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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Oct 31. 2020

#13. 쓰고 그리는 재미라는 게


직장을 다니면서 쓰고, 그린 지 6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무겁기만 했던 나의 마음은 이전보다는 훨씬 좋아진 듯했다. 
 

업무차 제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어 가볍게 짐을 챙기던 중에 

책상 위에 놓인 스케치북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설레는 감정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제주에서 그림을 그려본다는 것은 희미한 로망 같은 것이었는데

어쩌면 이번 출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렸다. 


아껴두었던 그림도구들을 모두 챙겨 짐보따리에 넣고서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쉽게 잠이 오지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그림을 

그리던데 내가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멋진 예술가가 된 것 같아 기분 좋았다.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이라는 게 꼭 그림 자체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을 통해 상상하고, 설레고, 경험하게 되는 모든 낯선 것들이 주는 기분 좋은 감정들도 

그림이 주는 기쁨이자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고, 주문하고, 기다리고 사용해보는 것.

카페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꺼내놓고 커피를 마시며 한 껏 기분을 내보는 것. 

여행길에 앞서 그림도구를 챙기며 낭만적인 상상을 해보는 것. 

그런 기록들을 SNS에 수줍게 공유하는 재미 등.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빡빡한 삶의 

공간을 비워 여유와 낭만을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에 

쓰고, 그리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과적으로 출장 중 어디에서도 그림 한 점 그리지 못했다. 

그러나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제주에서 찾았던 예쁜 카페에서도 스케치북과 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이전 12화 #12. 나에게 호기심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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