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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거 Oct 20. 2021

바운스, 바운스.

(ft. 청각의 촉각화)

 영상의 시대, 아니 유튜브의 시대기에 영상을 자주 만든다. 영상을 편집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편집 프로그램과 그 편집 프로그램을 무리 없이 돌릴 수 있을 사양의 컴퓨터다. 헤비 작업자들은 데스크톱을 선호하지만(주로 가성비와 안정감이 데스크톱이 좋기에) 나는 주로 옮겨 다니며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노트북을 샀다. 노트북 중에서도 게이밍 노트북을 구입했다. (주로 디자인/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노트북으로 맥북을 많이 쓴다.) 무겁긴 해도 가성비가 좋아서였다.


 영상 편집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컴퓨터의 스피커가 꽤나 중요하다는 거다. (특히나 나 같이 이어폰을 귀에 오래 끼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 촬영된 녹음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결과물이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내가 산 게이밍 노트북은 처음에 나올 때부터 타사 노트북 대비 스피커에 신경을 쓴 모델이었다. 게임에서도 소리가 꽤나 중요한 요소여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다만 노트북이라는 특성상 스피커가 키보드와 같이 붙어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상을 재생할 때,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으면 키보드 자판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그 진동이 손에 느껴졌다. 사운드가 잘 녹음된 경우, 키보드에서는 좀 더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촬영을 하고 나서 음향 테스트를 할 때,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나서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유튜브를 볼 때도 키보드에 손을 얹고서 본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있지만,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촬영을 한 사람들의 영상을 볼 때는 진동이 없다. 근데 사운드에 신경을 써서 촬영/녹음한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보면 이내 키보드에서 미세하지만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어느샌가부터 나는 이런 미세하지만 묵직한 떨림이 나를 꽤나 안정시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종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나 마음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녹음이 잘 된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가만히 자판 위에 손을 올려두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청각의 촉각화는 내게 백색소음 같은 안정감을 준다.


 예술을 정의하는 문장들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하나의 감각을 전달했는데, 그것이 연결된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거나(청각의 시각화), 어떤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데 이미지 혹은 그 사람이 글을 쓸 때의 감정이 느껴진다거나(시각의 촉각(?)화) 하는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예쁜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시각적 만족감을 주거나 좋은 노래를 불러서 감미로운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쉽지만(사실 이것도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감각을 불러오게 하는 것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쉽다는 의미다.),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10년도 더 전에 대학생이던 나는 잠실 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엄청 크게 뛰는 게 느껴져 심장을 부여잡고 무슨 일인지 놀라 했었다. 보통 심장이 뛸 때는 긴장되는 발표를 앞두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려고 할 때 혹은 심장에 피가 규칙적으로 돌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운동 경기를 보고 있었으니 후자라고 생각했다. 내 심장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이 들었다. 당황해서 옆 친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는데, 내 바로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대형 스피커가 눈에 들어왔다.  내 심장을 뛰게 한 정체는 다름 아닌,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엄청 큰 응원 노랫소리였다. 잠실 운동장에는 드넓은 공간을 소리로 채우기 위해 대형 스피커를 관객석 곳곳에 설치해두었었다. 진짜 심장을 뛰게 할 만큼 물리적으로 큰 음악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뛰기 시작한 심장은 이내 벅차오름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벅차오름을 이용해 열심히 내 팀을 응원했고 마침내 승리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잠실 운동장 스피커를 통해 느꼈던 가슴의 바운스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그때의 대형 스피커 소리 덕분에, 지금의 노트북 스피커 소리를 느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리가 내 심장을 바운스 바운스 하게 만들며, 벅차오름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덕에, 지금은 노트북 스피커에서 나오는 (상대적으로) 작은 소리를 통해서도 촉각을 느끼고, 안정감이라는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게 아닐까.


   


덧, 내가 느끼는 느낌을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며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노트북을 켭니다. 

그 다름, 스피커 볼륨을 키워두고 아래 URL을 클릭합니다.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자가 아니라면 광고가 재생된 이후에 소리를 최대로 켜길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B7GHO7sws

마지막으로 키보드 자판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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