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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Feb 26. 2024

자마미 섬에서 만난 산타1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아빠는 여장을 풀자마자 커다란 한국김 3 봉지를 챙기더니 코미네상에게 건넸다.

“프레젠또대스”

멘트까지 준비해서 선물이라고 이야기하자 코미네상은 무척이나 기뻐하며 연신 고맙다고, 한국김은 처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가자 주인아저씨는 후루자마미비치로 간다면 본인이 데려다주겠다고 선뜻 제안하셨다.

“실컷 놀다가 올 때 다시 전화해요.”

한국 김의 효과인가! 자마미 도착 첫날부터 예감이 좋았다.

     

여행하는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라고 한다면 엄마, 아빠 모두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아주 적극적인 유목민으로 추정되며 이런 두 사람의 여행 유전자를 2배로 물려받은 우리 자매는 호모 비아토르! 비아토르!! 즈음될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오래전 기억 속에서부터 우리 가족은 늘 여행 중이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 여권도 발급받은 경험이 없었다. 딸 둘 해외여행 경비를 보태주고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당신들은 정작 비행기 한 번 구경해보지 못한 것이다.


“엄마,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들어가야 되는 거 알지?”
“얘가 엄마 놀리니.”

불행히도 엄마는 비행기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마친 후였다.     



어쩌면 온 가족이 다 같이 떠나는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 - 시작부터 마지막 이야기를 하긴 좀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경제적 여건이 안 될 수도 있고, 바쁘디 바쁜 현대인이라 서로 언제 시간이 맞을지 알 수 없으니 – 모든 게 완벽해야 하며 혼자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과 달리 4명 모두 만족할만한 여행지를 선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일정으로 가득해야 했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어?”
“유럽은 조금 비싸지 않을까? 이번 휴가 기간이 짧기도 하고.”
“그럼 동남아로 갈까?”

'5박 6일 안에 갈 수 있는 나라를 골라야 하는데.... 태국, 베트남, 대만 흠... 따뜻하면서 바다가 있고 스노클링 같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아, 섬으로 갈까?'


문득 일본 야쿠시마에 생각이 미쳤다. 몇 해 전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는 이름조차 생소한 야쿠시마로 4박 5일 덜컥 혼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일본에는 유명하지 않지만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비슷한 섬이 아주 많다고 했었다. 온화한 기후의 오키나와 근처로 일본의 작은 섬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슐랭에 소개된 아름다운 바다’ 후루자마미비치를 발견했다. 미슐랭의 바다를 품고 있는 자마미섬은 인구 100여 명 정도가 거주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자연환경만 놓고 봤을 때 아시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데 어느 날 목적지를 모른 채 섬에 떨어진다면  아프리카 어딘가에 숨어있는 조용한 휴양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담당했다면 엄마, 아빠는 하드웨어를 담당했다.

“이게 다 뭐야?”
“스노클링 해야지.”

구명조끼 4개, 스노클링 4개, 슬리퍼, 수영복까지 베란다에는 여름휴가용 짐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만큼 엄마, 아빠의 기대감도 커져갔다.


자마미섬은 일본 본섬 중 가장 남단에 있는 오키나와에서도 페리를 타고 2시간 정도 들어가야 하는 터라 오키나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고속페리로 입도했고 미리 예약해 둔 친절한 코미네 부부가 운영하는 여관에 짐을 풀자마자 아빠가 야심 차게 준비한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들고 후루자마미비치로 향했다.  

한가로운 분위기, 에메랄드빛 바다, 고운 모래사장, 오키나와 사람들 특유의 진한 쌍꺼풀과 각진 턱, 훈훈한 바람과 버석한 햇살이 탁월한 여행지 선정을 칭찬하는 듯했다.

 '너희 이번 여름 휴가지 한 번 잘 선택했구나!'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스노클링 장비를 늘어놓으며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저수지에서 머리를 감다가 고꾸라져서 죽을 뻔했다는 엄마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바닷가로 가족 여행을 가도 근처에서 발만 담글 뿐 언제나 멀리 떨어진 해변가의 파라솔에서 우릴 지켜보곤 했다. 큰돈 들여 해외에 나왔으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주 큰 결심이 필요했을 텐데 엄마는 자마미에서 구명조끼에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입고 우리보다 더 오래 아름다운 후루자마미비치의 산호와 물고기를 구경했다.

"엄마 이제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처음 보는 바닷속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을 때 느꼈던 경이와 동경을 부모님의 표정에서 발견했다.



섬에 머무는 3일 동안 우린 원 없이 헤엄치고, 모래사장에서 찜질하고, 먹고, 산에 오르고, 또 먹었다. 우리 가족은 자마미에서 단 한 차례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마치 '자마미에서 짜증내면 벌금내기' 규정이 있어 손해보지 않기 위해 아주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것처럼 매 시간 평화롭고 충만했다.

“우리 천국에 다녀온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자마미 섬의 추억은 더욱 짙어졌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는지 '언젠가 다시 가자'라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특히 아빠가 종종 자마미의 추억을 꺼낸다.     

"다시 가도 난 산타에서 밥 먹을 거야."


낯선 여행지에서 섭취하는 행위에 관한 일화를 자주 꺼내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의한 지극히 합리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낯선 여행지에서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편승하여 평소에 체면을 차리며 애써 좋아하지 않은 척했을 수도 있는 음식과 생김새 문에 꺼리던 식재료에 끌리기도 한다. 살갗으로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기후, 낯선 언어와 사람들의 생김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재료와 향신료를 만나면 코앞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본 황소처럼 모험가 정신이 발동하여 과감하게 입안으로 낯선 음식을 밀어 넣는다. 황홀한 맛이거나 때론 입맛에 맞지 않을 터지만 결과야 어떻든 대게 특별한 경험으로 치부하곤 웃어버린다.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이탈리아 가서 먹은 게가 퍼랬다니까?”     


한집에 살아도 하루 한 끼 같이 먹기 힘든 세상인데 함께하는 가족 여행에선 삼시 세끼를 한상에 둘러앉아 먹는다. 게다가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오로지 4명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며 비슷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하면 결속력이 강해진다.

“이거 먹을까?”
“이게 뭔데?”
“몰라.”
“그래 그냥 시켜 봐.”     

이해할 수 없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지체해도 서로 나무라지 않으며 4명이라 궁금한 메뉴를 골고루 주문할 수도 있다. 음식이 맛있다면 행복이 2배가 되고, 맛없더라도 도파민이 분출될 것이다.

“이번에 우리 가족 여행 갔는데 거기서 밥에 과자를 뿌려먹더라니까?”     

테이블에 놓인 오키나와의 명물 타코라이스를 보고 이게 정녕 이웃나라 옆나라의 음식이 맞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밥 위에 살사소스와 고수 그리고 바삭한 타코를 잘게 부수어서 얹어 놓은 모양새를 보고 우리가 아는 '밥'과 달라 당황스러웠지만 아빠가 먼저 용감하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걸 보고 따라먹은 온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맛있잖아.”


역시, 음식은 기억의 매개체다. 나는 자마미섬에서 3일 동안 먹은 아침, 점심, 저녁을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스노클링을 하지 않았던 오후에 어디서 뭘 먹고 어디로 등산을 갔었는지, 함께 둘러앉아 공유한 음식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여행의 기억은 맛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가장 큰 기여자인 '산타'를 빼놓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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