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DEN Oct 31. 2020

#8. 찾아오는 기회들


교육이 끝나고 한 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다.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은 담배냄새가 찌들어 있었고, 
벽을 뚫어 환풍기를 달아 담배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흉측한 모습의 사무실이었다. 

 
 "면접 보러 왔습니다"란 말로 등장을 알리자 구석 다락방 같은 곳에서  

며칠이나 회사에 머물렀는지 모를 떡진 머리의 아저씨가 슬리퍼를 신고 내게로 다가왔다. 


 단잠을 깨운 면접생이 귀찮은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충 의자를 가리켰고, 

나는 손에 든 가방을 다소곳이 내려놓고, 아저씨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종이컵에 냉수 한잔을 거칠게 내밀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학원에서 배운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듯했다. 

물어오는 질문에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에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답하되, 

공손한 자세로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했다. 


면접을 보던 인상의 아저씨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 새끼 싸가지는 있네"라는 말로 합격 통보를 대신했다.

취업을 위해 준비했던 시간이 허무하리 만큼의 짧은 면접이었고, 

황당하기만 한 합격통보였지만 가난한 백수보다야 스스로 밥값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삶이라고 믿었기에 고민할 이유 없이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었다. 


분명 면접 중에 나온 질문들은 학원에서 배운 것들과는 달랐고, 

나는 그것에 충분한 답을 하지 못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만약 전공분야를 전향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만약 얄팍한 그 교육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들은 시작했다는 이 유로만으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들이 얻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매번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확률이 높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내가 독학으로 첫 그림을 그리고 4개월쯤 지났을 때일이다. 

나는 여전히 작고 서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기록을 목적으로 블로그를 개설해 볼품없는 

그림들을 올리고 있을 때였으니 방문자 또한 많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하여 근무 중이었는데
 모르는 발신자의 번호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는 그림으로 그려주신 야채음료기업 마케팅팀 OOO입니다.”
 “작가님의 그림을 사용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처음에는 스팸전화라 생각했지만 얼마 전 야채음료를 그렸던 것과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고 공손하게 제안에 응했고, 해당 기업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삽화 형태로 

사용될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고서 전화를 끊었다. 

 
 큰 기업에서 초라한 아마추어의 그림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누군가에게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꽤 짜릿하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집으로 작은 소포 박스가 하나가 도착되었다. 

해당 기업에서 만든 영양제 한 통이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고, 
나는 내 그림에 값이 매겨진 첫 번째 기회를 선물 받았었다. 
 

내가 하는 서툰 일들은 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어쩌면 겸손이 아니라 오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려진 그림이 부끄러워 스케치북에만 가두어 두었다면
 “작가님”이라는 짜릿한 호칭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이 소개되는 즐거운 경험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이 일이 있은 뒤로 그림에 자신감이 조금 생겼고, 얼마간은 

각종 통조림, 햄, 치즈, 햇반, 김 등 먹는 것들 위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시작이 주는 기회는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고, 

지속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전 07화 #7. 태도가 만족을 만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