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신병이 부자병이라고. 부자병이라고 하는 근거를 보니까 크게 두 가지 이유인 것 같다. 하나는 정신과와 관련하여 치료에 돈이 많이 들어서 부자병이라고 하는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살기 바쁘면 정신병에 걸릴 틈도 없다는 논리에서 여유로움을 비꼬아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실제 부자병은 정신질환자를 빗대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부자병(affluenza)’이 실체를 드러낸 것은 2013년 당시 18세였던 미국 텍사스 출신 이안 카우치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판정에 선 카우치의 변호인단은 "너무 귀하게 자라다 보니 카우치가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이는 장애이자 하나의 병인 부자병에 걸렸음을 주장한다. 어처구니없는 변호였으나, 법원은 이 논리를 받아들여 카우치는 수감을 면하고 10년간의 보호 감찰과 재활원의 치료를 받게 된다.
카우치 사건에서 비롯된 부자병 어플루엔자 affluenza는 풍요를 뜻하는 단어 ‘affluence’와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단어 ‘influenza’의 합성어로 전염성을 가진 사회에 전파되는 고통스러운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증상을 수반한다. 즉, 어플루엔자는 삶에 대한 무력감, 과도한 스트레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 쇼핑 중독, 만성 울혈 같은 다양한 병후가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되는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선천성 갑질병과 상응한다 볼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그러더라. “부자이신가 보네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시는 걸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정신병 걸릴 시간도 없어요. 먹고살기 바빠서요.” 대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먹고살기 바쁘지 않나? 발바닥에 굳은살이 베이고 신발이 닳도록 일했는데 돌아오는 건 월급 통장 압류였다. 남편 때문에, 아빠 때문에. 월급 받는 족족 급하게 줄 돈만 젖혀도 우리 가족 먹고 쓸 돈은 없어서 항상 가족에게 “5만 원만”, “10만 원만” 손 벌리며 그 돈으로 부식비를 해결하곤 했다. 나는 옷을 사 입은 적도 없다. 거지 근성으로 주위에서 안 입거나 버리는 옷을 얻어 입었다. 나는 부자가 아니었다. 마음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지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그때 나도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공황장애와 조울증에 의한 우울감,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도저히 다인실을 쓸 수가 없었다. 쥐뿔도 없는 형편에 친정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1인실을 썼다. 남편은 잘 때만 들어왔기에 지후는 거의 내가 다 봤어야 했다. 교대해줄 사람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누가 내 핸드폰도 훔쳐 가 버렸다. 우울 위에 우울이 겹치는 와중에 지후는 뽀로로가 보고 싶어 떼를 쓰기 시작하다가 이번에는 옆방 형아가 먹는 과자가 먹고 싶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진 돈이 없었다. 모든 주머니를 뒤져서 나온 돈은 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나마도 비상금으로 들고 있던 돈이었다. 그러나 천 원으로 지후가 사달라고 하는 크리스피롤 과자는 살 수가 없었다. 지후를 안고 편의점에 가서 아쉬운 대로 막대 사탕을 사 와서 지후에게 물려주었다.
지금 같으면 가서 과자 하나 달라고 말할 법도 한데 그땐 그게 어려웠다. 아줌마로 농익지도 못했고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면서도 일이 아나면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게 나였다. 가족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게 싫었다. 그러니 지후를 돌보는 일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에너지 소비였다. 거기다 언제 갚을지도 모를, 빌린다는 명분으로 내 돈이 아닌 친정 엄마 돈을 가져다 쓴다는 그 자체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돈 얘기가 나오다 보니, 돈이 없어서 혹은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혼자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고 싶어 하는 청소년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의료법에 따르면 청소년 혼자 병원에서 진료와 약물 처방까지 가능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 상담까지 가능하다. 아무래도 법적 보호자가 나중에 분쟁을 걸었을 때 야기될 문제들에 대해 병원 측에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 전에 청소년 전화 1388이나 교육청 기반으로 운영되는 Wee 클래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다.