 괜히 시샘이 났는지 그 관계를 맺지 못하게 괜히 훼방을 놓았다. 그 친구는 황당해하며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내 친한 친구를 빼앗기는 건 죽어도 싫었던 탓이다.
강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며 친구들과 한참을 놀 무렵 얼굴이 빨갛게 오를 대로 오른 친구가 씩씩 거리면서 숨을 가파르게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너는 왜 하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다 놀면서 왜 내가 놀려고 하는 건 방해해!? 너는 왜 다 가졌으면서 그 친구 하나도 빼앗으려고 하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말문이 탁 막혀버린 탓이다. 목구멍 위로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차마 무슨 말을 하더라도 변명인 것 같아서 말을 하질 못했다. 그 친구가 엉엉 울면서 너는 대부분의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왜 내가 가지려는 것 하나도 마저 빼앗으려고 하냐며 그러냐고 말하자 내 맘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확 부끄러워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는 늘 그랬어!"
나는 늘 그랬던 걸까. 정말 서럽게 울던 그 친구의 등을 다독여주지도 못한 찰나의 순간 그 친구는 순식간에 집에 가겠다며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맘으로는 수 십, 수 백번도 뒤를 잡아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참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정말 친하게 지냈다던 그 친구와의 기억이 없다. 왜 서로가 즐겁게 지내는 것을 훼방 놓지 못해 그렇게 미운 맘을 가지고 방해했던 걸까. 지금도 생각해보면 참 이해할 수가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은 가득하다.
참 부끄럽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눈 앞의 일처럼 선명하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인간관계를 맺을 때, 혹은 어떤 집단에서의 관계를 지내다 보면 혹시나 내가 상대방에게 과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닐지 유심히 생각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 서로 누가 누구랑 더 놀고 싶어서 부린 투정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경험은 나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독'이 되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친해질 수 있던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오히려 진심이 전달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상대방의 서슴없는 행동을 오해해 거리를 두고 좋은 친구를 잃었던 적도 많이 있었다. 분명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부담이나 혼란을 야기할 행동을 자제하다 보니 좋은 인간관계도 때론 성립되지 못하곤 했다.
특히 제일 큰 문제점은 '강박관념'이었다. 특정 집단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 우호적이고 좋은 관계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서먹서먹한 사람도 있다. 또 내가 노력했는데도 그 관계가 진전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었다. 내가 노력하는데 왜 못 친해지는 걸까.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이 사람에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던 걸까.... 등.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왜 그리 피곤한 생활을 자처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먼저 밝게 인사하면 관계가 진전되어야만 한다 생각했고, 무미건조한 관계에서도 노력은 무시될 수 없다는 지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개선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거의 30년은 걸린 것 같다.
정말 친한 친구 중 인간관계가 뭐 어렵냐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는 거지 라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참 부러웠다. 남 시선 신경 다 쓰고,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하다 보면 내 정신은 거기에다가 다 쏟아붓는 건데 어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며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정말 나와는 성격도 성향도 너무나도 반대였다. '중학교'라는 학창 시절의 집단이 없었다면 과연 친해졌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다른 친구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친구의 말이 점차 와 닿기 시작한다.
지금은, 인간관계에서 의도적으로 덜어내려는 연습을 한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덜어 버리려는 노력. 상대방이 나에게 갑작스레 차가운 태도를 보일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닐지 걱정되어 이것저것 고민할 때 끼치는 신경을 덜어내려는 노력.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도 결과물이 턱없이 부족해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내려는 노력.
그 때마다 속으로 외치는 마법 같은 주문이 있다.
'우리 세상에 9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니 걱정하지 않겠어!'
그렇게 속으로 수차례 생각하면 어느 순간 고민이 만들던 고민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한다.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 고민 답지도 못한 고민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항상 혼자 '이불 킥'을 해버리곤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어렵고 오묘한 것이지만, 반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보다 쉽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도 없다는 뜻이다.
정립되지 못한 인긴 관계는 종종 스스로를 괴롭히고 옭아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연하게 덜어내려는 연습을 해 보면 서서히 아무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평온해진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의도치 않은 편안함에서 나오는 좋은 인간관계로서 발전의 관계로 만들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