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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EN Oct 31. 2020

#9. 반복의 힘

입사한 회사는 주로 여행사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였는데 나는 이곳에서 

여행업에 대해 배우고 개발 실무를 빠르게 익혀갔다. 


업무가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고객의 여행사로 사무실을 옮겼고,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되었는데 나는 어떤 실수도 하고 싶지 

않았고, 주어진 미션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은 미션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오랜만에 맛보는 소소한 성취감은 나를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다. 


능력이 부족하면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임무를 완수하기를 바랐고, 

그 바람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조금씩 이루어 나갔다. 


맘처럼 잘 되지 않은 일이 있다면 될 때까지 반복했다. 

반복은 결국은 이루어내게 하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것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빠른 적응력을 보였고, 

조직이 필요로 하는 성실한 일꾼이 되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엔지니어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업무를 전향하게 되었다. 

기획자 이전의 내 업무에는 직원들의 발밑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고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큰 불평을 하지 않았었다. 

그 일은 양복을 더럽혔고, 땀에 젖은 몸에서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게 했지만 무엇보다 동료들과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게 해 주었고, 궁금한 그들의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게 해주곤 했었다. 


그것은 결국 내가 기획자로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서비스 기획이라는 업무는 고객과 기업의 서비스를 유연하게 연결해주는 어떤 지점의 일이었기 때문에 

고객과 직원과 서비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기획안이 나온다고 믿었다. 


고객과 서비스를 잊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기획자로 불리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문제를 반복하는 단순한 행위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그것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지루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답이 아닌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 극동지방에는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다고 한다. 

모소 대나무는 씨를 뿌린 뒤 4년간은 뿌리만 내리지만 

5년 이후부터는 하루에 30cm 이상 급격하게 자라 빠르게 숲을 이룬다고 하는데 

기획자로 업무가 바뀌었을 때 나는 마치 5년이 지나 빠르게 성장하는 모소 대나무가 된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인정과 위로가 아니었을까. 

반복하는 힘은 스스로를 인정하게 하고, 위로해주는 성숙한 힘이 되어 주었는데  

그것은 “성과나 결과”가 아닌 “반복하는 과정”을 잘 이겨낸 자신에 대한 기특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반복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일을 하려는 “이유와 재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와 “작은 성취들”로부터 비롯된다. 


잘하는 일은 오히려 반복하기가 어렵다. 

그런 것으로 보아 반복하는 힘은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오는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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