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DEN Oct 31. 2020

#11. 우울감은 가을처럼

내 슬픔은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방향을 잃었다. 

참 잘해왔다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의심도 들었다. 


불만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노트들을 보고 또 보기도 하고, 

그 모습이 한심해 다시 또 멍하니 하늘만 보다 설움에 복받쳐 울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나에게 책임과 의무들을 강요했던 사람들이 미치도록 

미워서 원망하고 화를 냈고, 어떤 날은 주저앉아 자책하며 괴로웠다. 


이전 같지 않은 내 모습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따뜻한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차갑게 거절했다.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그들에게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었고, 

그들의 위로가 내게는 닿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유난스럽게 되어버린 나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볼까도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무엇을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몰라 이내 포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며 족히 몇 년 동안을 보냈다.

그 사이 주변의 것들이 망가지거나 사라졌다. 

일에 대한 흥미도, 사람도, 관계도 그랬다. 


내게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했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더 알았어야 했다. 

이루어야 할 목표와 역할만 남은 나의 삶을 나는 진작에 정비했어야 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무거운 짐보따리 하나씩은 지고 산다고 한다.

나의 힘듬이 “짐의 무게”때문인지 짐을 지고 가는 나 자신 때문인지 

구분하고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저 걸으려고만 했으니 탈이 날만도 하다 싶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했다.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카페로 들어섰다. 

그날도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마음이 심란하던 참이었다. 

요란스러운 마음을 좀 다스려 볼까 싶어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서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서 

업무용 노트를 꺼내 이런저런 글들을 쓰거나 의미 없는 낙서를 하게 되었는데 한참 뒤 

필통에서 흘러나온 지우개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림은 학장 시절부터도 관심 밖의 일이었고, 성인이 된 후로도 어떤 교육이나 경험도 

없었던 일이어서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래기도 했다. 

한참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고, 

그 사이 마음속 시끄러웠던 감정들도 안정을 찾아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내게는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었던 것 같았다. 

직장생활은 너무 만족했지만 일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취미생활이 없던 내게 그림은 

좋은 놀잇감이 되어 줄 거란 믿음이 생겼고, 그 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 들러 작은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게 복잡한 무언가를 정리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때론 나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거나 마음속에 담아 놓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했다. 

만약 누군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나를 탐구하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 같다. 


내게는 서툴렀던 그림이지만 그림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안에 담겨있는 나와 내 시간들이 더 중요했을 뿐이다.

이전 10화 #10. 익숙함에 끌려가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