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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Oct 31. 2020

#3. 슬픔은 먹는 게 아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15살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은 가족은 모두 어리고 젋었다. 


나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울지 않았다.

주변의 어른들은  “네가 상 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것은 일종의 미션 같은 것이었다.  

누나들과는 달리 나는 어머니의 시신을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보았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어머니의 알몸을 닦는 것을 보았고, 

이상한 천으로 둘둘 말아 미라처럼 만드는 것도 보았다. 

관 뚜껑을 닫았고, 첫 못을 박았으며, 첫 삽을 내가 떴다.


모든 미션을 완벽하게 해냈지만 나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슬퍼해야 했었다.

한번 더 만졌어야 했고, 불렀어야 했으며 통곡해야 했다.

나는 슬퍼할 기회를 놓쳤고, 그 댓가는 너무나 오랜 시간 혹독했다. 제때 슬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두고두고 슬픔을 담아 두어야 했고, 잠깐이라도 웃고 있으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뜬금없이 찾아오는 흔적들은 매번 나를 주저앉혔다. 

 
 슬픔은 순수하게 슬픔이었어야 했다.
 때 맞춰 슬퍼하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만큼 슬퍼해야 기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슬픔을 미루었더니 상처가 되어버렸다. 
 슬픔은 먹는 게 아니라 뱉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오랜 시간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15년을 사랑받았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좋았고, 나는 생김새부터 여린 성품까지 엄마를 꼭 빼어 닮았다.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어리광 많은 늦둥이 막내아들은 없어져야 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집에 없었다.

큰 누나는 산동네가 아닌 도시로 집을 얻어 나갔고, 

작은 누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몇 년 뒤 착한 매형을 만나 결혼을 했다. 


한동안 결혼한 작은 누나와 함께 살기는 했지만 나는 조금 이른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빠듯해 보였고, 나는 그들의 삶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선 어머니의 바람을 하나씩 이루어 보고 싶었다. 

두들겨 맞지 않기, 교회 열심히 다니기, 대학교 입학하기. 

사춘기 소년이었지만 나는 곁길로 빠지지 않았고,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두들겨 맞는 일은 없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녀 학생회장, 청년회장을 할 만큼 잘 적응했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그토록 바라시던 

(전문) 대학 진학도 무사히 마쳤다.

나중일이지만 직장을 다니며 편입했고, 4년제 대학 졸업장까지 받고 나니 어머니의 바람을 

모두 이룬 것 같아 뿌듯해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틈이 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되도록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군입대도 미루지 않고 서둘러 다녀왔더니 친구들보다 이른 24살부터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 신분으로 어머니가 바라왔던 모든 것을 이루었다 생각하니 가슴에 남았던 슬픔도 죄책감도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하나는 빨리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기울어진 집안의 경제를 살리겠노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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