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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Mar 13. 2024

"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였어요?

<밤 비행이 좋아>

정신없는 한 주였다.


'일주일 동안 하루 끼니를 매번 챙겨 먹었던가, 도대체 몇 km를 운전했던 거지, 약속이 몇 개였더라'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인데 모든 일이 희미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말 그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끝나버린 7일이었다. 모든 일은 메일 한 통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님 <사람과 책>이라는 라디오에서 섭외 연락이 왔어요.”     

내 첫 에세이 <밤 비행이 좋아>를 소개하고 싶다는 정중한 메일을 전해받고 가슴이 뛰었다. ‘내게도 방송 제안이 들어오다니. 이렇게 유명해지는 건가’ 건방진 상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겠지만 문제는 방송국이 너무 멀리 아니, 내가 방송국에서 너무 멀리 사는 게 문제였다. 처음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다.  

“녹음 전에 쓰러져 너.”

엄마의 진지한 충고를 받아 거리를 꼼꼼하게 계산하고 보니 아무래도 차를 끌고 가는 게 유일한 길이었다. 운전면허 따고 처음으로 서울을 지나 인천까지 가게 생겼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시골길에서 단련했어도 바쁘디 바쁜 도시 사람들 틈에서 끼어들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던 여느 날 상하수도 검침원에게 전화가 왔다.


"물을 안 쓰는데 계량기가 돌아가네요. 검사해보셔야 해요."

화장실에서 물이 새고 있단다.

"화장실 다 뜯어내야 합니다. 타일 새로 해야 하니까 며칠 못 쓰시고요, 여기 여기 다 치우셔야 하고요."

졸지에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월요일, 아침 일찍 공사 담당 사장님이 들이닥쳤다. 겨우 마무리되었던 청소와 인테리어가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랄까? 2층 방에 틀어박혀 화장실이 뒤집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일하다가 결국 이른 모텔행을 택했다. 짐가방을 챙겨 내려왔을 땐 이미 거실 한 쪽에 변기와 세면대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요일, 비가 왔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분명 화요일 오후엔 마무리된다고 했었는데 '약속과 다르잖아요!'는 어차피 통하지 않으니 다시 바깥 신세를 져야 했다.


수요일, 드디어 변기와 세면대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근데 왜 물 내릴 때 우리 타일로 쏟아져?”

일반적인 길이 직선이라면 내 앞에 놓인 길은 갈지(之) 자인 게 틀림없다.          


목요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아직 변기는 바닥으로 물을 뱉어냈고 집은 엉망이었다. 아침 7시부터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운전은 수월했고 약속 시간보다 빨리 방송국에 도착해 인터뷰지가 들어있는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다가 거울을 꺼내 립스틱이 번졌는지 체크했다가 부산스럽게 긴장한 마음을 애써 감췄다.


라디오 녹화는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마이크를 대고 이런저런 나의 책과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니! 사전 녹음으로 진행되었지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제멋대로 널뛰는 심장을 붙잡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가장 아름다웠던 여행지는 어디였나요?"

진행자가 물었다. 서른 개가 넘는 질문 중 하나였지만 가장 깊이 고민하고 답한 질문이었다.

“밤의 에펠탑이요.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은 제게 남다른 의미였어요. '내 꿈이 이뤄졌구나.' 믿음이자 용기였거든요. 게다가 매 정시에 반짝거리는 에펠탑은 마치 저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내게 에펠탑이 하나의 상징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내 첫 여행기를 다시 읽어보며 주어진 질문을 받으며 기억의 서랍을 뒤져보게 되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게 가장 강렬한 기억을 안겨준,
지금까지도 뇌리 깊숙이 박혀 있는 여행지는 어디지?’     



나는 극도의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다. 지금이야 철이 들면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주변에 베푸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손해 보는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관심도 없는 옷이나 화장품을 놓고 고민하는 동행을 기다릴 필요도, 버스와 택시를 놓고 고민하다가 시간을 날릴 일도 없었으니 개인주의 성향의 여행 중독자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아직 학생 신분이던 시절 국제 학생 포럼 겸 여행을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2주 정도 머문 적이 있다. 반둥에서 시작한 포럼은 족자카르타를 거쳐 반둥에서 끝이 났고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아쉬운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다시 볼일이 있을까?' 우리 모두 알았다. 이게 마지막이란 걸. 그때 나는 일본인 친구와 마치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소꿉친구인양 아주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비행기 일정으로 먼저 떠나는 헤어짐의 순간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이 번져 온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울었다.



혼자 남아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가 마침내 나 또한 이 아름다운 나라를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가기 전 마지막 일정을 누군가와 함께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치솟았다. 반둥에 살던 인도네시아인 친구 N에게 연락하여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침 바닷가 여행을 계획 중이던 독일인 J와 연락이 닿았다.

“너희도 같이 갈래?”     


그때 나는 평소라면 절대 내리지 않을 결정을 내렸다. 하늘은 지나치게 우중충했고, 나는 24시간 안에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교통체증이 일상인 이 나라에서 공항까지 2시간이 걸릴지, 5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바닷가를 간다 해도 구경만 하고 돌아올 비효율적인 여정에 나섰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가벼운 결정을 내리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J와 함께 바다 여행 가자!”     


다시 만난 J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을 일주일 뿐이지만 우린 연대와 공통의 추억으로 강하게 묶여 있었다.

"끼익"


출발부터 불안한 느낌에 기우라 스스로 달래며 대화에 집중했지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엔진은 마지막 포효를 끝으로 장렬히 사망했다. 운전기사는 영어를 못했다. 나는 N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 대.”
“언제 오는데?”
“곧이라는데? 피곤할 테니까 좀 자.”

N은 이 말을 끝으로 좌석에 기대 곤히 잠에 빠졌다. J는 진작에 곯아떨어졌고. 나는 핸드폰을 쥐었다 놨다 반복했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자마자 기내에서 받은 외교부와 영사관의 안내 문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위험한 순간... 영사관으로 연락하세요.’ 

    

천천히 해가 떨어졌고 불빛 한 점 없는 고속도로에서 간혹 쌩쌩 지나가는 폭주족 소리에 온갖 감각이 바짝 곤두섰다. 어쩌면 짜증을 내고 낙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버스가 오지 않는 건지, 경찰이나 소방 구조대가 출동하지 않는 건지, 다들 평온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40명이 넘는 사람 중 나는 유일하게 깨어 있는 사람이었고 내 불안과 짜증을 받아줄 이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온몸의 긴장을 최대한 풀고 늘어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잔뜩 날이 선 감각조차 쓸데없는 낭비일 뿐이었다. 우리를 구출하러 온 새 버스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버스가 유독 낡았었다. 새 버스는 고급 가죽 시트에 좌석 간 거리도 넓어 아주 안락한 호텔방이나 다름없었다. 우린 10시간 만에 구출되었다.      


비몽사몽간에 도착한 바닷가 마을에는 추적추적 새벽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짧은 반바지에 반팔을 걸친 외국인에게 가혹할 정도로 형편없는 날씨가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 인도네시아도 이렇게 추울 수 있단다."


맨다리를 타고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가방에서 아끼던 담요를 꺼내 N과 둘이 꼭 붙들어야 했다. J가 인력거 두대를 잡았고 천천히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에 몸을 맡겨버렸다. 푸른 새벽을 뚫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중충한 하늘이지만 어쩐지 명암이 달라졌다.

 

J의 숙소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아니,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 10시간 전에 도착했어야 할 예약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니 문이 잠겨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셋 다 주저하다가 추위에 못 이겨 문을 쿵쿵 두드렸고 이제 막 일어났는지 아니면 자다가 나왔는지 부스스하지만 사려 깊은 숙소 주인은 우리의 몰골을 보고는 깜짝 놀랐고 '버스가 고장 나서 늦었어요. 미안해요.' 거듭 사과하는 우리에게 아침을 주문할 수 있다고 친절을 베풀었고 핫케이크와 식빵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했다.

“나 1시간 안에 떠나야 해. 안 그러면 비행기를 놓칠 거야.”
“아쉬운데 바다는 보고 가자.”     


우중충한 하늘 아래 잿빛 바다가 파도를 뱉어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날씨 탓에 사진을 보면 셋 다 입술이 퍼랗다. 회색빛 바다는 거친 파도를 끊임없이 밀어 보냈고 해안가 근처만 서성이다가 둥그렇게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저편에서 누군가 날리다가 버리고 간 연이 보였다.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잿빛 하늘, 포효하는 바다, 서걱거리는 젖은 모래사장과 찢어진 연. 아주 똑똑히 기억난다. 바다를 보고 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반둥으로 돌아왔다. 12시간이나 걸렸던 바닷가 여행은 2시간 만에 끝이 났고 한국행 비행기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반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바로 짐을 챙기고 N이 연계해 준 오토바이를 타고 자카르타 공항으로 날아갔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가죽 재킷 차림의 기사님 뒤에 매달려 고속도로를 내달린 게 내 생의 첫 오토바이였다.


입국할 때 받은 비자의 한쪽을 잃어버렸고 (티켓 형태의 종이 쪼가리였다. 출국할 때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임국 심사관은 내게 대놓고 100달러만 내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면 통과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내겐 돈이 없는 걸.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나 돈이 없어. 진짜야. 주고 싶은데 진짜 1원도 없어.”
"....."

찰나의 침묵은 영원 같았다.

"내가 널 살렸다. 들어가."


종종 궁금했다. '햇살이 쨍쨍할 때 그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나는 잔뜩 절여진 매실 장아찌 같은 모양새를 하고 겨우 가게 문을 열고, 수업을 하고, 밥을 챙겨 먹었고 화요일, 그리움에 핫케이크를 구워 먹으며 내 생에 가장 비효율적이었던 여행을 떠올린다. 다시없을 파란만장 12시간 바닷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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