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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Oct 31. 2020

#5. 닫힌 문을 여는 일


몇 개월간의 짠내 나는 청년백수 시절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통신회사의 A/S 엔지니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담당업무는 장애가 발생한 가정을 방문하여, 인터넷 서비스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비하는 업무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밤 새 접수된 A/S건을 확인한 뒤 할당된 지역의 장애건을 모두 처리하면 

하루 업무가 끝나는 방식이었다. 
 

모르는 이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두근거리고 

불편한 일이다. 그들이 나를 환대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내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부러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이 열리면 어떤 상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게임을 하고 싶은 꼬마 아이 일수도, 주식에 손해를 본 사모님일 수도, 권위 있는 사장님일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어떤 이에게는 감사인사를 받지만 어떤 이에게는 욕받이가 된다. 

나는 그대로인데 그들의 컨디션에 따라 나는 다양한 사람이 되곤 했다. 


 다행히 나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은 나름 보람이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서툰 것들이 익숙해질 무렵. 

회사 사정으로 급여가 나오지 않았고, 그 뒤로 3개월이 넘도록 무보수로 일했었다.

어렵게 취업한 곳이라 다닐 수만 있으면 오래 다니고 싶었지만 회사는 곧 폐업을 하게 되었고, 

체불되었던 급여 중 일부인 200만 원을 손에 쥐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나는 다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처음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았다. 

그동안 몇 가지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목돈 200만 원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힘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곧바로 다음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임과도 같았다. 

다가오는 문제들을 정신없이 풀다 보면 어느새 이만큼의 성장이 보상처럼 주어지는 듯했고, 

나에게 남은 몇 가지 기술과 200만 원은 돈은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닫힌 문을 여는 일은 새로운 방에 들어서는 짜릿한 설렘도 있지만 

머지않아 굳게 닫힌 새로운 문을 만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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