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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Oct 31. 2020

#10. 익숙함에 끌려가는 삶

나는 그림 수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은 서로에게 닿아 배움이 되고 영감이 된다. 


주부로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부모로 자식으로 환자로 돌싱으로.. 

모두가 서너 가지 이상의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고되고, 힘겹다. 

그러나 모두들 나름의 방법을 찾아 지혜롭게 괜찮아지는 중이다. 


나 또한 그렇다. 


기획자로 전향한 나의 직장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다. 

맡아 진행하던 프로젝트들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이전보다 좋은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나 갓 서른을 넘었을 때도 

여전히 좋은 대우를 받았고, 그 사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작은 아파트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남자 나이 서른에 이 정도면 꽤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성과라고 생각할 무렵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맑은 날이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고 했던가.

서른이 조금 지난 어떤 시점부터 약간의 우울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애써 모른 척하는 사이 그것들은 내 안의 어딘가 깊게 자리 잡아 버린 듯했다.

그것들은 서른의 중반이 되기까지 내 일상과 일을 조금씩 망치고 있었는데 

나는 더 이상 모른 척 두고 볼 수 없어 이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 후 여러 날을 고민했다. 그러나 원인은 간단했다.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것.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싫은 것은 싫은 대로 더 좋아 지려고도하지 않았고, 

싫은 것을 싫어하지 않도록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역할만 하면서 정해진 보상만 받으며

그것을 안정이라 믿었다는 것. 


가끔은 역할을 벗고 나로서 살았어야 했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리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그림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은 선만을 고집하면 깔끔한 그림은 될 수 있지만 자연스러움을 얻을 수 없다. 

그림에 자연스러움을 더하려면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안정감이 있는 삶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것을 벗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은 때론 길을 잃어 멀리 돌아가게 하기도 하지만 

지름길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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