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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Aug 13. 2020

2016 보호입원을 하다

열 번째 이야기

정신과 입원에는 크게 자의입원, 동의입원, 보호 입원, 행정 입원, 응급입원 등이 있다.

-자의입원: 본인이 원해서 입원하는 경우

-동의입원: 환자 동의와 보호의무자 1인의 동의로 입원하며 필요에 따라 72시간 퇴원 유예 가능

-보호입원: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더라도 전문의 진단과 보호의무자 2인 동의에 의해 입원

-행정입원: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자체장이 보호자가 되어 진단과 보호 신청

-응급입원: 기타 응급상황에서 호송한 경찰관이나 구급대원이 입원에 동의하여 72시간까지 입원


 경상대학병원 72 병동 
    (진료과목: 정신건강의학과)
담당의: 이** 교수 / 주치의: 유** 전공의
입원기간: 2016.08.17~2016.08.31
   am 06:30 기상 및 체조
          07:30 아침 식사
          09:00 아침 투약
          09:30 차(茶) 모임
          10:00 바이탈(혈압, 맥박, 체온) 측정
          11:00 산책
  pm 12:00 점심 식사
          01:00 바이탈 측정
          02:00 점심 투약
          02:30 간식
          04:30 활동(문예, 미술, 음악, 놀이)
          05:00 바이탈 측정
          06:00 저녁 식사
          07:00 차(茶) 모임
          08:00 저녁 투약(10:00 밤 투약)
          11:00 전체 소등




2016년도에는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낸 지후는 어린이집에서 크다시피 했다. 항상 제일 첫 차로 등원해서 마지막 차로 하원 했고 6,7세 때는 아예 야간반까지 다녀서 나랑 있을 틈이 없었다. 백화점에 있다 보면 지후 또래 아이들이 엄마랑 쇼핑을 다니는 게 눈에 띄는데 그럴 때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매니저는 매일같이 매장을  비웠고 남편은 남편대로 일을 못 뺀다고 하니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매장을 지키다 고객 앞에서 눈물을 쏟아 혼난 적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매니저 때문에 매니저 역할까지 내가 떠안으면서 업무적 스트레스까지 더해지자 사람이 한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육아도 육아였지만,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인 문제는 스트레스를 받으니 부스터 효과를 발하는지 마음병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다시 주저앉아 또 삶을 포기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명의 전화 핫라인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듣던 상담사는 나에게 우울증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 같다며 대학병원에 바로 내원할 것을 권했다.


날이 밝고 이전 다니던 개인병원의 진료의뢰서 등 필요 서류를 챙겨 진주 경상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교수님과 상담이 이뤄지는데 그간 자살시도 등 여러 번의 응급상황과 면담 기록 등 나의 숱한 행적들이 의료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그런지 교수님은 '요놈 네 발로 잘 걸어 들어왔다!' 이런 눈빛으로 입원을 또다시 권하셨다. 나는 예전에 안 좋은 폐쇄병동 시설에 갇힐 뻔한 기억 때문에 머뭇거리자 병원 측에서 1차로 보호자인 남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는 남편으로 하여금 보호자 1인을 더 오게 하여 남편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또 큰일이 난 줄 알고 울산에서 부랴부랴 일하다가 뛰어내려 왔더랬다. 


엄마 얼굴은 보지 못했다. 남편은 저녁 먹을 때 잠시 입원 물품을 전달해주면서 스치듯 본 게 다다. 그냥 내발로 병원에 찾아갔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핸드폰을 뺏긴 뒤 입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간호사 따라 폐쇄 병동으로 잡혀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엄마가 나를 72 병동 속으로 집어넣었나 보다. 남편이 간식비로 3만 원을 넣어주고 갔다고 했다. 속으로 '미친놈 의리가 넘치네! 이제 생리할 땐데 생리대 사고 나면 과자값 할 것도 없게 쪼잔스럽게 딱 지만큼 넣어주고 갔네.' 싶었다. 여긴 그때처럼 철창과 쇠창살문이 아니어서 무섭지가 않았다. 바코드로 열리는 강화유리 스크린도어와 흔한 병원 안전 철문이어서 친근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보호사 주머니 속에 든 묵직한 열쇠 뭉치는 어쩔 수 없이 이곳이 격리된 장소임을 인지시키기에 충분했다.


간호사나 보호사는 매일 하는 일이 문을 여닫는 일이라 그런지 그 많은 열쇠 중에서 어쩜 그리도 제 열쇠를 쏙쏙 잘 찾아내서 문을 척척 여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도 해보고 싶은데 환자에게 열쇠 꾸러미를 줄리가 없지. 나는 폐쇄병동에 있으면서 본분을 망각할 때가 많았다. 나 혼자 보호사도 되었다가 간호사도 되었다가 또 우수 수감자도 되었다. 모든 건 병동을 탈출을 위한 나 나름의 전략이었다. 원래 사람이 노는 것도 지겹다고 병동 생활은 재밌었는데 일주일 이상 있으니 지루했다.


자기에게 신기가 있다며 퇴마를 해주던 언니, 중등도 우울증이면서 갑자기 한 번씩 음소거로 폭소하던 아줌마,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신발을 벗어던지고 걸어다니던 여고, 죽으려 절벽에서 뛰어내린 탓에 허리와 다리에 장애를 입은 여대생, 세련된 음대 여교수와 센치한 훈남 예고 남학생, 피부가 뽀얀 여자 아이와 그 옆을 걷던 조현병 남자 아이, 너무 똑똑한데 머리를 다쳐 미쳐버린 오빠와 경찰 조사를 피해 잠시 들어온 깡패 형님. 그 외 환자까지 총 17명이 함께 병동 생활을 하였다.


특히 너무 똑똑해서 미쳐버린 공씨 오빠는  먹은 걸 금새 잊고 다른 환자들 간식을 마구 꺼내어 훔쳐먹어서 간식 주인에게 자주 혼꾸녕이 났다. 생긴 것도 곰처럼 곰실곰실하게 크고 둥글었는데 내가 이 오빠를 하도 자주 놀려 먹어서 오빠랑 티키타카 나누고 있으면 보호사가 내가 오빠를 또 뭐라고 놀려대나 하고 다가와 쳐다보았다. 그러면 오빠 주위에 맴돌며 떠들고 섰다가 급히 운동하는 척하며 복도를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했다.


"오빠야 내 오늘 이쁘나?"

"어. 아니."


"어. 아니? 왜? 못 생깄나?"

"아니 아니. 니 귀엽다."


"오빠야 그라모 내 뚱뚱하나?"

"으~~ 살 좀 빼라"


"오빠야 니 오늘 정신 나갔네? 내 몸무게 45kg다! 어딜 봐서 뚱쪄보이네? 빨리 가서 약 주라 해라!"

"아차차! 니 날씬하다 니 날씬한데?"


"글체? 으따 가서 퇴원 시키 주라 해라!"

(간호사에게 다가가)"저! 저 집에 가도 되는데요!"


4년이 흐른 지금도 병동 식구들 한명 한명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노트 한 권 연필 한 자루 마음대로 못 가지고 들어가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썼던 일기가 지금 나에게는 큰 자산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연락처나 장호성 보호사님이 나에게 멘토링 해줬던 내용들은 간호사가 검열하여 다 지우거나 찢어서 없다는 거 ;-; 장호성 보호사님이 잘 계신지 안부가 제일 궁금한데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나에게 참 잘해주셨는데.. ' -'쌤님 보고싶다


어쨌든, 모범수 생활 덕분에 주치의 만류에도 내 의사가 많이 반영되어 2주일 만에 탈출했다! 아마 평생 칠 탁구는 폐쇄 병동 안에서 다 치고 나온 듯 하다. 왜 정신과 폐쇄 병동에는 탁구대가 있을까?




서로의 이야기에 서로가 부끄럽고 수치심마저 들었다. '내가 너 보단 덜한 것 같아서..', ' 적어도 나는 너보단 나은 삶인 것 같아서..' 난 널 보며 어리석다 생각했고, 넌  보며 어리석다 생각했지. 내 손목에 옅게 남은 금과 약물 자해 등 수차례의 자살시도와 내 지난 삶의 이야기에 네 삶을 구태여 빗대어 비교하지는 마. 그 순간 그 시간 그 곳에 너 보다 더 힘들고 절박한 사람은 너 이 외엔 없었을 테니. 나도 그랬고, 너 역시 그랬지. 하여 세상엔 절대적인 것 외에 상대적인 것도 함께 있는 거잖니.           

                            -2016.08.30.(화)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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